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전자게임의 연대기

불타는 전자게임의 연대기


게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같은 건 모른다.

하지만 크레이지 자이언트가 선정한 40개의 순간들을 되돌아보면 마음이 울컥해지는 게임 마니아가 적지 않을걸?

by 사요



 

만약 게임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세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시답지 않은 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게임, 특히 비디오기기를 이용하는 전자게임업계의 역사와 사회적 영향력은 만만치 않다.

인간은 늘 게임과 함께 진화해 왔다. 

옛날 옛적부터 바둑, 장기, 체스 같은 수많은 놀이 문화가 언제나 인류 역사와 함께 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그렇다, 어차피 인간은 즐겁게 놀지 않으면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져 죽는 동물이다! 

그래서 전자게임의 연대기를 되짚어 보기로 했다. 물론 객관적인 선정 같은 건 없다. 

편집장이 게임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에디터의 주관 100%를 깔고 판을 벌였다.


1948. 12

음극관 놀이 장치 특허의 취득

게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답은 다양하다. 

그래도 비디오게임의 사전적 정의는 대충 이렇다. ‘시각적 장치로 입출력을 확인하면서 전자기기를 통해 즐길 수 있는 게임’ 정도가 된다.

이 정의에 부합하는 최초의 게임으로 대부분 꼽는 게 음극관 놀이장치다. 

미국에서 특허가 출원된 이 녀석은 브라운관을 시각적 장치, 즉 화면처럼 쓰면서 적 항공기를 격추시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단, 특허만 땄지 실제로 개발되진 않았기 때문에 ‘최초’라는 수식어 이상의 의미는 없다.


1962. 4

스페이스워! 개발


음극관 놀이 장치 이후 비디오게임은 폐쇄된 연구실 안에서만 태어났다 죽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1962년, 드디어 지금처럼 불특정 다수가 즐길 만한 컴퓨터 게임 ‘스페이스워!’가 등장했다.

 MIT에서 개발해서 퍼트린 이 게임은, 두 우주선이 서로를 쏴 죽이는 대전 형식의 슈팅 게임이었다.

 

1972. 10

최초의 콘솔 게임기, 마그나폭스 오딧세이


1970년대가 되어서야 최초의 콘솔 게임기를 미국에서 발매했다. 

게임 내용이 기록된 카드를 게임기에 꼽는 구조였는데, 카드가 팩 형태로 교체되긴 했지만 이 방식은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아무튼 마그나폭스 오딧세이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은 27종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개발한 게임답게 대부분이 스포츠를 다루었다.

 

1972. 11

아케이드 게임 붐을 불러온 퐁


한국전쟁에서 우리 민족을 빼고 가장 치열하게 맞붙었던 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다. 

휴전협정 이후 미국과 중국은 원수처럼 지냈다. 

1971년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 중국대표단이 참가했다. 

그리고 4월에 중국은 나고야대회에 참가한 미국 선수단 15인을 베이징에 공식 초청했다. 

한국전쟁 이후 세계를 긴장하게 했던 냉전의 흐름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7월에는 미국의 대통령 특별보좌관이 중국을 방문해서 정상회담을 조율했고, 1972년 2월 드디어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동서 화해의 물꼬가 트인다. 

이런 역사적 순간을 노칠 수 없었던 게임회사 아타리는 두 명이 탁구를 치는 내용의 아케이드 게임기 퐁을 발매한다. 

처음에는 술집에나 조금씩 보급되던 이 게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전역에서 대히트를 쳤다. 

아타리의 퐁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게임기로 취급된다. 

이 성공은 현대 게임산업이란 우량아를 출산한다.


1973. 가을

1인칭 시점의 최초 도입


메이즈 워가 등장하기 전까지 게임은 모두 버드-뷰 형태의 3인칭으로 만들어졌다. 

시점은 게임의 세계관과도 관련된다. 높은 하늘 위를 날아가는 새가 바라본 것처럼 게임을 구성하면, 게임 플레이어는 게임 속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객관적이란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1인칭 시점은 게임 플레이어와 게임 속 세계를 하나로 묶어 강력한 몰입감을 선물해준다. 

