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의 탄생 - 플레이보이 휴 헤프너

대인의 탄생

플레이보이

휴 헤프너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남자를 꼽는다면 누가 있을까?

by 배두이


최대 강대국의 대통령인 트럼프? 아니면 재산이 많은 빌 게이츠? 아니면 절대권력의 김정은? 오, 노노...


그들은 가진 것이 많은 만큼 그에 대한 절대적 비난이나 혹은 독점적 지위로 인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여기 이 사람, [플레이보이] 최고경영자이자 수석 편집자인 휴 헤프너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울 것이 없는 남자가 아닌가 한다.

 

대인의 (여자들의) 위용 

왜냐, 전 미국 최고의 쭉방걸을 늘상 곁에 두고, 그들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때마다 므흣한 파티를 열어 전세계를 휘어잡는 미 연예계의 인사들과 함께 밤을 즐겨도 대놓고 뭐라 그러는 놈 없으며, 오히려 부러워 하지 않는가? 


게다가 몇년전 국내에서도 플레이보이 모델을 뽑아서는, 그 선발된 모델의 누드 사진을 휴 헤프너의 저택에서 촬영했다 하지 않은가? 이렇게 휴 헤프너는 이제 그저 남의 나라 할아버지의 얘기만은 아닌 것이다.


그리하야 이미 오래전 여러분의 손에 한번쯤은 거쳐갔을 미국 최대의 춘화잡지 [플레이보이]를 창간한 휴 헤프너 대인을 오늘의 진상 조사 주인공으로 모셨다.

 

대인의 탄생

대인은 1926년 4월 9일(포르노 스타 제나 제임슨의 생일과 같은 날이다) 일리노이즈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는데, 어느 밤 하늘에서 별똥이 떨어지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의 부모는 네브라스카에서 온 농부라고 하는데, 휴 헤프너는 전형적인 농가의 감리교인으로 자랐다. 하지만 그의 아이큐는 놀랍게도 152가 넘는 천재였다. 헤프너는 시카고의 초중고를 거쳐 미국 육군에 입대하여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동안 근무를 했다. 제대 후 대인은 일리노이 주립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여기서 그의 첫 부인이 되는 밀리 군(Mildred Williams)을 만나게 된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인은 [섀프트 Shaft]라는 유머잡지를 만들었고, 잡지에 카툰을 팔아 돈을 벌었다. 그의 첫 직업은 마분지 판지에 인쇄를 하거나 제작을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일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잡지업계로 진출을 하게 된다. 

도색잡지 [허슬러]를 들고, 그가 일하던 [에스콰이어]의 표지모델이 된다.(1976년 11월호)

 

백화점 외판원을 거쳐 남성잡지 [에스콰이어]의 카피라이터가 되지만, 1952년 그곳을 떠나 [Children's Activities]라는 출판하는 곳으로 옮긴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도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가구를 400달러에 저당 잡히고, 45명의 투자자를 만나 10,000달러의 사업자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호색잡지 PLAYBOY의 탄생

본래 [플레이보이]에 대한 아이디어는 헤프너가 대학에 다닐 때부터였다고 한다. 이 잡지의 이름은 애초에 [수컷파티 Stag Party]라고 지으려고 했으나 이미 [Stag Magazine]이란 잡지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에 고심하고 있던 차에 그의 친구인 Eldon Sellers가 한량, 난봉꾼, 바람둥이를 뜻하는 [플레이보이]를 추천하여 주었고, 토끼가 동물세계의 플레이보이라고 착안하여 결국은 토끼를 상징으로 하는 [플레이보이]를 창간하게 된 것이다.


플레이보이의 창간호

그는 1953년 창간호를 만들면서 당시 [나이아가라] 스타가 되었던 마릴린먼로의 데뷔 전 누드 사진을 200달러에 입수, 표지로 장식하면서 무려 54,000부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렸다.


[플레이보이]는 다들 아시다시피 독특한 발행형태를 지금까지도 고수하고 있는데, 당해 월의 모델을 플레이메이트(PLAYMATE)라고 명명하고, 그들의 칼라누드화보를 중간에 접어 넣음(Centerfold)으로 구매력을 이끌었다. 비디오가 나오면서 그들의 영상을 촬영하여 판매하였고, 한 해가 지나면 각 달의 플레이메이트를 모아 캘린터영상을 만들어 팔았다.


그 첫 번째 센터폴드의 내력이 재밌는데, 1955년 사무실에 사환 아가씨가 있었는데 헤프너가 그녀에게 누드를 한 번 찍어볼 것을 권했다. 이에 응한 그녀는 그해 6월 센터폴드로 잡지에 실리게 되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Janet Pilgrim이었다(본명은 Charlene Drain).

 

또한 문제도 있었는데, 1958년 엘리자베스 앤 로버츠라는 모델의 누드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녀의 사진이 잡지에 실리고 나서 그녀의 엄마가 주정부에 체포가 되는 일이 생겼는데, 그녀의 나이가 18세가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헤프너는 그녀로부터 18세가 넘었다고 들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의 사진을 실을 수 없었다.

 

대인의 여인들

아까 말했듯이 그는 첫 번쨰 부인이 될 여자를 대학교에서 만났다. 그녀와의 사이에 크리스티 헤프너(현 경영자)가 태어났다. 그리고 컴퓨터프로그래머인 아들 데이비드가 있다. 헤프너는 첫 번째 부인과 1949년에 결혼, 1959년에 이혼했다.

 

그후 1988년 플레이메이트 출신인 킴벌리 콘라드(Kimberley Conrad)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그후 1989년애 PMOY(PlayMate Of the Year)가 되었다.이 결혼 또한 1998년 깨졌으며, 그의 일부일처 생활은 이것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론 그는 결혼은 하지 않고 18~19 세 되는 그해의 플레이메이트를 불러다 집에서 지내고는 했는데, Donna Michelle, Marilyn Cole, Lillian Muller, Patti McGuire, Terri Welles, Shannon Tweed, Brande Roderick, Mary Warren, Barbi Benton, Karen Christy, Sondra Theodore, Carrie Leigh 등이 그녀들이다.


킴벌리 콘라드와 헤어지고 나서는 18~28세의 금발 미녀들을 데리고 지금까지도 잘 살고 있는데, 그는 어느 잡지에서 이랬다고 한다.

놀랍게도 말이죠... 그녀들도 원한다는 거에요. ^^

 

니덜도 원한다고? 사실이야? 진짜야? 

여튼, 늘 최고의 시간을 보낸다는 이 80세의 할아버지... 돈있지, 여자있지, 큰집있지... 세상 천지에 부러울 게 뭐란 말이냐. ㅜ.ㅜ;;;

어떤가, 다들 부럽지 않은가?

이런 거 해보고 싶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