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CAR전기의 역사를 바꾼 6개의 발명품

전기의 역사를

바꾼

6개의 발명품


미안하다.

태블릿PC나 스마트폰이 아니다.

by 박경진

 


 

모스의 전신기 (1840)

모스는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 찰스타운에서 태어나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초상화가 겸 뉴욕대학의 미술 교수를 지냈다. 

1832년, 이탈리아 유학을 마친 그는 뉴욕으로 가는 배에서 아마추어 전기학자 잭슨의 전자석 실험을 구경했다. 

쇠막대에 전기를 주입하면 자석이 되어 쇳가루를 끌어당겼다가, 전기를 끊으면 자석 성질이 사라지는 실험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모스는 전자석을 이용해서 멀리까지 신호를 보낼 수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려 5년 동안 쇳덩이에 전기를 넣었다 끊었다 하면서 한량처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1837년! 마침내 그는 점과 선으로 이어진 모스 신호를 이용한 전신기를 개발해서 특허를 냈다. 

그러니까 방구석에서 공처럼 굴러다니는 당신을 보고 어머니가 잔소리를 하시면, 모스의 사례를 들어 큰 그릇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둘러대자.


모스 전신기의 의의는 실시간으로 장거리 통신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이는 인터넷의 등장보다 강력한 효과를 냈고, 유럽 열강의 근대적 제국주의 시대를 여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가장 유명한 모스 신호는 이거다. 

딴딴딴 따~ 따~ 따~ 딴딴딴. 여자친구의 손바닥을 끊어서 세 번. 길게 세 번, 다시 끊어서 세 번 두드려라. 

뭐냐고 물으면 SOS 신호라고 그래라. 

욕망의 활화산을 구원해달라고 잘 설득해봐라. 

잘 되면 모스 형님께 제사 한 번 올리고.


지멘스의 개량발전기 (1866)

베르너 폰 지멘스는 전형적인 독일인이다. 

프로이센에서 태어나 포병학교를 거쳐 각종 병기와 지침전신기를 개량하고, 1841년에는 금과 은의 전기 도금법을 발명했다. 

이후 전선을 열대 나무의 진액으로 코팅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그는 이 절연 전선을 발전시켜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의 전력 상황을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1857년에는 전기자를 개발했다. 

과거에는 천연자석을 이용해서 발전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발전기의 용량 등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지멘스가 인공 자석인 전기자를 활용해서 개량발전기를 개발하면서 발전기는 마구 커지기 시작했고, 산업의 규모도 확 달라지게 됐다. 

지멘스는 지금도 유럽 최고의 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베르너 폰 지멘스는 “순간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팔지 않는다”는 말로 창업정신을 설명했다. 

돈을 벌었다고 흥청망청하기보단 기술 개발에 재투자한다는 건데, 정말 그렇게 됐다. 


1847년 지멘스는 동생 빌헬름과 회사를 차렸다. 

러시아에선 대규모 전산망을 깔았고, 영국에 귀화해서 윌리엄으로 변신한 동생과 함께 영국 해저 케이블을 부설하는 등 유럽 전역에서 돈을 긁어모으다가, 다시 철도, 의료, 군사 등 모든 첨단 분야에 문어발 확장하며 회사를 키웠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유대인의 강제 노역을 활용해서 이익을 보기도 했다.


벨의 전화기 (1876)

벨은 대학을 졸업한 후 의학을 연구하다가 1871년 미국으로 이주했고, 1873년에는 보스톤대학 음성생리학 교수로 재직하며 전화를 연구했다. 

그리고 1876년 자석식 전화기로 특허를 받았다. 자석식 전화기가 뭐냐고?

송수화기 안에 전자석에 연결된 철판을 삽입한 기계장치다. 

목소리가 철판을 흔들면 유도전류가 발생해 반대쪽 송수화기로 넘어가고, 유도전류가 다시 철판을 진동시켜 사람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거다. 

