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기찻길 로맨스

영화 속

기찻길 로맨스


이거 보고 기차타면 왠지 인연이 생길 것 같다!

귀경길 설레게 만들어 줄 역대 영화 BEST 6와 명장면들을 뽑아왔다.

by 김현식


<비포 선라이즈>(1995)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장면

 유럽을 여행 중인 미국 청년 제시와 방학을 맞아 독일 할머니집에 들렀다 파리로 돌아가는 프랑스 여대생 셀린이 같은 기차에 타고 있다. 독일인 부부가 심하게 싸우자 두 사람은 식당칸으로 자리를 피하게 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이 늘어난 두 사람은 비엔나에 함께 내려 즉흥적인 여행을 시작한다.

 개봉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전 세계 청춘들에게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을 심어준 영화. 기차에서 시작된 즉흥적인 여행,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 그리고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의 순간까지 모든 것이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짧았지만 깊고 강렬했던 하룻밤의 사랑은 추억처럼 남아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그 여운이 얼마나 길었는지 9년 뒤 후속작인 <비포 선셋>이 개봉됐고, 그로부터 7년 뒤엔 <비포 미드나잇>까지 개봉돼 ‘비포 트릴로지’가 완성됐다.


<이터널 선샤인>(2004)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마크 러팔로 등


장면

 밸런타인데이 아침, 평소처럼 출근하던 조엘은 즉흥적으로 바닷가로 가는 기차에 오르게 되고 도착한 해변에서 클레멘타인을 만난다. 묘하게 끌림을 느끼는 두 사람은 같은 기차를 타고 돌아오게 되고, 기차에서 클레멘타인은 적극적으로 조엘에게 다가간다.

 21세기 최고의 영화를 꼽을 때 늘 언급되는 명작. 기억을 지운다는 SF적인 발상에 멜로를 완벽하게 조화시켰다. 게다가 뮤직비디오와 광고로 다져진 미셸 공드리의 영상미와 배우들의 연기까지 더해져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 탄생했다. 단순히 우연한 만남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기억을 초월한 원초적인 사랑의 존재를 보여주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나는 기억을 초월한 사랑을 해본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

감독 최형준

출연 김하늘, 강동원 등


장면

 가석방 중인 사기 전과범인 영주는 직접 만든 조각을 언니의 결혼식 선물로 주기 위해 기차에 오른다. 그 옆에는 약혼녀에게 프로포즈할 반지를 품고 있는 시골 약사 희철이 있다. 희철은 떨어뜨린 반지를 찾다 영주에게 치한으로 몰려 얻어맞고, 소매치기 범들에게 반지를 도난까지 당한다. 영주는 혹시나 자신이 의심받을까 희철을 도와주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의 가방이 뒤바뀌고 만다.

 순수한 시골 청년 희철과 뻔뻔한 사기범 영주가 펼쳐나가는 로맨스 영화. 뒤바뀐 가방을 다시 바꾸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속이는 영주와,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희철은 우여곡절 속에 자연스레 사랑에 빠진다. 요즘같으면 치한으로 오해 받은 순간 바로 승무원에게 제압당하고 다음 역에서 경찰에게 인계될 게 뻔하다. 그러니 이런 로맨스를 기대하며 오해살 짓은 하지말도록.


<생활의 발견>(2002)

 

감독 홍상수

출연 김상경, 추상미, 예지원 등


장면

 뻔뻔하고 당돌하게 자신에게 들이대던 명숙으로부터 도망치듯 기차에 오른 연극배우 경수. 기차에서 자신에게 먼저 아는 척 인사를 건네는 선영에게 반하게, 되고 그녀가 경주에 내릴 때 몰래 따라 내려버린다. 

 ‘이중성’이라는 인간의 민낯을 낱낱이 까버리는 영화다. 나를 부조리하게 원하는 사람 앞에서는 씹선비가 되지만, 내가 부조리하게 원하는 사람 앞에서는 파렴치한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마음에 드는 여자를 따라 어딘지도 모를 역에 내려버리는 그런 뻔뻔함과 용기가 부럽다. 일단 기차에서 그런 여자를 만났다는 게 더 부럽긴 하지만…


<초록 물고기> (1997)

감독 이창동

출연 한석규, 심혜진, 문성근 등




장면1

 전역날 기차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던 막동이는 다른 칸 기차 문에 서서 바깥을 보고 있던 미애를 발견하고 홀린 듯 쳐다 본다. 그러다 미애의 스카프가 풀려 바람을 타고 막동이의 얼굴로 날아온다. 막동이는 스카프를 전해주려 하지만 그녀는 어느새 건달들에게 희롱을 당하고 있었다. 막동이는 용감하게 나서지만 신나게 얻어터진다. 깡패들을 따라 내린 후 보복에 성공했지만 결국 기차를 놓치고 만다.


장면2

 조직 두목의 애인인 미애와 막동이는 기차를 타고 밀애에 가까운 여행을 떠난다. 기차 안에서 보통의 연인들처럼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즐기던 그들은 끝내 키스까지 나누게 된다.

 이창동의 데뷔작이자 한국형 누아르의 완성. 영화의 첫 시퀀스가 바로 기차다. 나풀거리는 스카프가 슬로우로 막동이의 얼굴로 날아드는 장면은 사랑에 빠진 막동이의 시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기차는, 두 사람을 현실로부터 도피시키며 감정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결국 다시 되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으며 냉혹한 현실속으로 스스로 내던져진다.


<줄리에타>(2016)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아드리아나 우가르테, 에마 수아레스 등


장면

 강의를 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가던 젊은 줄리에타 앞에 낯선 나타나 추파를 던진다. 줄리에타는 그를 무시하고 식당칸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젊은 어부 ‘소안’을 만난다. 그러다 갑자기 기차가 멈추는데 추파를 던지던 남성이 자살을 해버린 것. 줄리에타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소안은 그녀를 위로해 준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섹스를 나눈다.

 2016년 개봉한 스페인 영화로 어머니가 된 줄리에타가 집을 나간 딸을 찾는 과정에서 지난 과거를 회고해 나가고, 딸은 물론 자신의 삶까지 관망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죽음을 목격한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한번 출발하면 돌이킬 수 없는 기차처럼, 그렇게 줄리에타는 어머니로서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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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