메이즈 워는 FPS처럼 3D 1인칭 시점을 최초 도입한 게임으로 꼽힌다. 

미로를 헤매다 적을 찾아 저격하면 점수를 얻고 저격당하면 점수를 잃는 게임인데, 한 턴에 한 칸씩 이동할 수 있는 타일이동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게임은 NASA와 MIT에서 근무하던 어느 천재가 만들었다. 확실히 게임은 99%의 노력형 사용자와 1%의 천재형 개발자로 이루어진 것 같다.

 

1974. 1

모든 RPG의 직계 조상 등장


던전 & 드래곤즈의 발매는 말 그대로 모든 롤플레잉 게임의 선조가 등장한 순간이다. 

1974년 1월, 던전 & 드래곤즈는 컴퓨터나 게임기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평범한 테이블 게임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후 롤플레잉이란 이름으로 출시된 모든 게임은 던전 & 드래곤즈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던전 & 드래곤즈의 초판 룰북이 발매된 1974년 1월은 게임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이라고 하겠다.


1976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 등장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자동차 포니를 개발할 때 미국에선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를 만들어냈다. 

마텔 오토 레이서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휴대용 게임기인데, 게임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게임기 바닥 무늬가 움직여서 마치 자동차가 주행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한 게 전부다. 

플레이어는 문제없이 자동차가 서킷을 4바퀴 돌도록 조종하면 됐다.

 

1977. 3.

어드벤쳐 장르의 시작

동굴을 탐험한다는 발상과 직접 명령어를 입력해 주인공을 조종하는 게임성이 Colossal Cave Adventure라는 이름 아래 모였다! 

기술력의 한계 때문에 그래픽 하나 없이 오로지 글씨만 주르륵 나오는 게임에 열광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바로 남자 아니겠어? 

‘모험’이란 단어를 그대로 장르 이름으로 쓰는 어드벤처 게임의 시조로 인정받는 작품은 이런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지만 우리들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1977

현대 비디오게임의 아버지, 닌텐도에 입사


수많은 스타 개발자가 있지만, 가장 위대한 사람을 한 명만 뽑아야 한다면 동키콩, 젤다, 마리오의 개발자인 동시에 패미컴과 슈퍼 패미컴 등의 하드웨어 제작에도 직접 관여한 이 분 이외에 누구를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수 없이 많은 개발자들이 바로 이 분의 게임을 하면서 자랐다. 

현대 비디오게임의 아버지인 미야모토 시게루는 아버지의 인맥으로 닌텐도에 입사했다. 

당시 닌텐도는 여러 분야에서 삽질하며 죽을 쑤고 있었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입사하지 않았으면 회사가 지금처럼 성장하기는커녕 살아남기도 힘들었을 거다.


1978. 7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성공


‘갤러그’란 이름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적이 움직이는 슈팅 게임의 조상으로 꼽히는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이때 발매되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갤러그 열풍은 우리나라도 빗겨가지 않았다. 

우리들의 아버지나 삼촌이 문방구 앞에 쪼그리고 앉아 10원짜리 동전을 탕진하며 열광하던 게 바로 이 게임이니 말이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특기할 사실은,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때까지 비디오게임은 오로지 미국 주도로 발전했는데, 이 무렵부터 일본이 쌍끌이 어선의 다른 한 축을 맡기 시작했다.


1980. 5

그림이 추가된 어드벤처 게임


지금은 3D와 CG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지만 1980년대에는 그림의 의미가 달랐다. 

지금은 꼰대가 되어버린 아재들은 코 묻은 용돈을 모아 종로 세운상가를 방문해서 조악하기 그지없는 성인만화를 구입하곤 했다. 

미술학원에 다녀본 경험이 있다면 중학생도 그것보다 잘 그렸을 만화였다. 

그래도 열광하던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림이 귀해서다. 

1980년대가 되자 그림이 추가된 어드벤처 게임 미스테리 하우스가 등장했다. 

그래픽의 수준을 이야기하긴 힘들다. 

