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ZOMBIE 좀비의 원형을 찾아서

Z.O.M.B.I.E 

좀비의 원형을 찾아서

by 심재학


 국어사전에서는 좀비를 ‘서인도 제도 아이티 섬의 부두교 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살아 있는 시체를 이르는 말’로 정의한다. 실제로 좀비는 부두교 전설에 나오는 주술에 의해 움직이는 시체라는 게 정설이다. 좀비는 죽어도 움직이는 시체를 두려워한 인류가 만들어낸 허상이지만 역사가 오래된 지역에서 좀비의 원형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좀비 오리지널과 이에 관한 흥미로운 잡학을 모았다.



붕대를 감은 고대 좀비

고대 이집트의 ‘미라’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사후세계로 가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시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부활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육신이 온전해야 완벽히 되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시신을 방부처리하여 미라로 만들었다. 붕대(아마포)를 몸에 감은 미라가 바로 이집트 미라의 특징이다. 미라 관련 영화에서는 미라에 영혼이 돌아와 움직이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되살아난 시체라는 점에서 좀비의 원형이며 역사도 가장 깊다.

<잡학 1> 미라를 만들 때 심장을 제외한 내장을 빼낸 후 시신 안을 다른 물질을 채웠는데, 사회 상류층은 송진과 향료를 섞어 넣었고, 하층민의 경우 톱밥이나 돌덩이를 넣기도 했다. 미라를 만들 때 심장을 따로 꺼내 붕대로 싸서 다시 넣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심장이 가장 중요한 장기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뇌가 아닌 심장이 생각을 한다고 믿었다. 그럼 뇌는? 그저 콧물을 만든 장기쯤으로 여겼다.

<잡학 2> 젊은 귀부인이 죽었을 경우에는 시간(屍姦)을 못하도록 며칠을 방치했다가 미라로 만들었다. 죽은 시체를 보고 자위행위를 했던 고약한 취미를 가진 이들도 있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일반인들이 자위행위를 하다 걸리면 극형에 처해졌다. 자위행위는 가뭄 때 파라오(왕)가 강에다 행하는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잡학 3> 동물을 미라로 만드는 것도 이집트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인간과 가까웠던 개와 고양이는 물론이고 신성한 동물로 여겼던 매, 악어, 하마, 소 등도 미라도 만들어졌다. 이집트의 베니 하산에서는 1888년 약 8만 구의 고양이 미라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몽땅 갈아서 비료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하긴 사람 미라도 널려 있는데, 고양이 미라 따위야.
2017년 영국에서 전국 박물관에 있는 이집트 동물 미라들을 조사해보니 가짜도 적지 않았다. 연구 수행자인 리디야 맥나이트 박사는 가짜가 많은 이유로 '모의 미라' 제작 가능성과 함께 미라 제작자들이 사기를 쳤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잡학 4> 한때 서양에서는 미라 가루가 만병통치약으로 팔렸다. 영국의 찰스 2세는 미라의 힘을 얻기 위해 가루를 몸에 발랐다고 한다. 미라 가루가 인기를 끌자 시신을 파헤쳐 미라처리해 판매하는 경우도 많았고, 그냥 시체를 가루내서 미라 가루라고 속이고 파는 일도 있었다. 실제로 파우더를 바른 미라는 의약용품으로 쓸 수 있다는 사실. 파우더를 바른 미라에는 역청 성분이 있는데, 이게 약의 원료라는 것이다.

<잡학 5> 미라를 장작 대신으로도 사용했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지는 의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이집트 여행기에서 기관사들이 이렇게 대화를 한다. 한 기관사가 "영 화력이 안오르는데?"라고 하자 다른 기관사는 "평민 녀석들 말고 왕 좀 태워봐!"라고 대답한다. 그저 농담으로 한 말인지 실제로 있는 이야기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시아의 대표 좀비

중국의 ‘강시’ 


 강시는 전쟁터나 객지에서 죽은 이들을 고향으로 옮기기 위해 영환술사 혹은 영환도사들이 부적을 붙여 움직일 수 있게 만든 시체를 말한다. 고전 동아시아권 문화에서는 장례만큼은 고향에서 해야 한다는 사상 때문에 생긴 전설이다.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는 그야말로 강시 붐이 일어서 영화는 물론이고 각종 스티커와 팬시상품들까지 나왔다. 죽은 시체가 움직인다는 설정으로 아시아판 좀비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잡학 1> 객사한 시신인 강시(僵屍)와 죽어서 굳은 시체를 뜻하는 강시(殭屍)는 조금 다르다. 강(殭)이라는 한자는 누에 등이 병들어 죽었을 때 썩거나 하지 않고 굳어서 죽는 것을 묘사한 글자다. 예전에는 강시(僵屍)를 주로 얼어죽은 시체를 부르는 동시(凍屍)와 같은 표현으로 썼다고 한다. 동시(凍屍)는 원령이 깃들어 사람을 해치는 얼어죽은 시체를 말한다. 중국어에서는 좀비를 강시(僵屍) 대신 강시(殭屍)라고 번역한다.

<잡학 2> 영화 등에서 강시는 주로 두 팔을 들고 콩콩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모습은 전쟁에서 죽은 많은 시체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시체의 양 겨드랑이에 긴 대나무 2개를 끼우고 소매를 엮어 옮겼는데, 멀리서는 시체가 팔을 들고 뛰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부패하고 냄새가 지독한 시신을 그렇게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부정적인 견해도 많다.

