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MILITARY야구- 구속보다 볼끝

구속보다 볼끝


매사에 마무리가 깔끔해야 결과가 좋다.

야구도 그렇다.

특히 투수의 공은 볼끝에서 위력이 결정된다.

by 배우근



감독에게 가장 어려운 순간은 투수교체 타이밍을 잡는 것이다. 

바꿀까 말까. 선택의 순간은 짧지만 고민의 깊이는 헤아리기 힘들다. 몇 가지 선택 기준은 있다. 

상대타자와의 대거리 데이터를 기반으로 마운드를 운영한다. 

그러나 타자와의 전적보다는 투수의 컨디션을 우선 고려하는 게 일반적이다. 

감독이 투수의 상태를 파악할 때도 우선순위를 잡는 게 중요하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꼽히는 조건이 바로 볼끝이다. 

투수의 볼끝이 살아있으면 감독은 개입하지 않는다. 투수교체 없이 경기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KBO리그 최선참 사령탑 LG 류중일 감독은 투수교체에 대해 “마운드 위 투수의 볼끝이 무뎌졌다고 느끼면 후속 투수를 준비시킨다. 

투구 수 보다 볼끝이 우선이다”라고 했다. 볼끝은 투수들도 자주 언급하는 현장 용어다. 

그들은 마운드에서 호투한 뒤에는 “제구가 잘 되었다”는 말과 함께 “볼끝이 좋았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볼 끝은 무엇인가? 어떻게 볼끝의 좋고 나쁨을 파악할까?

고려대 체육교육학 석사 출신의 양상문 감독은 “150km/h를 던질 수 있는 투수라도 때론 140km/h 정도의 구속으로 볼끝을 좋게 만드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구속보다 볼끝이 가지는 위력이 남다르다는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야구인들은 한 목소리로 “볼이 끝까지 살아 움직이면 볼끝이 좋은 것이다. 

볼끝이 좋으면 마운드에서 포수미트까지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빨라지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타석의 타자들은 공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헛스윙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한다. 

즉, 볼끝이 좋다는 건 초속에 비해 종속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미트 앞에서까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린다는 의미다.

 

볼끝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정글과도 같은 프로야구에서 볼끝은 투수의 최애무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모든 투수들이 볼끝 강화에 매달린다. 

국내투수 중 가장 묵직한 볼을 던졌다는 선동열 전 국가대표감독은 볼끝 향상을 위해 하반신을 강조했다. 

선 감독은 “볼끝은 자신의 몸을 얼마나 최대한 이용해 던지는지와 관계가 있다. 

손목의 스냅이나 어깨의 빠른 회전과 같은 몸의 일부가 아닌 전체적인 투구밸런스가 안정되게 잡혀야 한다”라며 “사람 몸에서 가장 힘을 많이 쓸 수 있는 곳이 하체다. 

상체보다 하체의 힘이 훨씬 강하다. 모든 스포츠는 결국 하반신이다. 

야구에서 투수가 손끝에 힘을 모아 던지는 원동력 역시 하반신이다. 하체를 잘 이용해야 묵직하고 볼 끝이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체에서 출발한 힘이 응축되어 손끝으로 나오면 야구공이 대포알처럼 날아간다는 설명이다.

 

볼끝의 내면을 더 살펴보면, 그 힘의 원천배경은 회전력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선발투수 윤성환은 130㎞/h대 속구를 던지는 투수지만 그의 진가는 남다른 볼끝에 있다. 

끝까지 살아있는 그의 볼끝에 많은 타자들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윤성환은 자신의 속구 볼끝이 좋은 이유로 “검지와 중지 끝으로 볼을 찍어 눌러 던진다. 

볼끝은 공의 회전력 때문에 더 좋아 보일 것이다. 

회전이 많으면 공이 살아 움직이듯 들어간다”라고 설명했다. 

윤성환의 손을 살펴본 적이 있다. 다른 투수와 달리 타자도 아닌데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혀있었다. 

검지와 중지로 야구공에 강한 회전을 주며 생긴 영광의 상처였다. 속구를 던질 때 두 손가락이 손바닥을 무수히 찍으며 상처가 생겼고 다시 아문 흔적이 바로 그 굳은살이었다.