그래도 이런 그림에서 20세기를 주름잡았던 어드벤처 게임의 명가, 시에라가 태어났다.

 

1980

로그-like의 어원이 된 로그의 공개


어드벤쳐 장르와 던전 앤 드래곤으로 대표되는 RPG 장르의 영향을 받아 단순한 2D 그래픽으로 주인공을 모험하게 만드는 최초의 그래픽 RPG 게임이 공개되었다. 

로그라 불리는 이 작품은, 이후 수많은 로그라이크 작품을 양산해내며 게임 장르를 발전시켰다. 

미스테리 하우스와 같은 해에 공개된 게임이라 그런가? 

두 게임의 화려한 그래픽이 아주 용호상박이지?


1981. 11

비디오게임 전문 잡지들의 태동


그래픽까지 막 등장하니까 세계의 청춘들이 게임에 환장하기 시작했겠지? 정말 그랬다. 

미국과 영국 등 세계 곳곳에서 게임 마니아들이 태어났고, 이들에게 신작 게임과 공략법을 알려주는 비디오게임 전문 잡지들도 하나둘 등장했다. 

이전에도 퐁 같은 아케이드 게임을 다루는 잡지는 있었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게이머즈> 같은 잡지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가 최초다. 

물론 대부분 망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런 잡지 초판의 가치는 엄청나다. 

하긴 돈으로 환산할 때 추억처럼 짭짤한 것도 드물 거다.

 

1982. 12

게임 시장을 끝장내버릴 뻔한 초대형 망겜


잘 나가던 미국의 게임 시장에 찬물은 커녕 용암지옥불을 끼얹어버린 전설의 사태. 

게임이 인기를 끄니까 어중이떠중이 제작자들이 게임을 만든다며 모여들었고, 퀄리티보단 타이밍으로 승부하려는 게임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정판이 바로 끔찍하기 그지없는 망겜 E.T.다! 영화 <E.T.>는 스티븐 스필버그를 세계 영화계의 대빵으로 만들어줬다. 

초대박 히트영화의 이름에 기대어 수준 낮은 게임을 팔아먹으려는 시도가 벌어졌다. 

다행히 E.T.의 판매고는 별로 높지 않았지만, 안 그래도 늘어나던 저질 게임들에 질린 소비자들이 돌아서는 계기는 되었다. 

이때부터 미국의 게임 시장은 급속도로 망해가기 시작했다.


1983. 7

게임기 제작 헤게모니의 이동


E.T.가 미국의 게임산업을 잔인하게 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이 전 세계 게임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E.T.가 아타리와 미국의 많은 게임회사들에 사망진단서를 발급해주는 사이 태평양 너머에선 닌텐도가 패밀리 컴퓨터의 출생신고서를 작성했다. 

이렇게 지역 교체와 세대 교체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닌텐도는 동키콩과 마리오 같은 양질의 게임과 게임기 자체의 고성능을 앞세워 망할 뻔한 게임 시장의 명맥을 이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야모토 시게루는 위인전에 나와야 할 것 같다.

 

1984. 6

최초의 테트리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류작을 낸 퍼즐게임이 등장했다. 

소련의 한 프로그래머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퍼즐 게임에 전기를 먹여줬더니 초대형 괴수가 태어났다. 

이후 테트리스는 수많은 플랫폼으로 변형/발매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게임이 되었다. 

기네스북에는 테트리스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사품이 있는 게임’이라고 등재해 놨다.

 

1985. 7

체감형 게임의 등장


1985년부터 게임 플레이어들은 움찔움찔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요즘 오락실에 가면 당연히 놓여있는 오토바이 모형과 레이싱 게임, 이때까지만 해도 당연하지 않았다. 

일본 세가에서 출시한 행온부터 체감형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플레이어의 조작에 따라 화면이 움직인다는 개념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충격을 받곤 했다.


1987. 8

현대 대전격투 게임의 원조


누구나 이름 정도는 한번쯤 들어봤을 전설의 격투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가 출시되었다. 

