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속 술꾼 누나들!

애니 속 술꾼 누나들!


CHEERS! 맥주가 간절할 때가 있다.

그래서 찾아봤다.

by 청익




<에반겔리온>

카츠라기 미사토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사실상 독보적인 주당 캐릭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녀. 평소의 빠릿빠릿하고 쿨한 이미지와는 달리 퇴근하면 나사가 몇 개 빠진 듯한 갭모에를 보여주는 탓에 팬이 많았다. 특히 ‘퇴근 후 고정맥주’ 기믹은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주당 OL’이라는 캐릭터를 양산하게 만든다. 특히 제작진이 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에비스’ 브랜드를 각별히 좋아한다는 설정 덕에 삿포로 맥주(에비스는 삿포로 맥주의 하위 브랜드 중 하나다. 하위 브랜드라고 계급이 낮은 건 아니다. 오히려 고급화 품종이다!)에 지금도 종종 광고모델로 쓰일 정도다. 남자 캐릭터에서 <도박파계록 카이지>의 카이지가 있다면, 여자 캐릭터 중에선 미사토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맥주를 호쾌하게 마신다. 그녀의 시원한 목넘김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현역일 정도로 전설로 남아있다.


< 아즈망가 대왕>

타니자키 유카리


작품이 작품이라 음주 장면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주량도 약하면서(당신과 같네?) 유난히 술을 좋아하고(이것도 당신이랑 같네?) 일단 마시면 아주 귀찮아지는(당신 이야기였군!) 캐릭터가 <아즈망가 대왕> 때부터 늘기 시작했다. 

‘학교 교사라고 보기엔 뭔가 문제가 있는’ 캐릭터지만 개그물이라는 작품의 특성상 좀 이상해도 관대하게 넘어가게 된다. ‘일에 치이고 성격에 결함(?)이 있어 연애를 하지 못하는(왠지 당신에게 막 미안해진다!)’ 캐릭터라서 여기저기 피해를 주지만 미워하긴 힘들다. 이런 캐릭터의 계보는 2000년대 중반부터 등장 빈도가 부쩍 늘기 시작하여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사고뭉치 캐릭터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늘면서 등장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현실을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술 들어가면 개(?)’로 변신하는 친구들이 하나둘은 있다. (당신이 바로 그 친구라는 점은 유감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공감대와 어그로를 함께 끌어내는 유카리 류는 대체 불가능한 포지션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뭐, 그래도 교사로는 좀 아닌 것 같지만.


<프린세스 커넥트>

유카리


 주당 OL 기믹이 판타지로 넘어가면 이 모양이 된다. 특히나 앞의 둘은 평소의 이미지가 당당하거나 뻔뻔하기에 술이 깬 뒤에도 후폭풍이 덜하지만, 프리코네 유카리의 경우는 다르다. 평소에는 매우 소극적이고 생각이 많은 성격의 그녀는 술만 들어가면 적극적이고 앞뒤 생각 않는 180도 다른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술이 깨고 나면 취해서 저지른 행동에 또다시 소극적으로 돌아가는 성격이라 은근히 팬이 많다. 성우와 캐릭터가 매우 근접한 케이스 중 하나인데, 담당 성우인 이마이 아사미는 알코올은 매우 약한 편인데, 술이 들어가면 순식간에 취하는 데다 취하고 나면 아저씨개그를 날리거나 뜬금없이 옆의 성우에게 키스를 날리거나 하는 등 대담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본인도 자각하고 있어서 2010년 이후로는 가급적 술을 피하고는 있지만, 이미 저질러 놓은 사고가 워낙 유명해서(아이돌 마스터 관련 방송에서 술에 취해 바닥을 뒹굴고 동료 성우에게 추근덕대거나 키스하는 등 증거 영상이 아직도 남아있다) ‘노밍고스(ノミンゴス: 술을 마시다는 노미 飲み에 +별명인 밍고스ミンゴス를 합한 단어)’라는 별명은 아직도 방송에서 종종 쓰이고 있다. 특히나 프리코네 캐릭터 관련 인터뷰에서 ‘워낙 본인과 비슷한 캐릭터라 연기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녹음하는 편이다’라고 자백한 적이 있을 정도로 연기가 자연스럽기도 하다. 근년의 주당 OL 캐릭터 가운데 탑3안에 든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아쿠아

여신이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여신의 위엄은 찾을 수 없고, 술이 안 들어가도 뻔뻔하고 능글능글한데 술이 들어가면 더더욱 골치 아파지는 캐릭터. 원작 자체가 ‘정상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막장 개그물이다 보니 성립될 수 있는 캐릭터이긴 한데, 애니메이션에서 담당 성우의 연기가 워낙 탁월하여 일약 ‘유감스러운 히로인’ 계통을 널리 보급시킨 주범이기도 하다. 돈 없을땐 맥주, 돈이 있을 땐 독주를 항상 챙긴다. 과음으로 뒷골목에서 총천연색 무지개 구토를 하는 장면은 신비감이고 뭐고 여지없이 박살을 내기에 충분하다. 그나마 간혹 진지한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채 1분을 가지 못한다.


<클로저스>

김유정

 

스토리에서 대놓고 <카이지> 패러디를 섞고, 캐릭터 프로필에 ‘좋아하는 것’을 술이라고 밝힐 정도로 확고한 주당 캐릭터다. 그러나 정작 주량은 그다지 세지 않아 맥주 한 캔에 취해버린다. 인사불성이 되어 부장의 멱살을 잡기도 하고, 유저에게 주정을 부리며 치근덕대는 장면도 나오며, 평소에는 청소도 빨래도 못하고 숙취에 시달릴 정도로 엉망이지만 나름 능력 있고 할 일은 하는 ‘유능한데 취하면 망하는 OL’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나마 여타 주당 OL 캐릭터보다 나은 점이라면 나중에라도 연애 플래그를 세우고 순조롭게 커플링에 성공했다는 점 정도이고, 안타까운 점이라면 현재 절찬리에 사망 플래그가 난립하여 목숨이 간당간당하다는 점일까.


서양의 주당 캐릭터

처음 캐릭터를 정리할 때엔 동양이 유교적 관습 때문에 여성 캐릭터가 적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서양 게임/애니메이션에선 주당 여성 캐릭터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을 발견했다. ‘컨텐츠 등급제나 음주/흡연에 대한 단속이 철저해서’라고 하기엔 남성 캐릭터가 주당인 경우는 매우 흔하지만 유난히 술을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가 거의 없고 간혹 등장하더라도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이는 수준이었는데,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음주문화의 차이일까, 아니면 갭모에가 보급이 되지 않아 ‘취한 여성’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탓일까, 그도 아니라면 바다 건너에는 ‘술 취하면 귀여워지는’ 여성상이 흔하지 않아서일까. 어느 쪽이건 ‘정통파 서양 덕질컨텐츠’에는 술 들어가서 확 바뀌는 캐릭터를 찾기 힘들었고, 반대로 동양에선 1990년대 이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최근에는 두세 작품에 한 캐릭터 꼴로 반드시 들어가는 수준이 되어있었는데, 아마도 일이 힘들고 삶이 힘들어지며, 서서히 음주문화가 단체에서 개인으로 옮겨온 탓에 작품에서도 자연히 늘어난 건 아닐까 한다. 아무리 삶이 힘들더라도, 음주는 책임감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