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코카와 - 미소녀게임, 고양이 귀여워하기

네코카와


미지의 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쓴 후, 
거기에 있던건 고양이귀였다?


겉보기와 다르게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화제였던 미소녀 게임

고양이 귀여워하기

 지금 이 기사를 적고 있는 시점에선, 전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세를 부리고 있는 상태이다. 

 실제로 기사가 나갈 즈음에는 이 기세가 부디 조금이나마 잦아들기만을 바랄 뿐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런 미지의 바이러스는 수많은 서브컬쳐 시장에서 단골 소재거리로 다뤄진 소재이기도 하다. 

 전염병 주식회사처럼 전염병 그 자체를 퍼트리거나, 바이오 하자드처럼 좀비 아포칼립스로 발전시킨 게임 등이 그 좋은 예시이기도 하고. 

 오늘 다룰 미소녀 게임도, 사실 시나리오에 미지의 바이러스가 등장한단 것 자체가 매우 크나큰 내용누설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지금도 이름이 아름아름 전해지는 작품, '고양이 귀여워하기! ~ 클레인 애완동물 병원 진료중', 이하 '네코카와'이다.


패기 있던 이름의 망한 회사 13cm

 일본에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귀여워하다'란 맥락의 관용어로 쓰이는 '고양이 귀여워하기'란 제목을 지닌 이 게임은, 2006년 2월 일본의 13cm란 회사에서 발매된 작품이다. 

 이 13cm는 아직 사이트는 살아있지만 작품을 발매한건 2012년이 마지막인 회사로, 모바일 이식적 정도의 정보가 그나마 있을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미 사업을 접은 것으로 취급받는다.

 이 회사의 최초 작품은 96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그래도 거의 20년 가까이 영업했던 셈인데, 이름만 들어도 뭐하는 곳인지 바로 알게 하기 위해서 회사명을 '일본 남성 그곳의 퍙군 길이'로 지었다는 일화가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그녀들의 유의'로 유명한 자매 브랜드인 130cm는 뜻이 키라는데, ...>


어쨌든 오랫동안 작품을 만들기도 했고, 본사 이외에도 여러 자매 브랜드가 있었던 탓에 작품 리스트는 여기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많기도 하고, 이름에서 눈치챘겠지만 여러가지 의미로 대놓고 어둠의 세계를 지향했기 때문에 사실 제대로 소개할 수도 없다. 

 그나마 멀쩡한 것들 중에서 유명한 것을 언급하자면, 자매 브랜드인 130cm에서 내놓았던 '그녀들의 유의'나, 역시 자매 브랜드인 otherwise의 'sense off', '미래에 키스를' 등이 2020년이 된 지금도 종종 미소녀 게임 팬들에게 언급될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당시 작품들에 참여했던 스태프들이 지금도 종종 다른 게임의 스태프 롤에서 보이는걸 보면, 어쨌든 실력은 확실했던 곳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미소녀 게임과 인식론을 융합시켜 논했던 전설(?)적인 작품, 미래에 키스를>


치(명적)유(해)물의 선조 같은 작품

 그럼 메인 주제인 네코카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게임을 당시 유저들이 처음 접했을 때 풀렸던 정보를 정리하면, 첫번째로 일러스트가 매우 귀여운데 특히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양이귀랑 강아지귀를 머리에 달고 있다는 것. 

 두번째로, 게임 소개에 대놓고 '이 세계엔 고양이귀와 강아지귀가 당연하게 존재하고, 주인공인 잭은 기억상실에 걸린 채 어느 병원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환자들과 이것저것 잘 하면서 평온한 일상을 지내는 이야기'라고 적혀있다는 것. 

 위에서 이 회사가 무슨 방향성을 뚜렷하게 가졌던 회사인지 대충 설명했으니, 이제 당시 유저들이 갓 발매된 네코카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도 역시 대충 알았으리라 믿는다.


<아마 이런 애들 고양이 아끼듯 귀여워해주는 게임이겠거니 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건 정말이지 사기를 친거나 똑같았다. 

