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은, 따뜻함으로 기억되고 싶은 레이싱 모델


박지은, 

따뜻함으로 

기억되고 싶은 레이싱 모델 

<모터쇼의 열기와 플래시 세례 속에서도, 

박지은은 언제나 고요한 중심에 서 있었다.>


by 크레이지자이언트

Photograph 치코

 Model  박지은

“속도는 줄이고, 마음은 더 크게” 

크레이지자이언트  박지은

햇살이 천천히 늘어지던 오후, 트랙과는 전혀 다른 조용한 스튜디오 한켠에 앉은 박지은은 고요한 긴장감을 품고 있었다. 손끝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그다음엔 눈빛으로 모든 걸 설명했다. 말을 아끼되 감정은 숨기지 않는 사람. 그녀는 그런 방식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레이싱 모델이라는 단어가 저를 설명하진 않아요. 다만, 제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매번 달라져요.” 말보다 자세, 표정보다 에너지. 지은은 프레임 안에서 자신을 명확하게 보여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만히 멈춘 슈퍼카, 무심한 회색 배경,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가느다란 브레이크처럼 선 박지은. 몸은 정지해 있었지만, 시선은 질주하고 있었다. 얇게 걸친 크롭티, 바람에 흔들리는 긴 머리, 낮게 깔린 조도. 그러나 그 안에서 유일하게 또렷했던 건, 박지은이라는 이름의 집중력이었다.“카메라 앞에서는 늘 낯설어요. 근데 그 낯섦이 좋아요. 내가 누구인지 계속 탐색하는 기분이 들어서요.” 지은은 여전히 자기 안의 답을 찾는 중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아주 작은 진심들을 모아가는 사람.

촬영이 끝나고,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박지은의 마음은 어떤 계절일까?“늦여름이요. 모든 게 무르익기 직전, 뭔가 터지기 직전의 온도. 저는 지금 그 경계선에 서 있는 기분이에요. 더 뜨겁게, 더 조용하게 나를 준비 중인 계절.”일상 속의 박지은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커피는 진하게, 향수는 은은하게. 평일엔 러닝화를 신고 강아지와 걷고, 주말엔 아무도 모르게 책을 읽는다. 하지만 무대 위에 서면, 그녀는 전혀 다른 속도로 빛난다.“부족한 걸 숨기지 않기로 했어요. 솔직해지면, 다음을 기대하게 되니까요.”박지은은 그렇게, 스스로의 계절을 한 걸음씩 만들어가고 있었다. 누구보다 뜨겁게, 누구보다 단단하게. 





CZA 인터뷰: 박지은, 따뜻함으로 기억되고 싶은 레이싱 모델

CZA 요즘엔 어떤 생각을 자주 하나요? 
박지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라는 질문을 계속해요.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뭘 하면서 살고 싶은지. 너무 단순한 것 같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감정이 꽤 많아요. 예전에는 단지 멋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카메라 앞에서도, 무대 위에서도.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좋은 온도로 남는 사람. 그게 어떤 모습이든 간에.

CZA 레이싱 모델이라는 직업은 화려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체력적·심리적으로도 쉽지 않잖아요. 지은 씨는 그 안에서 어떤 밸런스를 찾아가고 있나요? 
박지은 맞아요. 화려함이라는 건 대개 순간의 이미지잖아요. 전시된 공간, 조명, 각도, 의상… 그게 끝나면 저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해요. 체력적으로는 고된 날도 많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할 때는 오히려 숨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평소에는 철저하게 나를 소박하게 만들어요. 새벽 조깅을 하고, 식물 키우고, 집 정리를 하고. 그렇게 내 일상을 단정히 정돈해야 다시 무대에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되더라고요.

CZA 그런 ‘무대’에 서 있는 동안, 가장 벅찼던 순간이 있다면요? 
박지은 한 번은 비 오는 날이었어요. 트랙 위가 젖어서 차들도 조심스럽게 움직이는데, 저는 레인부츠도 없이 얇은 힐을 신고 서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따라 관중석에서 함성이 유독 크게 들렸어요. 어떤 분은 우산도 없이 사진을 찍고 계셨고요. 그 순간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나를 위해 이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쓰고, 이 모든 것이 지금이라는 한 장면을 위해 존재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힘들다는 생각보다 ‘아, 내가 여기 있어서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구나’라는 벅참이 있었죠.

