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마왕 신해철

영원한 마왕

신해철


10월 높고 푸른 하늘로 떠나간 위대한 마왕의 소소한 이야기들

by 김현석



대학가요제

뮤지션 신해철을 존재하게 한 시발점이다. 언더그라운드 밴드로 활동하며 앨범 낼 궁리를 하던 무한궤도 멤버들은 같이 활동하던 다른 밴드들과 달리 모두 대학생들이라는 점을 이용해 꼼수 삼아 출전했던 것. 이전까지만해도 그들은 스스로를 대학생 밴드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출전을 부끄러워하거나, 꺼려 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결국 80년대, 나아가 청춘을 상징하는 불후의 명곡 <그대에게>를 탄생시키며 대한민국 음악사에 위대한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대학가요제를 통해 수많은 뮤지션들이 데뷔를 하고 노래를 알렸지만 그 누구도 무한궤도와 <그대에게>의 위상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그대에게>에 관한 이야기들

1. 신해철은 참가곡을 신디사이저로 멋드러지게 작곡하고 싶었지만 당시 대학생으로서 신디사이저 마련할 돈이 부족했던 그는 동네 문방구에서 멜로디언을 구매한다. 음악을 반대하던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쓴 채 멜로디언을 연주하며 만든 노래가 바로 <그대에게>다.


2. 본선 진출에 성공한 신해철은 외삼촌에게 거금을 빌려 신디사이저를 마련했다. 당시까지 신디사이저는 플로피 디스켓을 통해 음원을 읽어와 연주를 해야 했는데 공연 직전 에러가 뜨는 바람에 식겁했다고. 성호를 긋고 하나님께 ‘나중에 성당 하나를 선물하겠다’고 간절히 기도한 후에야 비로소 신디사이저가 정상 작동했다고 한다. 살아생전 성당을 짓지는 못했지만 종교 이름에 먹칠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노래 <예수 일병 구하기>를 넥스트 5집에 수록해 성의를 표시했다.


3. 셀 수 없이 많은 명곡을 쏟아낸 신해철이 가장 아끼던 곡 중 하나다. 라디오를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항상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으로 쓰였으며 스스로 가장 많이 리메이크한 곡이기도 하다.


밴드

‘신해철’이라는 거대한 존재 때문에 많이 묻히는 감이 있지만 신해철은 항상 밴드 음악을 고수해왔다. ‘무한궤도’가 대상을 탔을 당시에도 남성 발라드가 대세였던 풍토에 따라 신해철에게 무수한 솔로 제의가 들어왔고, 그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신해철은 밴드로 활동하길 원했고 무한궤도 1집을 완성해냈다. 무한궤도가 해체하고나서 소속사의 계약에 따라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내긴 했지만 곧바로 전설이 될 ‘넥스트(N.EX.T)’를 결성해 밴드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특히 넥스트 활동 시에는 밴드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도맡아 했고 밴드의 프런트 맨이었던 신해철에게만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에 3집부터는 멤버들의 곡참여를 유도하며 원맨밴드가 아님을 강조해왔다. 1999년에 발매한 <MONOCROM>앨범은 솔로 4집으로 분류되지만 프로듀서 겸 기타리스트 ‘크리스 샹그리디(Chris Tsangarides)’와 함께한 프로젝트 밴드로서의 활동이었다. 이후에도 ‘비트겐슈타인’을 결성했고 ‘넥스트’를 재결성해 활동하는 등 밴드뮤지션으로서 정체성을 추구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진행하던 라디오를 통해 꾸준히 인디 밴드와 그들의 음악을 소개해왔으며, ‘씨엔블루가 인디 밴드면 파리가 새다’라는 명언을 세상에 남기는 등 인디 밴드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인터넷 개인 방송

