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트라우마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그녀들의 죽음

누군가에겐 트라우마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그녀들의 죽음


가슴 아린 슬픈 사연을 안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죽어나가 유명해진 히로인 모음집


캐릭터를 가장 확실하게 플레이어들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강렬한 일러스트로 시각적인 인상을 줄 수도 있고, 성우의 연기나 함께 붙어다니는 배경 음악으로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도록 만들 수도 있겠고, 배경과 스토리를 열심히 붙여줌으로서 내러티브적 효과를 노릴 수도 있겠다. 

이런 여러가지 방법 중, 널리 알려진 것 중 하나가 바로 '캐릭터를 죽이는 것'이다. 

희극보다도 비극이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것처럼, 무엇으로도 회복 불가능한 죽음이란 이벤트는 때로 캐릭터 개인을 넘어, 작품 전체의 서사와 평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곤 한다. 이

제는 스포일러 주의 딱지를 생략해도 되는 과거 작품들 위주로, 플레이어들에게 충격을 안겨주면서 죽었던 몇몇 게임들의 히로인들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자.



<한마디로 줄여서 이런 캐릭터들을 모았다는 말>

 

정식 출연은 작품 하나, 인기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리스

얼마 전, 정식 넘버링 11번째 작품을 내면서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증명한 록맨 시리즈. 

최초 작품으로부터 따지면 3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유명한 액션 플랫포머 장르 이외에도 액션 RPG나 모바일 수집형 게임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록맨이란 이름에 걸쳐 있다. 

오랜 기간과 수많은 게임들이 있다보니, 그만큼 이 시리즈에 등장한 히로인들도 한둘이 아닌데, 여기서 다룰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던 캐릭터, 록맨 X4의 아이리스이다.

<첫등장인 록맨X4, 97년 무렵의 일러스트>

아이리스는 주인공 중 한명인 제로의 오퍼레이터로 등장하는 로봇으로, 사실 자신의 오빠인 커넬이 이 게임의 악역이기 때문에 항상 제로와 오빠가 싸우는 것을 말리려고 한다는 위치의 히로인이다. 

여기까지라면 괜찮지만, 문제는 플레이어가 제로를 조작해 커넬을 쓰러트리고 난 이후에 터진다. 

아이리스는 오빠의 죽음에 절망한 나머지 흑화해서 직접 제로 앞에 중간 보스로 나타나는데, 즉 플레이어가 직접 그녀를 죽여줘야만 한다는 말. 

사실 게임 내 연출을 보면, 흑화했단 것도 복수라기보단 사실 제로의 손을 빌린 자살을 하고 싶었을 뿐인지라, 제로는 물론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 전투를 트라우마처럼 기억하게 되었다. 

덕분이라고 해야할지, 아이리스는 그 이후 외전이나 크로스 오버 작품에서도 간간히 얼굴을 비추게 되었을뿐만 아니라, 팬덤에서의 인기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그리고 올해 발매된 신작 모바일 게임에 최고 레어 등급으로 실장될 일러스트>


뫼비우스의 우주란 거대한 반복의 시작 

셰라자드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라떼는 드립을 치면서 국산 게임의 전성기를 언급할 때, 웬만하면 안 빠지는 게임 중 하나로 창세기전 시리즈가 있다. 

지금은 제작사인 소프트맥스도 망했고, 모바일이나 온라인으로 시도하려던 작품들이 하나같이 모두 허무하게 끝난데다가,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문제점이 많았단 냉정한 평가들도 많지만, 그럼에도 창세기전이 한국 게임 역사에 한획을 그은 작품이라는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창세기전 시리즈는 사실 캐릭터 죽이기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극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그걸 다 다루면 지면이 부족할테니 여기선 창세기전 3의 히로인, 셰라자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등장 작품이 창세기전만 아니었어도 청순파 히로인으로 잘 먹고 잘 살았을텐데…>


창세기전 3의 1부, 시반 슈미터는 투르란 가공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내전을 다루고 있는데, 셰라자드는 그 중 한쪽 진영 우두머리의 여동생이니 일종의 왕녀님 같은 위치의 히로인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성녀 같은 존재로, 작중에서도 주인공인 살라딘과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후 내전이 종료된 후 오빠가 암살당하더니, 얼마 후 쳐들어온 외적에게 나라가 점령당해 인질로 잡혀 말로 못할 꼴을 당하고는 결국 스스로 살라딘의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자살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고 만다. 