<잡학 3> 중국에서는 강시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면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재앙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여겼다. 특히 살아 있을 때의 체력과 관련 없이 괴력을 가졌다고 묘사된다. 안휘성(安徽省)의 곽산(霍山)에 나타난 강시는 위태천(韋駄天) 불상을 양팔에 안고 가루로 만들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잡학 4> 심평산의 <중국신명개론(中國神明槪論)>에는 시체를 움직이게 하는 주술이 나온다. 중국의 서남부 운남성, 귀주성, 사천성 인근에서 자주 사용되었던 주술로 사체를 죽은 이의 집에 운반하는 방법으로 사용했다. 주술에 걸린 사체는 썩지는 않지만 말은 할 수 없다. 이 주술은 일본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까지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잡학 5> 강시 퇴치법은? 강시는 이미 죽어 있는 사체로 일반 무기로는 격퇴할 수 없다. 가장 적절한 퇴치법은 불에 태우는 것이다. 또 강시는 굳은 사체이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처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없다. 따라서 어딘가를 오르는 동작이 아무래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강시로부터 도망칠 때는 높은 곳으로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잡학 6> 강시는 흡혈귀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다고 한다. 목을 깨물어 피를 흡입하는 서양 흡혈귀와 달리 희생자를 살해해 목을 떼어내고, 피가 전부 없어질 때까지 머리부터 몸 전체의 피를 흡입해나간다.


좀비 상상력의 원류

유럽의 ‘뱀파이어’

 


 뱀파이어(흡혈귀)는 유럽 쪽 설화와 민담에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존재다. 시신이 부패할 경우 피가 입에서 흘러나오는데 이를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피를 빨아 먹은 흔적으로 오인해 뱀파이어 괴담이 시작됐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죽은 이가 살아나고 뱀파이어에게 물린 사람은 뱀파이어가 된다는 상상력은 좀비 이야기의 설정으로 전해졌다.

<잡학 1> 뱀파이어 전설 혹은 괴담은 동유럽 쪽에서 널리 퍼졌다. 동유럽은 서유럽에 비해 그리스도교 영향이 약해 미신, 설화 등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늑대인간, 마녀 이야기와 함께 뱀파이어 이야기도 널리 퍼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피를 빨아먹는 악령인 루마니아의 스트리고이 이야기다. 전설상 스트리고이는 산 자의 피를 빨아 생명력을 빼앗고, 동물로 변신하거나 모습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잡학 2>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 이야기는 동유럽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특히 중동에서는 밤중에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마시기 위해 떠돌아다니는 라마슈투와 라비수 같은 흡혈귀들에 관한 전설이 많다. 중동 지역에서 탄생한 종교인 유대교와 이슬람교 모두 피를 먹는 것을 금기하는데, 이런 흡혈에 대한 혐오가 괴담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잡학 3> 드라큘라와 뱀파이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드라큘라는 영국의 소설가인 브램 스토커가 1897년에 발표한 흡혈귀 소설의 주인공으로 마구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흡혈귀와는 달리 비교적 고상한 캐릭터다. 특히 흡혈귀가 사람 성별을 가리지 않고 흡혈을 하는 반면 드라큘라는 오직 여자의 피만 빨아 먹는다.

<잡학 4>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유럽에서 다양하게 전해지던 뱀파이어의 특징이 정리한 소설이기도 하다. 뱀파이어는 인간보다 힘이 세고, 자신의 관에서 자며, 거울에 비치지 않는 존재다. 흡혈귀는 햇빛을 무서워하며 성물이나 은으로도 퇴치할 수 있다. 흡혈귀는 박쥐나 늑대로 변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안개로 사라질 수도 있다. 많이 알려진 뱀파이어의 특징 중 하나는 피를 먹힌 사람도 역시 뱀파이어가 된다는 것. 이는 중세 시대 때 광견병에 걸린 사람이 난폭한 행동을 하는 경우를 보고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잡학 5> 뱀파이어 이야기에는 흡혈 행위에 쾌감과 오르가즘을 느끼는 미녀의 모습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피의 붉은 색, 목 같은 신체 부위, 가학적 행위 등 흡혈이 가진 강한 성적 메타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느낌이 변주된 요즘과 달리 예전에는 뱀파이어 이미지가 아주 나빴다. 예전 사람들은 뱀파이어를 성관계 혹은 이로 인한 성병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 물론 금기가 더 흥분을 자극하는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TIP> 흥미진진 좀비 썰

러시아 좀비군(軍) 이야기


 1915년 1차 세계대전 때 독일 제국군은 러시아 제국군이 주둔한 오소비에츠 요새를 뺏기 위해 강력한 포탄 공격하며 주둔군의 격렬한 저항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자 염소 가스를 살포하고 방독면을 갖춘 보병부대를 요새로 돌격시켰다. 


 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독일군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독가스로 피부가 벗겨진 흉칙한 몰골의 러시아 병사들이 입에서 피와 살점을 내뱉으며 마치 좀비처럼 괴성을 지르며 반격하는 것 아닌가. 


 생존자 중 가장 계급이 높았던 블라디미르 코틀린스키 소위가 남은 병사들을 모아 최후의 응전을 한 것이다. 방심한데다 괴이한 모습에 아연실색한 독일군이 우와좌왕 하는 사이 러시아 좀비 부대는 반격에 성공해 승리했다. 이날의 반격을 당시 언론은 '죽은 자들의 공격'이라고 표현했다. 전투를 이끈 코틀린스키 소위는 승리한 당일 저녁 가스 중독으로 결국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