플랫폼의 발달로 인터넷 개인 방송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 시작에는 신해철이 있었고, ‘마왕’도 있었다. 신해철은 21세기로 접어든 2000년경 인터넷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라디오 방송 ‘유령방송’을 선보인다. 이후 ‘고스트스테이션’이라는 공식 이름으로 SBS 파워 FM과 병행해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전설이 시작됐다. 공중파로 정규 편성되긴 했지만 제작 방식과 콘텐츠는 신해철 개인에 의해 결정됐다. 음악 작업용 장비들을 활용해 직접 녹음한 파일을 인터넷에 업로드하고 방송사에 전송해 송출하는 방식이었다. 내용은 그야말로 신해철 꼴리는 대로였다. 틀고 싶은 노래를 틀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여자친구와 싸워서 기분이 안 좋다며 방송 내내 한마디 멘트도 없이 노래만 틀어버리는가 하면, 꽂힌 노래 한 곡을 방송 동안 몇 차례나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인터넷 방송을 베이스로 했던 만큼 별도의 홈페이지는 커뮤니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커뮤니티의 수장인 신해철은 ‘마왕’이었고 청취자들은 ‘고쓰족’이 됐으며, 고쓰족 들은 (드라)큐라, 미라, 마녀 등 종족을 나누어 방송 밖에서도 소통해 나갔다. 청취자 엽서 따윈 없고 각 종족 마을 게시판에서 화두가 될만한 게시글을 방송을 통해 소개하고, 방송을 들은 고쓰족들은 다시 게시판을 이용해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물론 사연 소개 사은품 따위도 있을리 만무했다. 방송사에서 정식으로 ‘다시 듣기’ 서비스를 진행하지 않을 때에도 홈페이지를 통해 그동안의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도 있었다.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의 틀을 완전히 깨버린 혁명인 셈이다. 개인 방송 플랫폼은 고사하고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도 전이었단 걸 생각하면 신해철이 얼마나 선진적인 인물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스트 스테이션을 강타했던 음악들

1. 강병철과 삼태기 - 삼태기 메들리

약 21분가량의 트로트 메들리다. 신청곡으로 우연히 틀었던 곡이었으나 마왕이 시간 때울 때 자주 써먹었다. 덕분에 강제로 자주 듣게 된 고쓰족도 매료돼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


2. 장기하와 얼굴들 - 싸구려 커피

고스트 스테이션을 통해 발굴된 노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이전에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소개된 뒤 큰 화제를 모으며 고쓰족 사이에서 유행하게 됐다. 마왕 또한 감탄을 금치 못하며 이 곡을 하루 동안 세 번 틀어준 적도 있다.


3. Rupert Holmes - Him

힘이 되는 노래를 찾을 때 주로 틀어주던 노래다. 곡의 분위기, 가사 이딴 거 다 필요 없이 그저 후렴구에 ‘him’을 반복한다는 이유로…


4. 고스트 스테이션 오프닝

‘We are the children of darkness’로 시작하는 시그널 음악이다. 세 가지 음만 사용한, 음악이라기보다 나레이션에 가까운 단순한 시그널이지만(훗날에는 웅장한 스케일로 바리에이션 되며 제법 음악같이 들리긴 했다.) 새벽 밤잠 설치며 라디오를 듣던 고쓰족에게는 그 어떤 음악보다 달콤했을 소리이자, 가장 그리운 멜로디일 것이다.



뮤지션들의 뮤지션

팬들에게 사랑받는 것만큼 다른 동료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던 뮤지션이었다. 그가 왕성히 활동하고 있을 때도 그를 존경한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뮤지션들이 부지기수다. 무대나 언론에 비치던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 별개로 사석에서는 동료들을 다정히 챙기는 사람이었다. 특히 음악과 관련해서는 상대방의 경력과 명성과 관계없이 진지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임하며 누군가에게는 정신적 지주가 되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기술적 조언자가 되기도 했다. 덕분에 프로듀서로도 큰 두각을 나타냈었다.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때로는 다소 독단적인 모습으로 진두지휘하던 솔로나 밴드 활동 때와는 달리 상대 뮤지션의 잠재성과 역량을 충분히 고려해 적재적소에 필요한 만큼 프로듀싱해줬다고 한다. 후배를 자신의 능력으로 양성하는 게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서 함께 음악을 만들어 간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청순한 콘셉트로 활동하던 엄정화의 내재된 섹시함을 알아보고 섹시 콘셉트로 방향을 잡아줬다거나, 뮤지션으로서의 역량이 뛰어났던 김동률(전람회)을 프로듀싱할 때는 음악적인 조언이나 방향보다 김동률의 역량을 뽐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줬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신해철이 프로듀싱한 다른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신해철의 색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종종 ‘이 가수를(노래를) 신해철이 프로듀싱 했다고?’라는 감탄어린 반문이 이어지곤 한다. 프로듀서가 아니더라도 피처링이나 객원보컬, 곡작업으로 타 뮤지션들의 앨범 크레딧에 자주 이름을 올렸다. 사후에는 그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의미를 담은 다양한 리메이크 음악과 헌정곡들이 쏟아져나왔다.



