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자이언트가 뽑은 최고의 게임 하드웨어 20

크레이지자이언트가 뽑은 

최고의 게임 하드웨어 20


진짜 최고냐고? 원래 역사는 미래에서 평가해야 정확한 법이다. 

그래도 우리가 보기에 게임의 역사에서 중요할지도 모르는 하드웨어 20개를 열심히 골라봤다. 

그러니까 이정도만 기억해도 어디 가서 아는 척은 할 수 있을 거다.

by 사요



 

게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려면 최소한 바둑의 탄생까진 찾아봐야 할 정도로 까마득하지만, 콘솔이나 PC 게임의 역사만으로 한정한다고 해도 제법 꽤 오랜 시간을 돌아봐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최초의 전자식 게임기기란 단어를 찾기 위해선, 무려 1912년의 체스 묘수풀이 기계를 봐야하니까 최소 100년은 들여다봐야 하는 셈이다. 

뭐? 아는게 플레이스테이션이 어쩌구 같은 것 밖에 없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딱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적당히 뽐낼 수 있을만큼의 중요 액기스들을 여기에 모아뒀으니까. 

아래 있는 이야기를 써먹으면 뭐 그런걸 다 알아? 란 반응을 얻어내는데는 충분할 것이다. 

단, 그렇다고 정말 제대로 판 사람들 앞에서는 까불지 말 것. 알고 보면 이 분야도 수많은 논문들이 쌓여있는 나름 전문 분야니까 말이다.


마그나복스 오딧세이 (1972)


미안하다. 9월호에도 소개한 기기를 다시 들고 나왔다. 

그래도 게임의 역사를 바꾼 하드웨어를 정리하면서 최초의 콘솔 게임기를 빼먹을 순 없진 않겠나? 

아무튼 이 녀석을 전자 게임기라고 부르자니 ‘전자’라는 단어에 좀 미안해지긴 한다. 

당시 기술의 한계 때문에 CPU 같은 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디스크도 없어서 게임 카드를 꼽아서 작동시켰으며, 심지어 게임 카드에 맞는 셀로판지를 TV에 붙이면 디스플레이는 완성되는 식이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게임기와는 아예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지만, 그래도 35만 대나 팔린 게임기의 위대한 선조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TV화면에 붙인 셀로판지에는 기껏해야 점 같은 게 몇 개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퐁 (1972)


닉스의 핑퐁 외교로 전 세계에 탁구 열풍이 몰아쳤다. 

게임 업계에서도 핑퐁을 전자오락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이 게임이다. 게임 설명도 아주 쉽다. 

1.막대를 움직여서, 2.공을 튀긴다. 끝. 

정말 이게 전부다. 

하지만 이 퐁이 없었다면 비디오 게임 시장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농담하지 말라고? 

아예 아케이드 게임기란 개념이 없던 시절에 발매되어 단 2년 만에 업소용으로 8,000대 이상 판매되었고, 1975년에는 가정용 한정판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내놓으며 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다. 

퐁은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많은 게임 잡지들이 퐁을 비디오게임의 시초로 꼽고 있고, 경제 전문가 가운데에는 퐁을 역대 가장 파급력 있는 비즈니스 아이디어 제품으로 언급하는 이도 있을 정도다. 

퐁의 개발회사인 아타리는 미국 게임업계의 왕으로 등극해서, 전 세계 게임시장을 좌지우지했다. 

나중에 삽질로 게임업계의 대빵 자리를 일본에 넘기기 전까지 아타리는 왕 중 왕이었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일직선 두개와 튀어나가는 점 하나, 이 단순함이 게임의 역사를 바꿨다.


아타리 2600 (1977)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와 퐁의 성공으로 전자게임의 산업이 일어섰다. 

그리고 결과물인 다양한 콘솔 게임기들이 등장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놈, 달리 말해 가장 흥했던 게임기를 꼽으라면 당시 ‘아타리 비디오 시스템’이란 이름으로 팔린 이 녀석을 꼽아야 한다. 

이 시기쯤 되면 ‘스페이스 인베이더’나 ‘팩맨’ 같은 게임들이 돌아갈 정도로 게임기의 기술력이 올라왔다. 

전자게임이 마냥 무시만 당할 수준은 벗어났단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아타리 2600은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대 가량 팔려나갔다. 

<타임>도 아타리 2600을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전자기기 중 하나로 꼽았을 정도다. 

