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 미소녀 게임 NOeSIS에 대해 알아보자

100만 다운로드의 신화

동인 미소녀 게임 

NOeSIS에 대해 알아보자



아마추어가 아니었으면 용서받지 못했을 극단적인 서스펜스 호러

 100만.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영화 관객수, 음반 판매량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 수치를 넘으면 그것만으로도 기사가 될만큼 일종의 상징성을 가진 기준점이다. 

 만약 패키지 게임으로 따지면 100만장이 팔려나갔다는 의미인데, 1장당 가격이 5만원이라고만 따져도 5만 * 100만 = 500억이라는 무시무시한 매출액을 기록하게 된다. 

 설령 무료로 풀려서 개발자에게 직접적인 수입이 없다고 하더라도 100만이란 타이틀은 향후 포트폴리오에 금빛 글자로 박힐만큼 큰 의미를 지니는데, 오늘 이야기할 미소녀 게임은 그걸 약 10년 전에 달성한 작품이다. 

 심지어 그걸 동인 서클이 이뤄냈다는 점이 더더욱 놀라운데, 그럼 한번 문제의 그 작품, NOeSIS 시리즈에 대해 알아보자.

<16년 리메이크판의 메인 키 비쥬얼>


일본의 동인 시장과 서클 클래식 쇼콜라

 몇번 지나가는 이야기로 언급했을지도 모르지만, 좋은 기회니 다시 한번 옆나라의 동인 시장에 대해 설명해보자. 

 동인이라 함은 정식으로 회사를 내지 않고 일종의 동호회나 취미, 달리 말해 아마추어로서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모든 컨텐츠를 무료로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정식으로 회사를 차려서 활동하는 프로들과는 엄연히 구분되는 개념. 

 일본은 인구수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서브컬쳐 장르 및 동인 활동이 이전부터 활성화되어 있던 덕분에 동인으로도 다양한 히트 작품이 발매된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코믹 마켓이라 불리는 최대 규모의 동인 행사에는 아예 프로 기업들이 같이 출점해서 홍보할 정도니까, 동인 시장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글로벌 매출이 끝내준다는 페이트/그랜드 오더의 뿌리도 거슬러 올라가면 동인팀>


 오늘 이야기할 NOeSIS의 제작 서클, 클래식 쇼콜라도 이런 동인 활동으로 게임을 제작한 곳이다. 

 2011년 혜성처럼 나타나 NOeSIS 시리즈를 시작한 것이 이들의 최초 활동인데, Windows/Android/iOS 플랫폼으로 무료 발매된 1편 '거짓말을 하는 기억의 이야기'가 곧바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어, 순식간에 총합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후 12년에 2편인 '우화'를 낸 후, 휴식기와 1/2편의 리메이크를 거쳐 현재는 3편 '노래하는 그림자의 허곡'까지 발매한 상태. 

 하지만 클래식 쇼콜라는 그 동안 꾸준히 코믹 마켓 등의 동인 행사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으며, 지금도 항상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인기 부스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팟캐스트/만화/소설/드라마 CD 등 다양한 미디어 믹스가 존재하니, 이쯤되면 웬만한 게임 회사 부럽지 않은 수준.

<그 중 소설은 한국에도 정식으로 번역되어 발매되기도>


컬트적 지지를 받은 서스펜스 호러 어드벤처

 그러면 대체 무슨 이야기길래 NOeSIS는 그렇게 인기를 얻었을까? 

 '거짓말을 하는 기억의 이야기'는, 주인공인 시시쿠라 시구레가 학교 옥상에서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소녀, 타카시로 치야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우연히 교내에서 벌어지고 있던 자살 사건에 휘말리면서, 치야의 다른 인격인 마야, 소꿉친구인 치요다 코요미, 그리고 여동생 시시쿠라 유키가 얽힌 진상을 알아가게 된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이다. 