신해철이 프로듀싱한 음악(앨범)

엄정화 - <눈동자> 

지금의 섹시 마돈나 엄정화를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엄정화가 데뷔해 활동하던 당시에는 청순한 콘셉트의 여성 솔로가 인기였고, 엄정화 또한 소속사에 의해 청순한 이미지로 가수 데뷔를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OST 프로듀싱을 맡은 신해철이 엄정화의 잠재된 섹시함을 제대로 캐치해내며 소속사를 설득해 노선을 바꾸게 된다. 엄정화가 부른 <눈동자>는 크게 히트하며 그녀를 단숨에 국내 탑 솔로 여가수 반열에 올려 놓았으며, 이후 엄정화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섹시 디바로 자리 잡았다. 녹음 당시 엄정화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섹시한 콘셉트를 소화하기 힘들어했는데, 신해철이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주며 잠재된 끼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승기 - 1집 <나방의 꿈>

싸이가 총괄 프로듀싱을 담당했지만 신해철도 작사, 작곡, 편곡, 연주에 이르는 전 과정에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앨범의 오프닝 곡과 엔딩 곡은 신해철이 직접 작곡 및 편곡한 곡들이다. 이승기는 ‘고등학생이던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등을 자상하게 물어봐 줬다’며 고인이 된 신해철을 회고하기도 했다.


<92 내일은 늦으리>

92년 발매된 환경보전 슈퍼 콘서트 컴필레이션 앨범 <92 내일은 늦으리>를 총괄 프로듀싱했다. 이 앨범에는 넥스트를 비롯해 이승환, 신승훈, 공일오비, 서태지와 아이들, 윤상, 신성우 등 당대 활동하던 최고 뮤지션들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타이틀곡인 <내일은 늦으리>와 넥스트의 곡인 <1999>를 작사 작곡했다.


전람회 - 1집 <Exhibition>, 2집 <Exhibition2>

대학가요제 대상 출신인 전람회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당시 전람회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신해철은 그들과 함께 프로듀싱을 진행하며 그들이 역량을 제대로 펼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경험이 없던 그들에게 사운드 퀄리티를 위한 팁을 전수한다던가,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격려하는 등 주도하기보다 도와주는 역할을 자처했다. 키보드와 코러스,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으로 몇몇 곡에는 직접 참여하기도 했으며 당시 넥스트 기타리스트였던 정기송과 김세황이 기타 세션으로 참여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에메랄드 캐슬 - 1집 <INVITATION>

넥스트의 베이시스트 김영석과 공동 프로듀서 및 디렉터로 참여했다. 다소 무겁고 진지한 음악을 하던 넥스트와 달리 조금 더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고자 두 사람이 의기투합했다. 처음부터 기획된 밴드였던만큼 멤버들도 두 사람이 직접 발굴했으며 신해철은 앨범 전반적인 제작 진행을, 김영석이 작곡, 편곡, 트레이닝 등 음악적인 부분을 맡아 진행했다. 


문차일드(現 MC the MAX) - 1집<DELETE>

현재는 발라드 그룹의 대명사가 됐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당시 테크노 음악에 심취해있던 신해철의 영향으로 테크노 밴드로 활동했었다. 신해철은 처음부터 이들을 작사 작곡과 악기 연주가 가능한 밴드로 데뷔시키려 했으나 소속사에서 작곡가와 세션을 투입해버리는 바람에 빡친 신해철이 손을 떼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만 무대에서의 매너나 쇼맨십 등을 직접 지도하기까지 했고, 엠씨 더 맥스로 활동할 때도 멤버들과 꾸준히 교류하는 등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덕후

오덕끼가 다분한 걸로 유명하다. 학창 시절에는 팝과 록 음악에 심취해 뮤지션 이름만 대도 필모그래피와 멤버들의 인적 사항, 기타 가십까지 줄줄 읊을 정도였다.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신해철의 집을 방문했을 때 벽 한 쪽이 전부 음악 CD로 가득 차 있던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밴드에 대한 열망이 컸기에 밴드 ‘부활’의 팬클럽이자 테크니션으로서 공연장을 누비며 ‘빠심’을 드러낸적도 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비록 중퇴지만)답게 평소의 언행이나 가사에서 심오함을 풍기던 그이기에 전문 서적을 끼고 살았을 것 같지만 가장 좋아하는 책은 SF와 판타지 소설, 그리고 만화다. 넥스트의 마지막 앨범이 될 뻔했던 4집이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였으니 그의 만화 사랑을 알법도 하다. 게다가 게임까지 좋아했다. 넥스트 3집 앨범 녹음 당시 신해철과 김세황이 게임에 너무 빠져있는 바람에 멤버들과 관계자들이 게임 디스크를 파기하고 그들을 거의 감금하다 시피해서 녹음을 마쳤다고 한다. 신해철의 게임 사랑은 ‘스타크래프트’, ‘길티기어’ OST 참여로 이어졌다.