 

예일대 물리학 명예교수인 로버트 어데어는 <야구의 물리학>에서 오버핸드로 던진 빠른 공에 강력한 역회전이 걸리면 호핑(hopping) 현상, 즉 타자 입장에선 떠오르는 느낌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이 솟구치는 건 아니지만 회전력에 의해 덜 떨어지며 강력한 볼끝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윤성환과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선동열 감독은 “윤성환은 스피드가 안 나와도 볼끝이 좋은 게 하반신을 착지할 때 보면 거리를 길게 가져간다. 

내딤발을 오래 갖고 갈수록 볼끝이 좋다. 

좋은 투수인지는 하체 움직임을 보면 알 수 있다”라며 재차 하체활용도를 강조다. 

야구사에 이름을 남긴 투수들 중에 신장 대비 스트라이드가 가장 길었던 투수는 바로 선 감독이다. 

현역시절 그를 상대한 타자들은 하나같이 “마치 눈앞에서 공을 던지는 거 같았다. 

바닥에 공을 패대기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공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온다”며 혀를 차곤 했다.

 

야구에서 안타와 범타의 차이는 한 끗 차이다. 직경 7cm 방망이의 한가운데로 직경 7cm짜리 공의 한가운데를 정확히 가격해야 안타가 될 수 있다. 

조금만 어긋나도 땅볼이나 뜬공이 되기 일쑤다. 

그것도 0.5초만에 눈앞을 지나가는 시속 140km가 넘는 빠른 공을 정타로 맞춰야 된다. 

투수의 볼끝이 좋다면 그 한 끗 차이가 발생하며 공은 타자의 방망이 한가운데를 피해간다. 삼진을 이끌어내지 못해도 범타가 되는 것이다.


18세기의 수학자가 야구를 설명한다. 욕은 하지 말자.

베르누이의 정리

 

볼끝이 좋다는 것은 ‘일반적인 궤적과 달리 볼이 떨어지지 않고 솟아오르는 것처럼 날아온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투구 밸런스가 잘 갖춰진 투수가 하체의 힘을 최대한 이용해 손가락 끝에서 에너지 손실 없이 투구하면 볼은 중력을 이겨내며 날아간다. 

그러면 일반적인 속구 궤적에 익숙해 있던 타자 눈에는 마치 공이 타석 앞에서 떠오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볼끝이 좋다는 건 볼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덜 가라앉는 현상라고 봐도 무방하다. 

볼끝은 초속과 종속의 차이가 아닌 강력한 회전에 의해 저항을 이겨내고 전진하는 정도의 차이다.

볼끝이 좋고 덜 가라앉는 건 ‘유체의 속력이 증가하면 압력이 감소한다’라는 ‘베르누이의 정리’와 연결된다. 

이는 ‘마그누스 효과’라고도 하는데, 공에 회전이 걸리면 공의 진행방향과 회전방향에 따라 공기의 속도가 달라지게 된다. 

공의 위쪽에는 저기압이 걸리고 아래쪽엔 고기압이 형성되며 공기의 압력이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중력에 역행하는 일종의 부력이 생기며 공을 밀어주는 힘이 생긴다. 

더불어 회전이 많이 걸릴수록 볼은 중력을 이겨내며 곧바로 날아가게 된다. 

직구와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변화구의 경우엔 궤적이 달라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우완 오버핸드 투수가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모습을 그려보자. 

그러면 볼이 시계방향(밑에서 위로)으로 회전하며 날아간다. 이때 중력은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떨어뜨리듯 공을 지면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작용한다. 

볼 자체에는 맞바람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며 공의 전진을 저지하게 되는데, 볼의 아래와 위쪽에서 작용하는 힘이 다르다. 공의 위아래에 따라 다른 압력이 존재한다.


볼끝과 베르누이의 정리를 매우 단순하게 적용하면, 땅속을 뚫고 전진하는 드릴을 상상하면 된다. 

드릴이 빠르게 많이 회전할수록 땅속 저항을 이겨내며 구멍을 낸다. 투수의 공도 마찬가지다. 

강력한 회전이 많이 걸릴수록 공기와 중력이라는 저항을 이겨내면서 포수 미트를 향해 곧장 날아간다. 

물리학적으로 인간의 힘으로 공이 아예 위쪽으로 솟아오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착시효과가 때론 그라운드에서 승패를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