OUT THERE소설, 게임 그리고 드라마로 <위쳐 Witcher>

소설, 게임 그리고 드라마로

<위쳐 Witcher>


남자의 로망 가득한 괴물 사냥꾼 게롤트가 사는 법

by 제로


전란의 시대, 한 남자가 세상을 떠돈다. 

실전으로 담금질한 다부진 체격에 긴 백발을 휘날리며 검과 마법을 휘두르는 숙련된 전사. 

돈을 받고 전문적으로 괴물을 사냥하는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하얀 늑대’ 리비아의 게롤트라 부른다. 

비록 작중 게롤트는 궂은 일이나 하는 더러운 돌연변이로 경멸 받지만 현실의 우리는 그를 섹스 심벌이자 알파 메일이라 열광한다. 그렇다. 

지난 12월 넷플릭스가 선보인 오리지널 드라마 <위쳐 Wicher>에 대한 이야기다.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는 벌써 수년째 자체 콘텐츠 생산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폴란드 작가 안제이 사프콥스키의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위쳐> 역시 몇 년 전부터 넷플릭스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프로젝트다. 

마침 옆동네 HBO가 자랑하던 <왕좌의 게임>이 시즌 8을 끝으로 종영한 터라 시기적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 

그렇다면 작품 자체의 재미는 어떨까?


화제의 갓겜, 넷플릭스 드라마가 되다

평소 게임을 즐겨하는 독자라면 <위쳐>라는 제목이 매우 익숙할 것이다. 

안제이 사프콥스키가 쓴 원작 소설은 2007년부터 세 번에 걸쳐 게임화되었는데, 이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흥행하여 드라마 제작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게임은 원작 완결 후 내용을 개발사가 창작한 것이고 드라마는 소설을 그대로 옮겼으므로 서로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넷플릭스 역시 안제이 사프콥스키에게 자문을 받았지 딱히 게임 개발사와 협력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도 게임에서 보던 인물이나 지명이 다수 등장하니 그냥 일종의 전일담이라 생각하자. 

사실 진짜 인기있는 쪽은 소설이 아닌 게임인지라 이를 의식한 연출도 종종 나오는 편이다. 

특히 주인공 게롤트役을 맡은 헨리 카빌은 헐리우드에서 유명한 열혈 게이머로, 본인의 덕심을 폭발시켜 진짜 게임에서 곧장 튀어나온 듯한 폭풍 연기를 펼친다. 

역시 덕후한테 맡겨야 일이 제대로 된다.


드라마 <위쳐> 시즌 1은 원작 소설 가운데 <이성의 목소리>와 <운명의 검>을 이리저리 엮어 재구성했다. 

이야기는 세 명의 인물을 교차하며 비추는데 각자 시간대가 달라 처음에는 약간 혼란스러울 수 있다. 

게롤트가 괴물 사냥꾼 노릇을 하는 시점이 현재라면 마녀 예니퍼는 과거, 운명의 아이 시릴라는 미래에 해당한다. 

이 세 시간축은 시즌 1 내내 따로 놀다가 마지막에 와서 교차하는데, 영화 <덩케르크>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써먹은 기법과 유사하다. 

매 에피소드마다 세 인물이 모두 등장하므로 분량 배분이 수월한 반면 자칫하면 보는 사람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 

<덩케르크>가 아주 잘 된 예시라면 <위쳐>는 솔직히 좀 난잡한 편. 

자잘한 설정이나 고유명사도 거의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에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기 쉽다. 

아무래도 게임이 워낙 흥행한지라 ‘어차피 다 알겠거니’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적잖다.


운명으로 엮인 그와 그녀, 그 아이의 사정

흩어진 이야기를 재정렬하면 이러하다. 

어느 시골 농가에서 태어난 예니퍼는 흉측한 몰골 탓에 부모에게조차 버림받는다. 

다행히 타고난 마력이 발현되어 마법학교에 입학하지만 미모의 마녀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서 자궁을 제물로 받쳐야만 했다. 

불임이라는 콤플렉스는 이후 예니퍼를 끊임없이 괴롭히게 된다. 

수십년이 지나, 괴물 사냥꾼 게롤트는 의뢰를 수행하는 와중에 야스키에르라는 껄렁한 음유시인과 만난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이내 막역한 사이가 되며, 야스키에르의 억지로 신트라 왕국에 갔다가 왕녀 파베타와 방랑기사 듀니를 이어주게 된다. 

또다른 사건에서는 아이를 가지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예니퍼와 얽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이후 또 어느정도 세월이 흘러 파베타와 듀니 사이에서 딸 시릴라가 태어나는데, 닐프가드 제국이 신트라 왕국을 침략함에 따라 시릴라는 홀로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여기서 <위쳐>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운명이다. 