오락실 화면 앞에 동전을 쌓아서 대기 순서를 정하고, 초등학생이 얍삽이 기술로 고등학생을 연전 연파하다가, 

결국은 분노가 나이 차이에서 오는 민망함을 넘어서서 오락실 폭력사태까지 발생했다. 

사실 대전격투의 기본적인 요소는 후속작인 2에서 대부분 정립되었지만, 필살기의 개념이나 대전 모드의 개념은 여기부터 등장한 특징이다 보니 진짜 원조를 따지면 첫 번째 스트리트 파이터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청순가련형 여성 캐릭터만 좋아하던 시대적 한계를 딛고 춘리의 말근육 허벅지에 국민적 호기심이 간 것도 1987년의 분위기였다.

 

1992. 2

리얼 타임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의 아버지


우리나라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듄 2라는 걸세출의 명작이 없었다면 그 스타크래프트도 존재하지 못했을지 모르겠다. 

동명의 SF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게임에선 자원 채취나 테크 트리, 실시간 전투 등 RTS의 모든 요소를 전부 찾아볼 수 있는데, 워크래프트조차 듄 2의 아류작으로 평가할 정도니 오죽할까.


1992. 12

포르노에서 연애 어드벤쳐로의 첫 걸음


초기의 게임 시장에서 미소녀 게임은 성인용 포르노의 이음동의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소녀 장르에서 에로티시즘으로만 덕지덕지 색칠한 게임이 지금까지 주류를 점하고 있진 않다. 

이런 변화의 발걸음을 처음 내딛은 미소녀 게임이 바로 동급생이다. 

단순한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스토리와 게임성도 추구하면서 미소녀 장르는 포르노가 아닌 게임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1993. 12

성공 그 이상의 영향력, 둠


최근의 리부트 버젼으로도 익숙한 이 게임의 영향력은 너무나 강력하게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까지 미치고 있다. 

현대식 FPS의 정립, 새로운 게임 유통 방식의 제시, MOD란 개념의 선구자, 게임 엔진 시장의 개척자, 그리고 게임 업계에 주홍글씨처럼 따라붙는 폭력성과 규제 논란에 불을 지핀 문제아라는 점까지.

 

1994. 9

여성향 게임의 시작


“여성 주인공을 조종해 게임의 목표를 달성하면서, 매력적인 남성과 연애를 즐긴다”는 문장으로 정의되는 여성향 게임. 

게임 이용자라면 당연히 남자일 것으로 간주해버리던 어둠의 시대. 

일본의 게임회사인 코에이는 여성 플레이어들을 위해 안젤리크를 발매했다. 

우리가 여성향 게임에 빠져들 일은 없을지 몰라도, 여성을 게임 공간으로 초대해준 이 작품에 감사는 표하고 싶다. 정말 시대를 앞서간 게임이었다.


1994. 12

Sony의 콘솔 전쟁 참전


지금 시점에서 콘솔 게임기의 압도적인 1강, Sony가 94년에서야 게임기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일 것이다. 

그전까지 닌텐도, 기껏해야 세가 정도가 나눠먹고 있던 콘솔 게임기 업계는, 신흥강자 Sony가 등장하면서 때 아닌 대격변을 맞게 되었다. 

이후 콘솔시장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게임의 주류 공간은 개방된 오락실에서 제한적인 장소인 집이나 모텔 등으로 바뀌게 되었다.


1995. 5

현대식 게임 컨퍼런스의 시작, E3

1990년대 중반까지도 게임은 문화로도 비즈니스로도 독립적인 위치를 점유하지 못했다. 

게임 관련 비즈니스 컨퍼런스도 가전이나 컴퓨터 컨퍼런스의 한 부분으로 치러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게임만 전문으로 다루는 세계적 컨퍼런스는 1990년대 중반에야 비로소 등장했다. 

세계 3대 게임 컨퍼런스인 E3가 1995년 5월에 최초로 개최되었다.


1995. 7

오늘의 실패, 내일의 가능성. 버츄얼 보이


버츄얼 보이는 지금도 닌텐도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히는 물건이지만 그 안쪽을 뜯어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시도가 가득 담겨 있다. 