이 기기는 아타리에서 똥겜을 너무 많이 찍어내서 소비자의 신뢰를 잃어버린 희대의 삽질, 소위 아타리 쇼크가 터지기 전까지 콘솔 시장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이쯤 되면 우리가 아는 게임기의 모습이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게임 & 워치 (1980)


어쩌면 이름부터 생소할 수도 있는 휴대용 게임기다. 

휴대용 게임 시장을 개척한 공로로 이 자리에 모셨지만 이 녀석이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어느 회사 출신인지 들으면 ‘아, 그렇구나’ 하고 선정의 이유를 납득할 거다. 

게임 & 와치는 지금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꽉 잡고 있는 닌텐도의 전설을 연 출발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4천만 대 이상 팔릴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고, 게임패드에 십자 키란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다, 

지금도 스매시 브라더즈나 마리오 35주년 기념 기기 등을 통해 여전히 상징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게임 & 워치는 중요하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사실 게임패드에 십자 키란 개념을 넣은 것만으로도 역사적 가치는 충분하다.


IBM PC (1981)


사실 게임과 하드웨어의 역사를 다루면서, 컴퓨터를 다루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 

컴퓨터야말로 가장 널리 퍼진 게이밍 기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컴퓨터의 역사를 시시콜콜하게 늘어놓는 건 지루하니까 관두자. 

현대적 의미의 개인용 컴퓨터, 줄여서 PC의 개념을 제시한 IBM 컴퓨터를 대표주자로 하나 꼽아 넣는 선에서 타협하자. 

IBM PC는 최초의 PC라고 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래도 IBM PC는 아키텍쳐라 불리는 수많은 시스템 장치들의 규격을 오픈 소스로 풀어버렸다. 

그 덕분에 IBM PC 호환기종이라 불리는 거대한 생태계가 생겼고,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 생태계의 업그레이드 버전에서 놀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존하는 거의 모든 컴퓨터는 이 IBM PC 호환기종이란 규격 안에 들어간단 거다. 

지금 당신이 쓰고 있는 컴퓨터도 전부 이 IBM PC의 어깨 위에서 만들어진 물건이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286, 386, 486 등 전설적인 녀석들이 이 녀석의 직속 후배인 셈이니, IBM PC는 얼마나 위대한가?


닌텐도 패미컴 시스템 (1983)


위에서 살짝 언급했지만, 아타리 쇼크는 사실 게임 시장 자체를 박살낼 정도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소비자들이 전자게임에 학을 떼고 떠나가려 한 건데, 과연 게임업계는 어떻게 떠나려는 소비자들을 잡았을까? 

실연은 새 연애로 덮어버리듯, 망한 게임기는 흥한 게임기로 눌러버리면 그만이다. 

닌텐도 패미컴 시스템이 다시금 흥행하면서 게임 시장은 산소호흡기를 치우고 발딱 일어섰다. 

어떤 이는 패미컴 시스템이 로큰롤의 역사에서 비틀즈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까지 평한다. 

일단 시기는 겹친다. 

그리고 비틀즈가 그랬듯 패미컴도 1980년대의 자기 시장을 완전히 독식했다. 

비틀즈의 ‘헤이 쥬드’나 ‘예스터데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완전히 각인된 것처럼, 패미컴도 슈퍼마리오나 젤다 같은 레전드 게임들을 내놓았다. 

닌텐도 패미컴은 현대식 게임 패드의 규격도 확립했다. 패미컴을 빼면 게임기의 역사가 통으로 날아갈 정도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이 화석 냄새가 풍기는 사진도 벌써 10년 전이라니, 얼마나 옛날 게임기란 말인가]


재믹스 (1985)


앞에서 미국과 일본의 여러 게임기들을 보았다. 그럼 우리나라는 게임 산업이 불모지였는가? 

사실 결국 다 망해서 그렇지 알고 보면 우리도 참 다양한 게임기들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최초의 선구자로 불리는 게임기가 바로 ‘재믹스’다. 

‘재미있다’를 변형시킨 게임 이름은 참 아재스러우면서도 왠지 고향의 훈훈함을 풍긴다.


대우전자에서 만들었지만 사실 일본의 MSX 컴퓨터를 기반으로 했다. 

물론 그걸 그대로 가져다 쓴 건 아니고, 나름대로 변형도 했고 후기 버전은 정식 라이선스도 받았다.