CZA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가장 '의미 있게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박지은 아주 소박한 순간일 수 있는데요. 행사 끝나고 대기실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바닥에 앉아 있을 때요. 그때 제 옆에 있던 스태프분이 “지은 씨 오늘 너무 멋있었어요. 근데 이렇게 쪼그려 있는 모습이 더 인간적이라 좋아요”라고 말해주셨거든요. 그게 참 좋았어요. 화려함과 인간미, 둘 다 내가 맞다는 느낌. 내가 한 사람으로서 의미 있게 보인다는 건, 결과물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는 거잖아요. 그게 참 감사했죠.

CZA 가끔은 박지은이라는 이름보다, 이미지로 먼저 판단되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박지은 맞아요. 어떤 카테고리에 넣으려는 시선들. ‘레이싱 모델은 이럴 것이다’, ‘이런 옷을 입는 여자는 이런 삶을 살 것이다’. 그런 프레임이 때로는 사람을 아주 작게 만들어요. 처음엔 억울하고 화도 났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고, 나는 그 이미지와 실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이면 된다고요. 보여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설명할 준비가 돼 있는지’더라고요.

CZA 지은 씨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박지은 꾸준한 사람이요. 감정적으로는 꽤 격한 편인데, 일에 있어서는 철저히 루틴을 지키려고 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잔을 꼭 마시고, 일기처럼 메모를 남기고, 운동을 해요. 스케줄이 아무리 늦게 끝나도 클렌징을 거르지 않고. 화려해 보이는 순간들 뒤엔 늘 그 루틴이 있어요. 저는 제가 나약한 걸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작은 질서 같은 거예요.

CZA 그런 루틴이 무너질 때는 없어요?  
박지은 있죠. 특히 마음이 흔들릴 때는요. 그런데 그럴 때일수록 작고 단단한 습관 하나가 진짜 도움이 돼요. 가령,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는 거. 그 향기 하나로 기분이 10%라도 회복되는 기분. 저는 요즘 삶이 ‘복잡한 것들 사이에서 나를 지켜내는 기술’을 배우는 과정 같아요.

CZA 나를 지켜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건, 결국 무엇이었나요? 
박지은 ‘듣는 시간’이요. 혼자 있을 때 저는 제 목소리를 아주 작게 들어요. ‘괜찮아, 오늘은 여기까지 잘했어’라는 말도 스스로에게 자주 하게 되고. 물론 완벽하게 회복되지는 않지만, 그 속도로 살아가는 게 저에겐 필요해요. 세상이 너무 빠르잖아요. 저만큼은 저를 기다려주고 싶어요.

CZA 지금까지 가장 용기를 냈던 순간이 있다면요? 
박지은 엄마에게 처음으로 “사실 나 요즘 좀 힘들어”라고 말했을 때요. 그 한마디가 너무 어려웠어요. 항상 밝고 괜찮은 딸이어야 한다는 무의식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엄마가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꼭 잡아줬어요. 그 따뜻함이 지금도 생생해요. 말은 짧았지만, 감정은 길었어요. 그걸 느끼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주변에게 더 솔직해지기 시작했어요.

CZA 일 외의 시간엔 주로 뭘 하면서 쉬어요? 
박지은 영화를 정말 좋아해요. 혼자 조조 영화 보러 가는 걸 좋아하는데, 새벽의 극장은 어떤 위로보다 더 조용하고 진심이에요. 요즘은 오래된 프랑스 영화나 일본 독립영화를 자주 찾아봐요. 그 안의 느릿함, 정지된 감정들이 제 감정도 덜 복잡하게 만들어줘요.

CZA 요즘 가장 자주 떠오르는 말이나 문장이 있다면요? 
박지은 “가볍게 지나가자.” 어떤 상황도, 어떤 감정도 너무 붙잡아두지 말자는 의미예요. 집착보다 회복이 중요하니까요. 그러면 다음 날 아침이 좀 더 부드럽게 열리더라고요.

CZA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요? 
박지은 제가 카메라 앞에 설 때는, 나 자신과의 거리감을 조금씩 좁혀가는 기분이에요. 어쩌면 평생 나를 이해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어요. 이 직업은 외모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음의 태도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계속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서요.