3D 디스플레이에 초기 VR 기술을 구현한 오버 테크놀로지 기기인 버츄얼 보이는 1995년 여름에 출시되어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생명줄이 끊어져버렸지만, 그 정신은 죽지 않고 근근이 20년을 버티다가 수많은 증강현실 장비들에게 계승되었다. 

아무튼 오버스펙은 당장은 실패해도 나중에는 좋게 이야기되는, 그래서 제작자의 속을 더 쓰리게 만드는 아주 재미난 요소다.


1996. 2

세계 최대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등장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프랜차이즈’라고 하면 미키마우스나 스타워즈를 떠올리는 이가 많을 거다. 

하지만 2018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랜차이즈계의 두목은 뜻밖에도 포켓몬스터라고 밝혀졌다. 

포켓몬스터의 상품 가치는 약 590억 달러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아무튼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첫 작품이 1996년에 처음 출시되었다.


1997. 9

울티마 온라인


사실 네트워크를 통해 다수의 인원이 참가하는 게임은 울티마 온라인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울티마 온라인을 여기에 언급하는 이유는, 실질적으로 MMORPG란 장르를 확립시킨 작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게임조차 따라오지 못 하는 압도적인 자유도와 오픈 월드 설정으로 이후 등장할 게임들에 많은 영감을 줬기 때문이다.


1997. 12

음악을 게임 장르로, 비트마니아


노래를 들으면서 박자에 맞춰 버튼을 누른다. 

말로 설명하면 간단한 이 개념을, 이 시기 beatmania란 게임기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게임화하지 못했다. 

콜럼부스의 달걀처럼 처음 발상 전환을 이루어낸 이들은 위대하다. 

비트마니아 이후 리듬 게임은 아주 탄탄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오락실의 DDR이나 펌프를 거쳐, 다양한 모바일 게임으로 이어지는 리듬 액션 장르의 출발점인 비트마니아 등장도 전자게임 역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


1999. 3

새로운 직업, 프로게이머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가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어가던 시기, 1세대 프로게이머 중 한 명인 신주영이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직업을 ‘프로게이머’라고 이름 붙였다. 

지금과 달리 당시의 프로게이머는 일종의 상금 사냥꾼에 가까웠지만, 이 인터뷰에서부터 프로게이머란 단어가 세상에 나왔다. 

이후 우리나라에는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등장했고, 프로게이머란 직업을 가지기 위해 캐나다나 프랑스에서 외국 청년들이 넘어오기도 했다.


1999. 10

최초의 스타크래프트 리그 개막


이전에도 여러 대회는 있었지만, 이후 온게임넷으로 이어지는 일명 ‘스타리그’의 1회 리그라는 점, 

최초로 TV 중계한 게임 리그라는 점, 

마지막으로 e-sport 명예의 전당에도 이 리그의 우승자부터 등록되어 있다는 점을 보았을 때, 

99 PKO를 현대식 e-sport 리그의 시작으로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안정적으로 개최되었기 때문에, 기업이 프로게임단을 창설하면서 프로게이머란 직업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2001. 11

미국 기업의 콘솔 게임 대반격


아타리 쇼크로 몰락한 이후 콘솔 게임기 업계의 주류는 꾸준히 일본이 차지했다. 

여기에 반기를 들고 제국의 역습을 가한 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다. 

2000년대 초반 가장 혁신적이면서 가장 부유한 기업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야심차게 준비해서 엑스박스를 발매했지만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는 데에는 실패했다. 

물론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니다. 

엑스박스와 플레이스테이션의 전쟁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고, 현재진행형인 투쟁의 최후 승자가 누구일지는 모를 일이니 말이다.


2003. 9

게임 유통 과정을 바꿔놓은 새로운 플랫폼 Steam


카운터스트라이크나 하프라이프 등의 명작을 출시한 것도 게임 회사 밸브의 업적은 맞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Steam 플랫폼을 출시했다는 점이다. 

Steam 등장 전까진 게임 유통은 패키지 중심으로만 이루어졌다. 

게임 유통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이 플랫폼이 없었다면, 지금의 전자 게임 유통은 아예 다른 모습이었을 거다.