재믹스 네오나 미니 등, 일종의 복각판이 발매되면서 삼촌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재믹스 이후로는 국산 게임기의 씨가 말라버렸다. 

우리 것을 개발하는 것보다 외국 제품의 수입 판매가 더 돈이 되었던 탓이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그래도 대한독립만세고, 재믹스 만세다. 재믹스가 한국 게임기 역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PC엔진 (1987)


PC엔진은 일본의 허드슨(지금의 코나미)이 주도해서 개발한 게임기다. 

사실 이 녀석은 앞의 쟁쟁한 어르신들처럼 크게 성공했거나 역사적 의미를 지니진 않았다. 

하지만 이 게임기의 판매 전략은 이후 게임 하드웨어 시장의 모범답안이 되었다. 

본체는 최소한의 기능만 가지게 한 후 추가 파트를 덕지덕지 붙여서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거다. 

PC엔진 이후 확장성의 확보는 게임 하드웨어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 되었다. 

게다가 1988년의 추가 파트인 CD-ROM^2이란 녀석 덕분에, PC엔진은 CD롬을 입력매체로 받는 최초의 게임기란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게임 카드에서 카트리지를 넘어, 현대식 게임기로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하게 된 순간이었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물론 그렇다고 디자인까지 현대식 게임기를 따라온 건 아니었다.


메가 드라이브 (1988)


닌텐도 패미컴 시스템은 1980년대 게임 시장을 꽉 잡았다. 

하지만 메가 드라이브가 발매되면서 게임 시장 사정은 달라졌다. 

지금은 세가란 회사가 그저 소닉과 파란 가죽 퇴물로밖에 기억되지 않지만, 이때만 해도 북미에서 닌텐도와 유일하게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게임기 회사였다. 

해외에선 세가 제네시스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 게임기는, 1990년대 초에는 닌텐도 패미컴 시스템보다 더 높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메가 드라이브의 등장 이후 1990년대는 콘솔 게임기의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이 녀석은 대전쟁의 서막을 화려하게 연 명품 기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슈퍼 겜보이 또는 알라딘보이란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아! 단말마를 내뱉었다면 아재 인증한 거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여전히 소닉 IP가 살아있고, 골수 세가 팬이 남아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게임보이 (1989)


게임 & 워치의 후속으로 발매된 이 기기는, 결과적으로 이후 휴대용 게임기 시장의 역사를 결정지어 버렸다.

게임보이의 발매 이후 약 30년 동안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닌텐도에게 그나마 비벼볼 수 있었던 녀석은 고작 PSP 하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1989년 발매된 흑백 사양으로만 6천만 대 이상을, 이후 발매된 컬러 버전까지 포함하면 1억 대 이상 팔린 닌텐도 게임보이 앞에선 어떤 휴대용 게임기도 허리를 꼿꼿이 펼 수 없다.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독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서, 이후 게임보이 어드밴스, 닌텐도 DS, 그리고 Switch로 이어지는 완벽한 라인업으로 이어졌다. 

게임기의 경쟁 이런 이야기는 전부 콘솔 게임기 시장에 대한 이야기고, 휴대용 시장은 얄짤없이 닌텐도가 항상 먹어왔다. 

그 시작이 바로 게임보이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어렸을 때 이걸로 포켓몬 안 해본 아저씨 있나요?


PlayStation (1994)


PlayStation이 이제야 등장한다는 사실에 놀라는 이도 많을 거다. 

지금 이 시점에서 콘솔 게임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건 Sony이고, 곧 5번째 모델 발매를 앞두고 있는 Sony의 간판타자가 PlayStation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원래 콘솔 게임 시장은 아타리에서 닌텐도로 주도권이 넘어갔다가, 세가를 위시한 (여기선 대부분 생략한) 수많은 회사들이 참전해서 싸우는 진흙탕이었다. 

Sony는 1994년이 되어서야 참전한 후발주자다. 

그래도 뭐, 결과는 다른 누구보다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도록 하겠다. 

단, 이때만 해도 PlayStation이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석권! 같은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만 주의하도록 하자.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PlayStation의 모습은 지금 보면 어색하기까지 하다. 조상을 찾아갔는데 원숭이를 만난 느낌이랄까?


닌텐도 64 (1996)


엄밀히 말해서, 닌텐도 64는 성공한 게임기라기엔 애매하다. 