하지만 이 죽음은 다음 작품에서 살라딘이 그녀를 부활시키기 위해 베라모드란 존재를 탄생시키기에 이르게 되고, 이는 결국 뫼비우스의 우주란 창세기전 특유의 세계관의 트리거가 되고 만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녀의 죽음이 시리즈 전체 떡밥의 초석처럼 된 셈이랄까.

<지금 봐도 와 이렇게도 꼬인 비극이! 하면서 감탄이 나올 정도>


그렇게 생고생을 했건만 알고보니... 

니콜

시리즈가 제대로 완결되지 않아 안타까운 게임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되는 작품 중, 데드 스페이스란 이름을 가진 작품이 있다. 

08년 혜성처럼 등장헤 SF 호러 FPS 장르에 한 획을 그었던 이 작품은, 네크로모프라 불리는 괴물들에게서 주인공 아이작 클라크가 살아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에얼리언을 닮은 괴물들과 인남캐만 달랑 두기엔 영 칙칙했는지, 이 시리즈에도 나올 게임을 잘못 골라서 비참한 말로를 걷게 되는 여러 히로인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플레이어들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준 히로인을 꼽자면 뭐니뭐니해도 아이작 클라크의 연인이란 설정으로 1에 등장했던 니콜 브래넌을 꼽아야만 할 것이다.

<참고로 설정상 나이는 39세라고 하는데, 어딜 봐서…?>


니콜은 이시무라 호란 이름의 우주선에 근무하는 의무관으로 등장하는데, 이 게임은 이시무라 호가 구조 신호를 보내서 그녀가 걱정된 아이작이 구조팀으로 파견되었다는 것이 기본 배경이고, 그래서 와봤더니 시체와 네크로모프들이 가득한 이시무라 호에서 니콜을 찾아내서 같이 탈출하기 위한 아이작의 눈물겨운 여정이 이 게임의 메인 내러티브이다.

하지만 아뿔사, 데드 스페이스의 각 챕터 이름의 첫글자를 이어 보면 나오는 문장은 "Nicole is dead". 후반부에 밝혀지는 진실은 '니콜은 처음부터 죽어있었다'는 것. 

심지어 엔딩은 아이작이 괴물로 변이한 니콜에게 습격당하는 걸로 끝나니, 게임 내내 열심히 굴렀던 플레이어들의 충격은 오죽할까. 

거기에 후속작에서도, 니콜은 아이작의 죄책감과 네크로모프의 수작이 겹쳐진 환각으로 등장해 끊임없이 플레이어를 괴롭혀대니, 정말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 하는 니콜이라고 하겠다.

<외전작, 아직 살아 있을 때의 모습. 하지만 곧…> 


곱게 죽지 않아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다는 아이러니

위에 언급한 캐릭터들 이외에도, 비극적인 죽음으로 플레이어들에게 어필했던 캐릭터들은 산더미처럼 많다. 

그런데 사실 이건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인데, 그만큼 플레이어가 애착을 가지고 감정이입했던 캐릭터의 사망은 커다란 쇼크로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여러 장르의 스토리텔링에서 누군가의 죽음으로 전개되는 플롯은 오히려 드물지 않은 편이라는 걸 감안하면, 일반적으로 캐릭터성에 힘을 줘야하는 게임이란 장르에선, 특히 죽음으로 기억되는 캐릭터가 많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죽음이 비극적일수록, 게임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수록 더더욱 해당 캐릭터는 플레이어들에게 깊게 각인되기 마련인데, 이건 그 캐릭터에게 있어서 과연 기쁜 일일까, 슬픈 일일까? 

그 대답은 아마 신만이 알 것이다.

<아예 시작부터 죽어있단 설정이 수호천사란 기믹으로 이어진 캐릭터도 있는 판국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