 작품 내에서 각 히로인의 엔딩을 한번식 본 후에서야 제대로 이야기되는 진상은, '이 세계는 이미 고양이와 강아지를 멸종시킨 후, 사람에게 전염되어 기억상실, 수인화, 발광의 과정을 차례대로 거치는 치사율 100%의 전염병이 유행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배경과, 훈훈한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던 주인공을 포함한 대부분의 캐릭터는 곧 발광해 죽을 것이 확정적이라는 끔찍한 사실과, 그리고 이 병원에서 유일하게 인간인 히로인 '앨리스 클레인'이 어떻게 백신을 만들어 나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야말로 이 게임의 시나리오였단 점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구매 전에는 이 정보를 알 방법이 없었고, 결국 수많은 유저들이 게임 장르를 착각한 덕분에 발매 당시의 판매량과 평가가 폭삭 망했단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에서 ‘사실 난 곧 죽어’란 고백을 듣게 될 때의 기분이란>


우울증 게임과 휴머니즘 사이 그 어딘가

 사실 게임을 모두 클리어한 후에 되새겨보면, 위에 간단하게 설명한 반전이 얼마나 악의적으로 설계되어 있는를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이 게임에서 세계를 멸망에 몰아넣은 병명인 DOTES는 '애지중지하다'란 영어 dote에서 따왔는데, 알고 보면 이 게임의 오프닝 곡 이름이 'dote up a cat!'이다. 

 그럼 엔딩 곡 제목은 어떨까? 전염병으로 인한 비상사태를 의미하는 outbreak가 대놓고 들어간 'sweet outbreak'. 그 외에도 하필 DOTES의 증상에 ‘기억상실’이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은 마음 편하게 다 까먹고 있는 끔찍한 진상을 앨리스 혼자 견뎌내야 한다는 상황이 아주 적절하게 조성되는 점 등등, 게임 내외로 정말 꼼꼼히 신경을 써서 이야기를 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실 이 게임의 장르 자체를 '우울'이라고 정의하는 팬층도 있었을 정도였다.

<특히 전반부 시점엔 대체 앨리스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를 떠올려보는 것이 포인트>

 하지만 재밌는 것은, 반대로 이 게임의 주제를 '휴머니즘'이라고 정의하는 팬들도 있다는 점이었다. 

 글자 그대로 절망 그 자체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인류 모두를 구할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일행들의 노력이 그 이유겠지만, 그것이 단순히 고귀한 희생 이야기로만 포장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잭과 앨리스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에 절망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 병원에 들어왔으며, 결국 마지막에는 어떻게 죽어갔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포커스를 맞춰 설명했다는 점이 주된 이유라고. 

 특히 이 평가에는 시나리오 라이터가 발매 후 동인 자격으로 공개한 2개의 단편 소설이 일조했는데, 지금도 '미소녀 게임이란 장르의 한계 때문에 본편에 실리지 못 했을 뿐인 진정한 완결편' 취급을 받고 있다.


<사실 이 병원에 사연 없이 들어와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지나서야 재조명된 명작

 위에서 이미 한번 언급한 내용이지만, 그래서 네코카와는 발매 당시에 폭삭 망했다. 

 관계자 오피셜에 따르면, 당시 판매량이 2천장 정도였다고. 하지만 이후 조금씩 입소문이 퍼지고, 시나리오 라이터의 소설 등이 무료로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일부 매니아들에게 숨겨진 진주 취급을 받기 시작하더니, 발매 후 10년이 넘어서도 2-3배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어 중고 판매가 진행되는 수준이 이르렀다. 

 지금이야 이를 두고볼 수 없었는지 공식에서 다운로드 판매를 푼 덕분에 어느정도 진정되었지만, 당시의 푸대접에 비하면 천지차이인 셈. 

 발매 후 15년이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도 네코카와의 후계자는 커녕 비슷한 방향성의 미소녀 게임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니, 어쩌면 이 게임의 가치는 좀 더 길게 이어질지도 모른다.


<사실 미소녀 게임에서 몰살 루트를 내는 패기있는 회사가 요즘 없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