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나가라 청춘 스파킹

달려나가라

청춘 스파킹


청춘이 별건가? 솔직히 이런 미소녀 한명만이라도 같은 반이었으면 그게 청춘이지.

by 사요

 

 

근 10년 동안 ‘아픈 게 청춘’이란 희대의 망언 때문에 더더욱 입방아에 오르내린 단어, 청춘. 

청춘의 사전적인 의미는 “10대 후반에서 20대에 걸친 인생의 젊은 나이, 혹은 그 시절”이다.


그런데 사실 청춘만큼 미소녀 게임을 잘 나타내는 단어도 없다. 

대개 고등학교/대학교 시절의 연애를 주요 소재로 삼는 장르적 특성상 청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애초에 그런 미소녀들이랑 연애를 즐기는 시점에서 이미 그냥 모든 미소녀 게임이 다 청춘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라고도 할 정도. 

그러다보니 청춘이란 것 자체를 주된 테마로 잡는 작품들도 심심찮게 보이는데, 오늘 볼 작품이 바로 그 중 하나이다. 

바로 올해의 따끈따끈한 신작 <달려나가라 청춘 스파킹>, 이하 <청춘 스파킹>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알고 보면 잘 나간 작품도 몇 개 있는 실속파 회사

<청춘 스파킹>은 일본의 미소녀 게임 회사 SAGA PLANET이 올해 8월에 발매한 작품이다. 

참고로 이 괴상한 제목은 작중에서 모 캐릭터가 동아리 구호로 제안하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흔히 ‘사가플래’라고 줄여 부르는 이 회사는 1998년부터 게임을 발매했으니까 대략 20년 이상 역사를 이어온 중견 기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초기에는 방향성을 못 잡고 이런저런 장르의 게임을 마구잡이로 냈던지라, 지금 보면 딥다크하기 그지없는 작품들도 있어서 내부적으로도 회사의 초기작들은 전부 흑역사처럼 취급하고 있다고 한다. 

개중에선 2001년에 발매한 <연애CHU!>란 작품이 그나마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사실 게임 그 자체보단 해당 게임의 주제곡이 흔히 '‘전파송’이라 불리는 중독성 짙은 노래의 효시로 대히트를 친 덕이 컸다. 

뭐, 회사 입장에선 팬디스크를 낼 정도로 팔아먹은 모양이니 아무래도 좋았겠지만.


그렇게 여러모로 방황하던 이 회사는, 2008년 발매한 <Coming×Humming!>이란 작품을 시작으로 이른바 사계절 시리즈가 히트하면서 지금의 모습 - 캐릭터성과 스토리성을 적당히 반반 섞은 순애 계열의 미소녀 게임 전문 회사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그 이후로는 대략 1년 ~ 1년 반 정도 주기로 신작을 꾸준히 내고 있다. 

2012년작 <하츠유키사쿠라>, 2017년작인 <금빛 러브리체>가 특히 팬들은 물론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큰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꼽힌다. 

비록 미소녀 게임에 관심이 없어도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대성한 회사는 아니고, 거기에 중간중간 혹평 받은 작품들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20년 넘게 망하지 않고 평균적으론 평타 이상으로 평가받는 게임들을 꾸준히 만들어왔으니, 이 정도면 그래도 충분히 알짜배기 회사라고 할 만하겠다.

 

<연애CHU!>는 메인 히로인이 남장여자란 점도 묘한 인기에 한몫했다.


 지금도 종종 이 회사의 최고 아웃풋으로 꼽히는 <하츠유키사쿠라>


알바 뛰면서 돈 버는 것도 훌륭한 청춘 아냐?

그럼 이름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 스파킹>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 게임의 주인공인 토노 유우는 여러 사정 때문에 공부와 아르바이트면 하루 일과가 끝나는 빡빡한 삶을 사는 학생이다. 

공식 홈페이지 소개에 “취미: 통장 잔고 확인”이라고 적혀있으니 말 다한 셈. 

하지만 이 녀석의 팔자는 미소녀 게임 주인공인지라, 주변에 그의 일상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미소녀들이 많다. 