3천만 대 이상을 팔았고, 모든 3D 게임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슈퍼마리오 64’와 ‘시간의 오카리나’란 걸출한 명작을 배출했으며, 3D 조작이란 개념과 진동 기능을 후세에 남긴 게임 패드 등 다양한 의의를 지닌 게임기란 점에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닌텐도가 콘솔 게임 시장에서 걸어온 성공가도가 너무나도 화려했기에 이 정도론 부족했다. 

결과적으로도 닌텐도 64는 콘솔 게임 시장에서 닌텐도의 입지가 무너지는 출발점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건 닌텐도 패미컴 시스템과 그 후속작인 슈퍼 패미컴이 그만큼 얼마나 위대한 게임기였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저 삼지창 모양의 게임패드 중, 가운데 스틱이 바로 3D 게임을 위해 고안된 녀석이었다.


드림캐스트 (1998)


세가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닌텐도와 자웅을 겨루었다. 

하지만 세가 새턴이 생각만큼 성공하지 못하면서 세가는 조금씩 쇠퇴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세가가 마지막 발악으로 내놓은 게임기가 이 드림캐스트다. 

이상하다고? 처음 듣는다고? 그럴 거다. 망했으니까. 

악재가 두루두루 겹쳐서 폭망했는데, 가장 큰 악재로는 PlayStation2의 출시를 들 수 있겠다. 

게다가 게임 소프트웨어의 머리싸움에서도 PlayStation 진영에 밀려버리면서 회생 불가능 판정을 받았다. 

드림캐스트를 마지막으로, 1990년대의 콘솔 게임 시장에선 Sony가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닌텐도 64가 닌텐도 지위 하락의 서곡이었다면, 드림캐스트는 Sony를 제외한 다른 모든 콘솔 게임기들의 몰락을 상징했던 셈이랄까.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서양에는 아직도 ‘드림캐스트 2가 나올 거야!’ 하고 꿈을 꾸는 열성팬들이 남아있다. 그 꿈은 묘지에도 가져가게 될 것 같다.


XBOX (2001)


솔직히 이야기해보자. XBOX, 게임기 시장에서 PlayStation에 밀려 그리 힘을 못 쓰고 있는 것이 맞다. 

PlayStation3에서 Sony가 한번 삐끗했지만 결국 이기지 못 했고, 당장 게임 소프트 풀 자체부터 비교가 안 되기도 하고. 그럼에도 이 게임기를 여기에서 꼭 언급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래도 이 녀석이라도 없었으면 20년 내내 Sony가 거치형 콘솔 게임기 시장을 혼자 다 해먹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타리 이후 게임 시장 왕좌 다툼에 아주 오래간만에 코쟁이 손님이 찾아왔다는 사실도 가산점의 요인이었다. (일본 혼자 해먹는 건 우리도 지겹다.)

X360에서 PC용 게임패드의 사실상 표준을 확립했다는 점도 나름 의미가 크다. 

찾아보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업적이 있는 게임기이기도 한데... 업적을 열심히 찾아봐야 하는 게 좀 짜증난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지나치게 서양인용으로 디자인된 초기 컨트롤러는 욕을 먹어도 쌌지!


PlayStation Potable (2004)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유일하게 닌텐도를 위협했던 기기. 

사실 이 정도면 PSP의 위엄 설명은 끝났다. 

7천만 대가 넘게 팔렸고, 21세기의 워크맨이란 별명 그대로 음악 감상, 라디오, 인터넷 브라우징, DMB, 카메라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누릴 수 있는 막강한 성능에, PlayStation과 일부를 공유하는 무궁무진한 게임 소프트웨어들까지. 

하지만 찬란했던 시대도 잠깐, 후속작인 Vita에 가서는 완벽하게 몰락하고 만다. 

그래도 약 10년 동안 PSP가 있었기에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는 선택이 존재했고, 아예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기 전까지 닌텐도의 독주를 유일하게 견제할 수 있었던 기기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후계자가 중요하다. Vita만 그렇게 참패하지 않았어도...


XaviX PORT (2004)


닌텐도와 Sony, Microsoft 셋이서 전부 다 해먹은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피땀 흘려 콘솔 게임기를 제작해서 야심차게 내놓은 회사가 적지 않다. 

다 망해서 그렇지. 그래도 앞에서 언급한 재믹스나 PC엔진처럼 나름의 족적을 남긴 기기들이 있는데, 읽기도 어려운 XaviX PORT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중요하다. 

