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의 명작이 새로운 IP를 만났다, 둥지짓는 카린쨩

Kavin

16년 전의 명작이 새로운 IP를 만났다, 

둥지짓는 카린쨩


최근 게임업계에 유난히 ‘복고’붐이 불고 있다. 

스타크래프트/워크래프트를 위시한 블리자드가 그렇고, 모바일은 리니지M을 위시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작들을 리메이크 혹은 리마스터하여 나오는 게 유행이 되어버렸다. 

사실 에로게 시장은 일찌감치 리메이크가 자주 있었는데, ‘하드웨어의 극적인 성능향상’, ‘시대의 흐름에 맞춘 재해석’, 그리고 ‘업계의 불황에 따른 신규 개발비용의 부족’이 찾아올 때마다 으레 리메이크가 유행을 탔다.

(이건 없던걸로 하자. 절실하게)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게임은 단순한 리메이크는 아니다. 

BUNNYBLACK, 둥지짓는 드래곤 등으로 유명한 Softhouse chara와 연희 시리즈로 유명한 NEXTON이 구두로 약속했던 콜라보레이션 계획을 실행에 옮겨 만들게 된. 

엄연히 새로운 게임이다. 

다만 IP가 연희무쌍 등으로 유명한 연희 시리즈에, 게임 틀은 둥지짓는 드래곤의 전통적인 '던전메이킹'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분명 처음 보는 게임에서 익숙한 향기를 느끼게'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조금은 뜬금없는, 하지만 언젠가는 나올 작품이었다


게임의 시발점은 위에도 말했다시피 반 농단 반 진담으로, 하지만 진지한 열의가 담긴 농담이었다. 

넥스톤 소속 영업 겸 프로듀서인 마츠이는 학생시절부터 둥지짓는 드래곤을 굉장히 감명깊게 플레이했던 적이 있는 소프트하우스 캬라의 광팬이었고, 영업차 넥스톤을 방문한 모 에로게 영업사원과 함께 캬라의 본사에 쳐들어가 '저희 콜라보 하면 안될까요'라는, 

아무런 계획도 밑밥도 없는 제안을 던진 그의 말에 긍정적인 회답을 한 캬라 측은 소리소문없이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그 결과 연희 시리즈의 스핀오프 격인 이번 작품이 탄생한다.

물밑작업은 조용히 이루어져 7월 즈음에 게임을 제작중이라고 공표하고 12월에 발매하는, 팬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이벤트였던 것이다. 

제작진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만들어서인지, 게임의 실제 볼륨 자체는 4시간 내외로 꽤 가벼운 편이다.

다만 실제로 게임을 잡아보면, 결코 가볍기만 한 게임은 아니란 걸 느끼게 된다.

게임 자체는 간단한 던전메이킹이다. 

업적 등으로 획득한 유닛을 배치하고, 제한된 구역에 점차 개방되는 시설을 설치하고, 침입해오는 적을 미리 배치한 유닛과 시설로 막아내는 간단한 디펜스 게임이다. 

방어 난이도 자체도 극단적으로 높지는 않고, 가벼운 미니게임을 플레이하는 감각으로 쭉쭉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시나리오 진행’은 꽤나 까다로운 편이다. 

설비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침략을 방어하거나 시나리오를 진행하는데에 ‘턴’을 소모하며, 레벨 성장에 따라 추가 턴을 획득하지만 게임 초기에는 그다지 많은 양을 획득할 수 없다.

첫 플레이의 경우 구조상 세이브 데이터를 건드리지 않는 한 아무리 잘 하더라도 15턴 내외면 턴 부족으로 게임오버를 당하게 된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라, 현재까지 획득한 유닛과 아이템을 계승받아 다시 처음부터 플레이가 가능하다. 

즉 플레이를 거듭하면서 強くてニューゲーム, 혹은 New game plus라고 하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강해지게 되는’ 구조이기에, 반복적인 주회차 플레이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각 분기를 회수하는데 총 걸리는 시간은 최단기준으로 약 1주일 내외, 이론상으로는 최소 3주차에 평균적으로 6~7주차 정도가 걸린다. 

그렇기에 가볍지만 가볍기만 한 게임은 아닌 것이다.




게임의 난이도가 극단적으로 높지는 않지만, 시나리오 후반부로 갈수록 적이 까다로워지기에 마냥 쉬운 것만은 아니기에 게임에의 집중도가 떨어질 염려는 적다. 

또한 이벤트 해금조건이 매우 세분화되어 있어 회수하기 까다로울 것 같지만, 각 히로인의 엔딩만 대강 회수해도 8~90%가량은 회수되어 있기에 피로도가 높지도 않다. 