 

2009. 5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래집


20년 기준 2억 장 이상 판매된 마인크래프트가 2009년 5월에 발매되었다. 

어린이가 백사장에서 자유롭게 노는 것처럼 극한의 자유도를 추구하는 장르인 샌드박스를 집대성한 것은 물론, 10년도 넘게 최고의 인기를 누린단 점에서도 이 게임의 가치는 유니크하다.


2009. 10

RTS와 FPS에서 AOS로, e-sports 패러다임의 전환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것은 물론, 가장 고도화된 e-sports 체계를 갖춘 게임 중 하나인 리그 오브 레전드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타크래프트나 다른 FPS 게임들이 잡고 있던 e-sports의 헤게모니를 가져온 것은 물론, AOS란 장르를 널리 퍼트린 공로도 인정해야겠지?

 

2009. 12

모바일 게임 시대의 개막, 앵그리 버드


2007년 아이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매체인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장이 열렸으니 게임 회사들이 우르르 달려가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그런데 미국과 일본 등 이 분야 강국의 게임회사들이 아니라 핀란드의 작은 회사가 스마트폰 게임 붐의 주인공이 됐다. 

과거 핀란드의 국가 경제를 떠받치던 기업은 노키아였다. 

하지만 피처폰 시대의 최강자였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로의 전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결국 무너져버렸다. 

이렇게 해서 발생한 국가 경제의 공백을 스마트폰 게임 회사가 메웠으니 신묘한 인연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훨씬 작던 그 시절 기준으로 12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2011. 6

게임 스트리밍이란 새로운 엔터테이먼트의 시작, 트위치 서비스 개시


Justin.tv란 어느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게임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방송들만 따로 떼어내 Twitch란 이름으로 독립시킨 것이 2011년 6월의 일이다. 

그리고 3년 후, Twitch는 원래 서비스를 흡수해버릴 정도로 성장하고 만다. 그 이후에 얘가 어떻게 되었는진 다들 잘 아시죠?


2011. 9

소울라이크의 시작


게임이 좀 어렵고 불친절하면 뭐가 어때? 

새로운 라이크가 나타났다. 로그라이크가 로그 같은 게임이듯이, 소울라이크는 다크 소울 같은 게임을 뜻한다. 

도전정신을 자극하게 어려우면서도 부조리하지는 않은 절묘한 난이도, 특유의 심오한 전투 방식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간접적인 스토리텔링 등의 특징을 가진 다크 소울이 꼭 10년 전에 발매되었다.


2012. 4

캐릭터 수집과 가챠의 초기 완성형, 확산성 밀리언 아서


어지간한 도박만큼 사행성을 조장하는 수많은 모바일 게임들. 이렇게 된 원인을 찾는다면 이 녀석을 한번쯤 언급해야만 한다. 

최초로 이런걸 제시한 게임은 아니지만, 가챠와 캐릭터 수집 장르를 대략적으로 완성시켜서 '스퀘어 에닉스' 정도의 회사가 발매해 버렸단 게 문제니까.


2012. 8

VR의 꿈, 오큘러스 리프트 공개


비록 아직까지도 여전히 성공적이진 못 했어도, 가상현실 게임 시장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언제 터질지 모를 뿐, 조만간 터질 게 확실한 것이 VR 게임시장이다. 

그리고 이 산업을 지금까지 끌고 가는 결정적 공신이 오큘러스 리프트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12년 킥스타터를 통해서 공개된 오큘러스 리프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는 반쯤 죽어있었으니 말이지.


2019. 3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의 도래?


구글 스테디아가 처음 공개된 순간, 수많은 언론들이 요란법석을 떨면서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그려댔다. 

저사양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도 AAA급 게임을 즐길 만큼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이 발전하리라는 청사진을 펼친 건데, 그 시대가 우리 집 문 앞에 도착하기까진 시간이 좀 거릴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클라우드 컴퓨팅 게임이 우리를 찾아올 건 분명해 보인다. 

준비된 자만이 미녀를 얻는다고 했다. 미리 준비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