파베타와 듀니를 이어준 게롤트는 의외성이 법칙(Law of Surprise)에 따른 보상을 요구한다. 

이것은 ‘집으로 돌아갔을 때 너를 반겨주지만 네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을 달라는 오래된 전통이다. 

하도 보답하고 싶다니까 그냥 귀찮아서 내뱉은 말인데, 하필 파베타가 속도위반을 저지른 탓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시릴라를 받게 된 것. 

물론 게롤트야 진심으로 보상을 원한 것도 아니었고 아이는 절대 사절이기에 그냥 떠나버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한 번 정해진 운명은 피할 수 없어 훗날 시릴라와 상봉하게 된다. 

예니퍼의 경우는 임신한답시고 무리수를 두다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을 게롤트가 구해주느라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운명을 엮어버렸다. 

덕분에 예니퍼는 목숨을 건지고 게롤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이게 진심인지 아니면 엮인 운명 탓인지 알 수 없어 불안해한다.


수준급 액션과 섹스, 그러나 부족한 예산

이렇게 적고 보니 장황한데 실제 드라마는 그리 난해하지 않다. 

게롤트와 예니퍼처럼 개성이 도드라지는 인물을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DC 유니버스의 슈퍼맨 출신인 헨리 카빌은 시종일관 그리스 조각상도 부러워할 육체미를 과시하며 호쾌하고 거침없는 액션을 품어낸다. 

누가 넷플릭스 성인 드라마 아니랄까봐 칼을 휘두르는 족족 머리가 쪼개지고 너도나도 장기자랑하는 전투 장면이 참으로 압권. 

뭣보다 예니퍼를 비롯한 여성 출연진이 매화 훌렁훌렁 벗고 나오는지라 젖가슴 하나는 원없이 감상할 수 있다. 

잘생기고 몸도 좋은데 스스로의 실력 하나만 믿고 왕이니 귀족이니 신경 쓰지 않는 독고다이 괴물 사냥꾼. 

거기다 발길 닿는 곳마다 문제를 해결하고 미녀를 쟁취하니 그 어떤 시청자가 게롤트를 싫어하겠나. 

심지어 별명이 하얀 늑대다, 하얀 늑대. 

헨리 카빌을 보고 있으면 남자인 필자도 임신할 것만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헨리 카빌 외에 거물이라 할만한 출연진이 전무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드라마의 한계 상 예산이 풍족하지 않고 차기 시즌에서 불어날 배우들 몸값까지 고려한 듯하다. 

그나마 비중이 큰 예니퍼와 야스키에르는 괜찮지만 몇몇 배우는 정말 연기가 어색한 편. 

그리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시대 정신에 따라 여러 인종의 배우가 출연하는데, 일부 배역이 소설에서 묘사와 너무 달라져 원작 팬덤의 비판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트리스 메리골드는 ‘붉은 머리의 메리골드’라 불리는 미녀로 서술되는 반면 드라마에서는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린다.

CG 또한 좋을 때는 거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맞먹는데 나쁠 때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수준까지 추락한다. 

주인공부터 괴물 사냥꾼이라 CG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음에도 예산 배정을 허투루 한 모양이다. 

시즌 1이 흥행에 성공한만큼 예산 좀 넉넉히 뜯어오기 바란다.

<위쳐> 시즌 1에서 다룬 <이성의 목소리>와 <운명의 검>은 원작의 도입부에 해당한다. 

여러 단편을 모아둔 피카레스크 구성인 탓에 드라마까지 덩달아 전개가 매끄럽지 않았다. 

이제 게롤트와 예니퍼, 시릴라가 모인 시즌 2부터는 혼란스러운 교차 편집이 줄어들고 훨씬 흡입력 있는 서사가 펼쳐질 것이다. 

남은 원작 소설은 <엘프의 피>, <경멸의 시간>, <불의 세례>, <제비의 탑>, <호수의 여인>, <폭풍의 계절>까지 총 여섯 권. 

드라마 제작진은 반응만 좋다면 몇 시즌이고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니 소설 내용을 어느정도 분량으로 잘라낼지가 관건이겠다. 

나중에는 드라마만의 오리지널 에피소드가 나올 수도 있고 어쩌면 게임 시리즈까지 반영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든 고민은 우선 시즌 2까지 제대로 뽑아내고나서 얘기지만 말이다. 

헨리 카빌의 탄탄한 말근육을 그리워하며 오늘은 <위쳐> 게임 시리즈를 다시 한번 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