나머지 10%는 게임을 수십 개의 분기 세이브를 요구할 정도로 하드코어하게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영역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별도로 회수작업을 하지 않았지만 89%는 회수가 가능하다. 나머지는 일부러 특정 타이밍에 게임오버를 당한다던가 반복플레이를 하는 등의 회수작업이 필요하다)


시나리오 전체를 꿰뚫는 묵직한 주제나 무게감있는 화두는 없다. 

스핀오프 작품이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게 일반적인데다 원작IP가 ‘그’ 연희시리즈인 만큼 무거워지기 힘든 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뭔가 통일된 스토리를 기대하기에는 애매한 무게감이다. 

다만 가벼운 일상감각, 끊임없이 터지는 개그, 그리고 옴니버스식으로 짧게 짧게 배분된 나름의 무게감 있는 고찰점은 전체 스토리를 너무 쌈마이하지 않게 적당히 포장해주고 있어, 플레이하는 데에 불쾌감을 느낄 일은 없다. 

스토리 자체의 총 분량은 음성을 스킵하지 않을 경우 대략 6~8시간 내외이며, 어디 한 군데에 몰려있지 않고 전투와 전투 사이에 잘 분배되어 있어 질리지 않고 플레이할 수 있다.

 각 히로인들의 개성이 너무나도 확고해서 시나리오를 진행할수록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은 상당히 아쉬웠다.


에로게의 중요한 요소인 에로씬에 대해서는 좀 아쉬운 점이 많았다. 

비주얼은 좋은 편이지만, 모든 히로인들이 거의 흡사한 구도를 가지며 에로씬 중 히로인의 반응이 대체로 비슷하여 반복되는 모습을 보이며, 전개가 짧고 감정이동이 매우 직선적이라 몰입이 어렵다. 

거기다 모든 히로인들을 한 명의 시나리오 라이터가 맡은 건지 단어 선정이 반복적이고 단락적이라, 보이스와 CG가 없다면 모든 에로씬이 단 한명의 히로인에 대한 내용인가 싶을 정도로 유사한 점을 보인다. 

(유독 이 둘의 에로신이 단어선정이 반복적이다. 다른 히로인들은 그나마 2가지 정도의 레파토리를 가지고 있다만…)


꽤 긴 시간동안 전개되어온 IP인 연희시리즈이기에 캐릭터성이 각자 확고하게 잡혀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점은 대단히 아쉬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에로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종종 보여 좀 당황스러운 부분이 적잖게 있었다. 

다만 텍스트적으로는 만족도가 낮은 데 반해 성우는 ‘역시는 역시나 역시’다 싶을 정도로 연기가 찰지다. 

보통 한 명에게 호감을 몰아주는 필자로선 간만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을 정도로 성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럽고, 앞서 언급했던 ‘반복적이고 단락적인 단어선정’조차 어떻게든 성우의 실력빨로 밀어붙인다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뭐, 연희시리즈 자체도 13년이나 된 터라 성우들도 몸에 배었겠지만.


(개인적으로 연기 부문에서는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캐릭터. 성우경력 21년간 백수십 타이틀에서 연기한 실력은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짧은 텀의 타임킬러로는 딱


구작의 리메이크라는 건 대체로 업계가 힘들어 판매고가 확보되지 않을 때 선택하는 고육지책이긴 하나, 해당 작품의 팬이라면 추억을 되새김과 동시에 ‘이미 익숙해진 게임 구조’이기에 해당 게임에 대한 적응기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개발비화에서 마츠이가 언급했던 대로 ‘중간과정을 다 날려버리고 그저 축제 분위기의 소프트를 만들고 싶었다’는 말은 반대로 해석하자면 ‘신규 작품에 과감하게 투자할 만큼의 재원과 인력이 당장은 부족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지만, 그런 와중에 개발자도 플레이어도 즐길 수 있는 해답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원작을 플레이한 적이 없던 필자로서도 부담없이 스토리에 적응할 수 있었고, 스핀오프이기에 사실상 원작과는 ‘성격’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공통점을 가지지 않기에 연희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문제없이 플레이할 수 있다고 본다. 

게임성 자체는 워낙 단순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생각 외로 배치나 유닛 구성을 심사숙고해야 하는 ‘깊이있는’ 플레이를 요구하는 면모도 있어 에로를 배제하더라도 게임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가벼운 타임킬러를 플레이하고 싶은 유저라면 한번쯤 플레이해보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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