소꿉친구인 히비키와 나기코, 여동생인 리츠, 같은 반 반장 리리, 후배 시오리와 킷카 등이 짧은 학생 기간 동안 청춘을 즐기라면서 주인공을 이런저런 일들에 끌고 다니다가, 결국 거기에 굴복한 주인공이 모두와 함께 즐거운 학창 시절을 만끽하자는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 이 게임의 배경 되시겠다. 

주인공 입장에서는 정말 쓸데없는 참견의 연속이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럼 이런 게임에 나오지 말았어야지.


사실 어떻게 보면 참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철이 제대로 들어서 인생 똑바로 살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게임 내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는 시선은 ‘인생에 한 번밖에 없는 학창 시절에 좀 더 다른 것들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으로 귀결된다. 

그럴싸한 고민이지만 “그럼 뭘 해야 학창 시절을 잘 보내는 건데?”하고 질문해보면 뾰족한 정답이 있진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히로인들의 의견이 갈린다. 

단체로 해수욕을 즐기거나 축제에 참가하러 가는 등 신나게 놀자는 파벌이 있는가 하면, 그보단 봉사활동 같은 좋은 일을 하면서 마음의 안식을 찾자는 모범생도 있는 식으로 말이지. 

<청춘 스파킹>은 그 중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주장하진 않는다. 

그저 다양한 의견들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결국 주인공이 어떻게 청춘이란 단어에 납득해 가는지 보여주는 것을 주요 내러티브로 삼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조미료로 넣은 배경과 반전 스토리

사실 대부분의 미소녀 게임은, 위에서 설명한 수준의 적당한 배경을 깔고 그저 주인공과 히로인이 하하호호 연애하는 내용으로만 채워 넣는 것으로 끝난다. 

거기에 좀 더 신경을 쓰면 한두 개 정도 해결해야 할 갈등이 생겼다가, 또 어찌어찌 잘 해결되는 전개를 써주는 정도? 

만약 히로인 개별 루트 전체를 엮어서 하나의 큰 이야기를 짜거나 아예 진 엔딩이라 불리는 그랜드 루트 같은걸 써내면, 거기서부턴 스토리 중심 게임이란 딱지가 붙는 소수파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청춘 스파킹은 분명 스토리 중심 게임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대신 이야기적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몇 가지 스파이스를 뿌렸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인공의 과거사와 관련된 부분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공부와 아르바이트 말고 인생의 낙이 없는 주인공이지만, 사실 그도 할 말은 있다. 

과거의 몇 가지 불행한 사고 때문에, 실질적으로 소년 가장 같은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 이렇듯 이 작품에서는 '과거에 있었던 어떤 일'이 각 캐릭터들의 주요 동기로 작용하는 일이 많은데, 그렇다고 <청춘 스파킹>은 처음부터 뒷사정을 시시콜콜 늘어놓진 않는다. 

초반부터 뭔가 있긴 있었나 싶은 냄새만 잔뜩 맡게 하면서 질질 끌고 가서는, 히로인 개별 루트에 가서야 실은 이런 게 있었다고 하나둘씩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식이다.

개중에는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것도 있지만, 알고 보니 그게 이런 거였어? 

싶은 내용들도 있는데, 캐릭터 게임과 스토리 게임의 균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작품의 몰입도를 돋구는 역할을 한다. 

그 중에는 그래서 결국, 이 작품이 ‘청춘’으로 뭘 말하고 싶었는지 느끼게 해주는 내용도 있으니 더더욱 좋고 말이다.


삶에서 가장 빛났던 시기의 이야기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근래에 들어서 청춘이란 단어는 대개 나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 어원일 정도로 좋은 뜻의 단어지만, 실제로는 그 새싹을 짓밟아서 자기 이득을 채우는 나쁜 사람들이 많아진 탓이 아닐까 싶다. 

이게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도 살기가 힘들어졌는지, 요즘은 청춘이란 소재의 어두운 작품들이 이곳저곳에서 많아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청춘 스파킹>은 어떤 의미로 구시대적인 작품인 셈인데, 사실 미소녀들에게 청춘 청춘 소리 들으면서 끌려다니는 이야기가 말도 안 된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이런걸 보면서 기분전환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에 청춘이란 단어를 붙이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되는 세상이 되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