CZA 사람들에게 ‘박지은’이라는 이름이 어떤 이미지로 남았으면 하나요? 
박지은 아주 작고 부드러운 따뜻함이었으면 좋겠어요. 꼭 강한 이미지나 멋진 인물이 아니어도, 어떤 순간에 떠오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지은이 그때 이런 말을 했었지’ 하고 스치듯 떠오르는데도 마음이 괜히 놓이는 사람.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된다는 건, 제겐 굉장히 값진 일이에요.

CZA 만약 지금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찍는다면, 어떤 장면이 될까요? 
박지은 햇빛이 깊게 들어오는 오후, 고양이가 창가에서 졸고 있고, 저는 커피를 식히며 가만히 앉아 있는 장면. 아무 대사도 없고, 음악도 없는. 하지만 그 시간이 모든 걸 말해주는 것 같아요. 그 조용한 평화, 그게 지금 제 마음에 가까운 장면이에요.

CZA 반대로, 가장 영화 같았던 실제 인생의 장면은요? 
박지은 처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무대에 섰을 때요. 제가 레이싱 모델이긴 하지만, 그날은 특별히 다른 분위기의 무대였어요. 조명이 켜지고, 수많은 관객 앞에 혼자 서 있는데, 심장이 뛴다는 걸 몸 전체로 느꼈어요. 대사 없는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죠. 그리고 제 안의 카메라가 그 순간을 또렷하게 찍고 있었어요. 그날 이후로, 저는 제 삶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됐어요.

CZA 자신의 삶을 한 편의 글이라고 한다면, 어떤 장르일까요? 
박지은 사극 같은 일기예요. 격정적인 사건은 없어도, 하루하루가 담백하게 쌓여가는 이야기. 감정의 변화가 뚜렷하진 않지만, 나중에 다시 읽으면 분명 울컥하는 문장들이 있어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어요. 천천히, 꾸준히, 의미가 조금씩 묻어나는 삶.

CZA 요즘 가장 웃게 되는 순간은요? 
박지은 강아지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을 때요. 사람처럼 베개 베고 자는 모습 보면 혼자 피식 웃게 돼요. 아무 말도 없고 아무 사건도 없지만, 그 평화로움이 제겐 너무 귀엽고 소중해요

CZA 스스로 가장 '예뻐 보인다'고 느끼는 순간은요? 
박지은 누군가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고 있을 때요. 말하지 않고 들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때의 제 표정이 저는 가장 예쁘다고 생각해요. 눈이 가장 부드럽게 감겨 있는 순간이거든요.

CZA ‘귀여움’이라는 단어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고 했는데, 요즘은 어떤 게 그렇게 귀엽던가요? 
박지은 길 가다가 갑자기 나무 위에서 ‘툭’하고 떨어지는 꽃잎이요. 누가 던진 것도 아니고, 소리도 안 나는데, 그게 떨어지는 순간이 너무 갑작스럽고 조용해서 자꾸 쳐다보게 돼요. 그 조용한 귀여움이 좋아요.

CZA 요즘 가장 많이 읽는 건 어떤 책이에요? 
박지은 시집이에요. 길지 않고, 명확하지도 않아서 좋아요. 문장 끝이 뚝 끊긴 것 같은데, 그 여백이 오래 남아요. 요즘은 나태주의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이 자주 손이 가요.

CZA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고 했죠. 그 시간은 지은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박지은 고요한 점검.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나 살펴보는 시간. 혼자 있는 순간이 쌓일수록, 관계 속의 나도 조금씩 안정돼요. 혼자가 불안하지 않으니 함께 있을 때도 훨씬 편안해지더라고요.

CZA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싶을 때, 어떤 걸 해요? 
박지은 빨래를 개요. 반복적인 행동인데 마음이 정리돼요. 손끝으로 촉감을 느끼면서 천천히 접다 보면, 복잡했던 감정도 조각조각 개어지는 느낌이에요. 느린 속도 속에 마음이 놓여요.

CZA 박지은이라는 사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요? 
박지은 눈에 띄지 않게 스며드는 따뜻한 사람. 오래 봐야 알 수 있는, 그래서 오래 볼수록 좋아지는 사람이고 싶어요.

CZA 마지막 질문이에요. 지금 이 순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박지은 지은아, 잘하고 있어. 가끔은 너무 세상을 크게 느끼지 말고, 네 한 걸음만 보면 돼. 오늘 하루, 너는 너를 잘 살아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