그냥 지금의 스마트폰과 내부 구조가 좀 다르고, 통화 이외의 기능을 모두 삭제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 전선을 주렁주렁 연결해야 하는 것도 작은 차이겠다. 

아무튼 그레이엄 벨의 전화기는 발 없는 말이 정말 천리를 가게 만들었는데, 그만 혼자 속담의 현실화에 도전한 건 아니다. 

이탈리아 출신 미국인 과학자 안토니오 무치는 1871년에 전화를 발명하고 임시 특허를 냈지만 돈이 없어서 정식 특허를 내지 못했다. 

또 다른 발명가인 엘리샤 그레이는 벨과 같은 날 특허를 신청했지만 한끗 차이로 밀렸다. 

여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 하나, 돈빨의 백업이 필요하다 둘, 인생 끗발은 미세한 차이지만 결과는 어마어마하다.


에디슨의 양철 포일 축음기 (1877)

20세기는 미국의 시대였다. 

미국이 전기 기반의 과학기술을 갖추었기 때문에 영국의 패권을 대서양 너머로 빼앗아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학기술의 저변을 만든 대표 선수들이 직류와 교류발전기를 개발한 에디슨과 테슬라일 거다. 

1877년, 에디슨은 무선통신의 음파를 기록하는 기계를 만들다가 축음기의 원리를 발견했다. 

에디슨은 노년에 오컬트에 심취해서 인간의 영혼을 소환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만약 그가 오컬트 대신 축음기의 버전 업그레이드에 좀 더 신경 썼다면 무선전화기의 생일이 100년쯤 빨라졌을 수도 있다. 

아무튼 에디슨이 축음기에 처음으로 녹음한 말은 이렇다.

“친애하는 칸티 씨. 당신의 질문에 답하자면 축음기에 처음 말한 사람은 접니다. 제가 양철 포일에 대고 말하고, 양철 포일이 전해준 말은 ‘메리의 어린 양’의 가사였습니다.”


에디슨 효과 (1884)

유년기에 우리 달팽이관이 괴로울 정도로 백열전구 이야기를 들은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 전기역사에서 에디슨이 그만큼 대단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디슨 효과는 높은 온도로 가열된 금속이나 반도체 표면에서 전자가 방출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열에너지를 얻은 전자가 원자로부터 분리되어 고체 표면에서 튀어나오는 현상으로, 진공관이나 방전관 등에 널리 응용된다고 한다. 

진공관은 삼촌이 옛날 오디오 들을 때 쓰던 거니까 옛날 물건일 테고, 방전관은 이름도 낯서니 더 옛날 물건일 거다. 

그러니까 음... 에디슨 효과는 그냥 백열전구를 만드는 원천기술 같은 거라고 이해하자.


테슬라의 유도전동기 (1893)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미국인 발명가다. 

그때 그 시절의 미국은 무조건 되는 나라였다. 

유럽에서 태어나도 뭔가 될 것 싶은 사람들은 전부 미국으로 이주했으니까. 

테슬라나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부터 그레타 가르보나 마를린 디트리히 등 섹시한 여배우까지 전부 미국인으로 신분을 바꿨다. 

아무튼 테슬라는 뉴욕에서 잠깐 에디슨과 함께 일하기도 하다가 1888년에 회전자기장 법칙을 이용한 교류유도전동기를 발명했다. 

이때부터 테슬라의 교류와 에디슨의 직류 대결이 시작되었다. 

위인전에선 에디슨이 늘 끝판왕으로 등장하지만 전기 기술 자체만 놓고 보면 테슬라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그가 없었으면 대규모 전력 수송도 어려웠을 테고, 일론 머스크도 회사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할지 고민하느라 아직까지 사업자등록증을 신청하지도 못했을 수 있다.


한전문화센터 전기박물관

서울 양재역 근처에 한전문화센터 전기박물관이 있다. 

544건의 유물 등 총 810점의 볼거리를 감상할 수 있다. 

6대 전기 발명품을 선정한 곳도 한전문화센터 전기박물관이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니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