이 녀석은 체감형 게임기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데, Wii보다도 2년, 키넥트보다도 6년 이상 앞서서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감지해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런 방향성이 이어져서 Wii Fit가 나오고, 링 피트 어드벤처가 나와서, 헬스 열풍과 Switch 판매 대란까지 일어났단 사실을 감안하면, 위대한 선구자로 박수 보낼 만하다. 

게임을 만든 사람들은 돈을 벌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물론 기기 성능도 안 좋고, 게임별로 컨트롤러가 모두 다르다거나 하는 문제들이 산 너머 산으로 이어졌다.


아이폰 (2007)


위에서 게이밍 기어의 대표격인 개념으로 PC를 언급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도 당연히 다루어야겠지? 

물론 이전에도 휴대전화는 있었고, 거기에도 수많은 게임들이 탑재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 이전과 이후의 모바일 게임은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면 IBM PC처럼 스마트폰의 대표주자를 하나 골라보자. 

몇 명이 투표하건 아이폰이 100% 득표할 거다. 

애플이나 스티브 잡스를 부정적으로 볼 순 있겠지만, 그건 주관적인 평가의 문제고 이건 객관적인 문제다. 

무조건 아이폰이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스마트폰 게임 생태계만 만든 게 아니다. 뽑기와 과금지옥도 만들었다.


키넥트 (2011)


XBOX가 비록 PlayStation에 밀려서 그렇지, Microsoft를 등에 업고 참신한 시도는 정말 많이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키넥트다. 간단히 설명해서, 사람의 움직임을 인식해서 그대로 게임에 반영하는 입력장치다. 

이전에도 아이토이나 Wii의 리모콘 등 비슷한 기기는 있었지만, 키넥트는 훌륭한 성능, 다양한 소프트웨어적 지원, 그리고 개발사가 Microsoft라 무궁무진한 분야에 응용이 가능한 점, 마지막으로 기존 모션 캡쳐 기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저렴했던 점 등이 기대를 모아, 지금도 기네스북에 가장 빨리/많이 팔린 가전기기 1위로 꼽힐 만큼 흥행했다. 

아마 당신은 키넥트를 들어본 적도 없을 테니, 키넥트가 얼마나 화려하게 반짝 타오르고 꺼졌는지 짐작할 수 있을 거다. 

그래도 키넥트의 유족 가운데 훌륭하게 성장한 녀석들이 꽤 된다고 한다. 

게임 말고도 모션 캡쳐가 필요한 수많은 분야로 퍼져 업계를 발전시키는 기폭제 가 되었단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조그만 막대기 모양의 카메라 하나로 이런 게 가능하다니! 모두가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큘러스 리프트 (2016)


업계에서는 21세기 들어서 단순한 거치형 게임기를 넘어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움직임들이 벌어졌다.

거기엔 체험형 게임기나 모션 인식 카메라 같은 자발적인 시도도 있었고, 모바일 기기의 발전처럼 외부에서 불어 닥친 자연재해 같은 변화도 있었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후자에 가까운데, 바로 가상현실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몰고 온 촉매 역할을 수행한 것. 

이후 홀로렌즈나 구글글래스같이 훌륭한 증강현실 기기까지 등장하면서 게임 업계는 이들 분야를 어떻게 게임에 녹여낼지 고심하게 되었다. 

뭐 달리 말하면, 이런 기기들이 ‘하프라이프: 알릭스’ 같은 명작들을 낳은 산파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옆에서 보기엔 무슨 헛짓거리인가 싶은 풍경이 곧 일상이 될 거다.


Switch (2017)


긴 시간 동안 잘 알려진 여러 거치형 게임기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흔히 애플이나 삼성에 요구하는 ‘혁신’이란 단어를 거기에도 붙일 수 있는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Switch는 그런 맥락에서도 꼭 언급해야만 할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거치형/휴대용이란 구분을 근본부터 박살내기 때문이다. 

도크에 끼우면 거치형, 꺼내서 들고 다니면 휴대용으로 쓸 수 있는 이 파격적인 게임기는, 좋게 말하면 하이브리드, 나쁘게 말하면 반푼이 같은 설계를 들고 나온 셈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거치형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 오래간만에 닌텐도가 부활했음을 알리는 성대한 축포를 쏘며, 지금까지 6천만대 이상을 팔아치우며 시장에서 순항하고 있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한마디: 사실 게임기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단 점만 따져도 충분히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