 '우화'는 1편에서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던 사건이 실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반전과 함께 벌어지는 새로운 사건과 그 마무리를, 그리고 '노래하는 그림자의 허곡'은 위의 일들이 일어나는 씨앗을 뿌리게 된 과거의 어느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옥상에서 이 아가씨를 만난 것이, 가볍게 플탐 50시간이 넘어가는 장대한 이야기의 시작>


이렇게 설명하면 미스테리한 자살 사건을 해결하는 일종의 추리 소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서스펜스와 호러가 장르에 달려있는 것은 폼이 아니라서, 항상 시구레와 플레이어는 알 수 없는 현상과 미지의 존재, 그리고 이전까지의 정보로는 설명이 안 되는 사건들에 시달린다. 

거기에 불안함과 공포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현실성 같은건 가볍게 엿바꿔먹는 설정들도 나오는데다가, 워낙 반전과 통수가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큰 그림을 보기도 까다롭다. 

이렇게 설명하면 대체 왜 이 게임이 인기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반대로 이런 복잡한 내용이 그만큼 충성도 높은 팬층을 양성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 아예 이 게임의 팬클럽이 따로 조직되어 활동되고 있을 정도.


<떨어지고 있는 붉은 액체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거 맞습니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던 작품

 컬트적인 지지란 말을 뒤집으면, 일반적으로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이야기란 의미이기도 하다. 

 이걸 설명하기 좋은 가장 좋은 예시로, 이 게임의 히로인들의 상태를 들 수 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치야는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중인격자인데, 소꿉친구인 코요미는 한술 더 떠서 마네킹을 자신의 부모님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으며, 여동생인 유키는 미소짓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탁월한 심리장악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예 11년 당시 1편의 정식 소개글에서 메인 히로인인 셋 모두 '정신이 병들어 있다'고 직접 인증했을 정도로 다들 상태가 안 좋다. 

 더 큰 문제는, 본편을 읽다보면 저 소개글조차도 빙산의 일각일 수준의 심각한 사안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녀들을 둘러싸고 있다는 점이지만.


<클리어 후 다시 보면 감회가 새로워지는 장면>

 발매 국가를 한국으로 가정할 필요도 없이, 일본이었어도 만약 정식 회사에서 이런 게임을 냈다면 아마 여러 곳이 불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인 시장의 장점,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자본의 구애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지점이 NOeSIS를 이렇게 타협없는 극한까지 밀고 나갈 수 있게 했다. 

 물론 그 외의 요인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일본 동인 시장은 월희나 쓰르라미 울적에란 다른 걸출한 작품들이 이미 이런 비현실적 서스펜스 장르의 토양을 닦아두기도 했고, 당시엔 저런 히로인들이 일종의 모에 코드로 소비되던 시절이라 유저층의 반응이 호의적인 것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이 쓰고 싶은 걸 마음껏 쓸 수 있게 해준 동인이란 플랫폼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갈 때까지 가버린 NOeSIS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얼핏 보면 단순히 무서워보이는 이 연출이 나중엔 슬퍼질만큼의 중후한 이야기도 없었을 것> 


10년이 되어가도 사그러들지 않는 열정

 클래식 쇼콜라의 내부 인원이면서 실질적인 제작자로 추정되는 사람은, 지금도 Twitter를 통해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따로 의료 계열에 전문직으로 종사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데다, 종종 마일리지를 모으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걸 보면 아마 삶이 그리 궁핍하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동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만든 신작이나, 엔진 교체를 통한 구판의 HD 리마스터 베타판 등을 무료로 개발, 공개하고 있다.

 거기에 다양한 게임 개발자 모임에도 자주 참석하고 있는걸 보면 대체 몸이 몇개인지 궁금해질 정도. 

 어쩌면 NOeSIS의 성공은 이런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게 아닐까, 지금도 곰곰히 생각해본다.


<열정의 상징 그 자체인, 지금도 다운 가능한 구판의 HD 리마스터 베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