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파타고니아 파헤치기

파타고니아 파헤치기


낡고 헤진 걸 기워서 누더기처럼 되면 파타고니아는 진정한 멋을 뿜뿜한다.

by 박경진


 

파타고니아를 설립한 건 1938년생인 이본 취나드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처음에는 영어를 전혀 못해서 고생했고,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난독증으로 글을 잘 읽지 못했다. 

학교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그는 15세에 자퇴하고 산을 떠돌며 놀길 좋아했다.

 

1960년대 초반, 징병 영장을 받은 이본 취나드는 입대하기 싫다고 간장을 마시는 등 온갖 추태를 부렸지만 모두 실패했다. 

징집된 그는 1963년에 우리나라로 파병됐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상관에게 “산에 다녀야 하니 일정을 조정해 달라”며 생떼를 썼다. 

상관은 영창에 보내겠다고 협박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고집쟁이 취나드에겐 통하지 않았다. 

결국 취나드는 보일러병이 되어, 새벽에 기름을 간 다음엔 알아서 시간을 보내도록 허락받았다.

 

1963년에서 1964년, 이본 취나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북한산 인수봉 암벽등반을 시도했다. 

그가 개척한 북한산 암벽등반 코스는 지금도 ‘이본 취나드 A길’과 ‘이본 취나드 B길’로 불린다. 

이본 취나드는 직접 문래동 대장간에 가서 자신에게 필요한 등산용 장비를 제작했다.

 

전역 후 이본 취나드는 미국 최초의 등산용품 회사인 ‘취나드 이큅먼트’를 설립했다. 

이본 취나드와 함께 북한산 암벽을 탔던 우리나라의 산악인 선우중옥이 이 회사의 공장장을 맡기도 했다. 

취나드 이큅먼트는 1989년에 파산하고, 직원들이 인수해서 ‘블랙 다이아몬드’로 이름을 바꿨다.

 

취나드 이큅먼트가 창업할 당시에는 등산용품이란 개념이 없었다. 

산악인들은 이본 취나드의 경험이 담긴 각종 등산용품을 보고 열광했다. 

취나드 이큅먼트는 승승장구했고, 1968년 경제적 여유가 생긴 이본 취나드는 6개월의 남미 파타고니아 여행에 도전한다. 

노스페이스 창립자인 더글러스 톰킨스도 파타고니아를 함께 여행했다. 

눈보라 속에서 죽을 고비도 넘겼지만 이 여행으로 이본 취나드와 더글러스 톰킨스는 깨달음을 얻었다. 

무려 1960년대에 환경의 중요성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본 취나드는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1973년에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창업했다. 

파타고니아는 세계 최초로 유기농 면이나 재생 플라스틱을 옷감으로 활용하는 친환경 활동을 벌였다. 

기능성 섬유를 개발하는 데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해서 1976년에는 최초의 폴리에스터 등산복을 만들기도 했다.

 

파타고니아는 “옷을 사지 말라”고 광고했다. 

이젠 사지 말고 고쳐 입으라는 거다. 그리고 고객 사은품으로 바느질용품 세트를 제공했다. 

실제로 파타고니아 매장은 20~30년 지난 옷도 수선해준다. 

이런 기업정신 때문에 이베이 등에선 낡고 수선흔적도 많은 옛날 파타고니아 티셔츠가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파타고니아는 1985년부터 총 매출의 1% 또는 순수익의 10% 가운데 큰 쪽을 환경보호에 기부한다.

 

이본 취나드와 더글러스 톰킨스는 사비를 들여 남미의 산악지대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돈 많은 미국인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이들은 이 땅을 칠레와 아르헨티나 정부에 기부했다. 

그리고 파타고니아 국립공원을 조성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