컴퓨터 음악(MIDI)

국내 음악계에 MIDI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사람이 바로 신해철이다. 91년 발매된 <Myself> 음반은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로 MIDI를 활용해 제작된 기념비적 앨범이다. 뒷커버에 실린 컴퓨터와 신디사이저 사진은 실제 작업실을 찍은 것으로 MIDI로 제작됐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같은 시기 MIDI에 심취해있던 윤상과 함께 ‘노 댄스’라는 듀오를 만들어 프로젝트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이는 전자음악의 접목, 혹은 외도로 이어지며 더 많은 실험을 가능케 했다. 덕분에 자연스레 축적된 MIDI 관련 노하우와 지식은 국내에서는 최정상급이었으며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줬다. 마왕에 필적하는 ‘대장’ 서태지와 생전 절친했던 ‘싸이’에게 직접적으로 MIDI 작업 방법을 전수해줬을 정도. 지금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컴퓨터 한 대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홈레코딩이 보편화 되면서 더 많은 뮤지션들이 자신의 재능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게 됐다.


음치박치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수많은 족적을 남긴 위대한 뮤지션이었던 그를 ‘천재’라 일컫기도 하지만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던 건 아니다. 생전 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음치이자 박치였다. 어린 시절 단지 취미 삼아 악기를 배울 때도 악기 선생님들이 부모님께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른 걸 시키라고 권했을 정도였다고. 세 살 무렵 녹용 섭취의 부작용으로 다한증을 앓고 있어 악기를 배우기가 힘들었던 이유도 있었다. 학창 시절 밴드에 빠져있을 때도 가족들이 극렬히 반대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고모만이 ‘직접 보고 판단해보자’며 가족들을 설득하고 그를 응원했지만, 무대를 직접 본 고모조차 반대 입장으로 돌아서버렸다고 한다. 무한궤도로 대학가요제 무대에 오른 영상을 보면 보컬 실력이 썩 좋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훗날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전설의 반열에 오른 걸 보면 의지와 열정이 없던 재능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증명해낸 셈이다.


그리운 마왕의 목소리가 담긴 작품들

<길티기어 XX 샤프 리로드 한글판>(2003)

OST뿐만 아니라 성우로도 참여했다. 신해철처럼 검은색 장발을 휘날리는 캐릭터 ‘테스타먼트’의 목소리를 맡은 것. 하지만...흑역사로 남았다. 특유의 저음으로 강렬한 포스를 풍기긴 했으나 확실히 전문 성우에 비해 목소리가 이질적이고 캐릭터에 묻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몇몇 게임 유저들은 ‘테스타먼트’가 나올 때마다 음소거를 했다고 하니...그래도 지금은 그의 소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희귀작으로 남아있다.


<아치와 씨팍>(2006)

플래시 애니메이션이었던 <아치와 씨팍>의 극장판에 신해철이 성우로 참여했다. 악역인 ‘보자기 킹’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다행히 전작에 비해 발전된 기량을 보여주며 주연을 맡았던 임창정, 류승범과 더불어 훌륭하게 성우 역할을 수행해냈다. 역시 마왕은 마왕 역할을 할 때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가다. ‘재즈카페’, ‘그대에게’,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등 자신의 히트곡을 활용한 깨알 같은 드립도 나와 팬들이라면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신해철 거리와 작업실

생전 작업실이 위치해있던 성남시 중원구에 ‘신해철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실제 작업실도 약간의 리뉴얼을 거쳤지만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그를 기리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위대한 뮤지션의 작업실이라기에는 작고 소박하지만 역설적으로 MIDI의 대단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커다란 믹서와 랙 케이스에 담긴 각종 녹음 장비와 이펙터들이 없어도 음악을 만드는데 무리가 없는 것이다. 작은 작업실이지만 음악에 대한 그의 고뇌와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어 팬들은 반드시 찾아가 봐야 할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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