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STYLE봄에 읽기 좋은 달콤씁쓸한 연애소설 다섯 편

2021-05-07

봄에 읽기 좋은 

달콤씁쓸

연애소설 다섯 편 

by 이정미


 많은 사람들에게 봄은 ‘시작’을 의미한다. 작년 한 해는 정말 다사다난했다. 그리고 그 연장전이 계속되고 있다. 여러모로 설레기보다는 뒤숭숭할 수밖에 없는 시작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바뀌고, 꽃은 피고, 익숙한 이들과 헤어지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것이다. 

 나는 유난히 봄에 연애를 시작한 적이 많다. ‘계절을 탄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봄을 탔나 싶다. 그렇게 시작한 연애는 어쩐지 꽃이 지면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짧은 만남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비 오는 날 그와 함께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벚꽃을 본 기억, 개강총회날 막차 시간 버스정류장에서 같이 담배를 피운 기억, 처음 들었던 교양 수업에서 까마득히 높은 선배를 보며 두근거리던 기억. 그 끝이 어떠하든 봄의 추억들은 다 저마다의 애틋함을 선사한다. 

 사실, 정말 아름다운 연애 소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혹은 읽는 사람들은 저마다 뒤틀린 구석이 있는 것일까? 정말 예쁘고 따뜻한 소설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어디인지 씁쓸하고 미적지근한 느낌이 마치 반쯤 식은 카페라테에 바닐라 시럽을 한 펌프만 넣고 마시는 기분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벚꽃도 항상 우리의 기억만큼 분홍색은 아니지 않은가? 기대에는 조금 못 미칠지 몰라도 이만하면 나름 봄 냄새 나는 소설 다섯 편을 지면을 빌려 소개하고자 한다.


1. 고데마리 루이의 「호수의 성인」

"언젠가 우리가 예전처럼 웃으며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고,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언제든지 마음 놓고 말해줬으면 해. 
나도, 그리고 고토코도, 
우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자. 
사랑에 대해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고 나누자. "


몇 줄 평: 먼 훗날 옛 연인에게서 연락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은 무슨 연유에서 이혼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고, 학생 시절의 연인이었던 그녀는 당신을 간절히 만나고자 한다.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루이의 ‘호수의 성인’은 없는 추억까지 위조하는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고토코는 헤어진 지 십년이 넘은 과거의 남자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그녀가 이혼을 한 지 일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고, 연인 또한 몇 년 전 다시 싱글이 된 상태라고 밝힌다. (이런 우연이?) 그들은 같이 여행을 하며 친해진 사이이다. 그렇게 낭만적인 일상을 함께 하던 중 사회에 나가게 되면서 헤어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십년이 지난 시점에 그들은 아직도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비현실적인 감이 없지 않지만, 누구나 꿈꿔볼 만큼 로맨틱한 이야기이다.  


2. 홍희정의 「앓던 모든 것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필연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남루한 심상은 전부 다 걷어 버린 채 
임상적인 수치로만 여길 수 있을까."

몇 줄 평: 제목만큼이나 아린 소설이다. 마치 봄의 끝에 져가는 꽃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올해 일흔 셋의 할머니이다. 그녀는 많이 배운 여성이고, 한 때는 글을 썼다. 그녀는 한 평생을 홀로 살았다. 삭막하지는 않아도 생명력이 넘친다고 할 수는 없는 그녀의 삶에 ‘윤오’라는 이름의 스물한살 청년이 들어오게 된다. 그는 그녀가 아쿠아로빅을 하다가 물에 빠질 뻔할 것을 구해주고, 그날로 그녀의 집에 눌러 살게 된다. 윤오는 마냥 활기찬 젊은 청년은 아니다. 그는 모종의 정신적인 문제로 때때로 개처럼 짖는다.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짖는다.) 일흔의 여자와 스무 살의 청년 사이에 육체적인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정서적으로 교감할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애처로운 동시에 따뜻하다.


3. 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


"그러니까 그 애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을 때마다
나는 그 애의 얼굴을 허겁지겁 눈에 담았고
면면히 훑었다.
끊임없이 바쁘게 힐끔거렸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그 애를 보고 있는 동안은
무언가 좋은 것이
내 주머니로 와르르 쏟아져 들어온다는 듯이.
그래서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필사적으로 주워 담으려는 듯이."

몇 줄 평: 당신의 이상형은 무엇인가? 긴 생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여자? 단발머리에 눈웃음이 예쁜 여자? 아니면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지닌 연상의 여자? 갑자기 당신의 눈 앞에 이상형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살짝 캡처해 둔 그녀가 당신과 같은 팀이 되어 합숙 면접을 보게 된다면? 펀펀 페스티벌에 등장하는 ‘이찬휘’라는 남자 인물은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적이 있으며, 유명대학교의 미남으로 알려져 있는 인스타그램 스타이다. 그리고 주인공 여자는 5년 전 자신의 휴대폰 속에도 저장되어 있는 이찬휘와 같이 입사 면접을 보게 된다. 그녀는 이찬휘의 ‘근자감’으로 가득한 행동을 보며 진절머리를 내며 ‘언팔’을 다짐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환상이 없어진 지 5년이 지난 연말모임에서조차 그의 완벽한 외모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자신에게 더 큰 염증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이찬휘에 대한 생각이 변하는 주인공 여자의 모습을 보면 마치 첫사랑에 대한 상상이 와장창 깨졌을 때의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4.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

"필용이 양희를 볼 수는 있어도
양희가 필용을 봐서는 안 되었다.
시선을 일방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교환되면 무언가가 남으니까
남은 자리에는 뭔가가 생기니까. 자라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무게감을 지니고 실제가 되니까."


몇 줄 평: 소설 깨나 읽어본 적 없어도 김금희의 이름은 알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광화문에 있는 서점에 가면 메인 코너에서 볼 수 있는 그 감성적인 책 표지도. 그녀의 ‘너무 한낮의 연애’는 제목과는 따르게 그렇게 뜨겁지도 않고, ‘연애’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등장인물의 표현을 빌리면 ‘연애 비슷한 것’이 나오기는 한다.) 소설은 주인공 필용이 인사이동을 통보받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일순간 맥도날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그가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동안 반대편 건물에 매달린 현수막을 보게 된다. 그 현수막에는 옛 연인(?)이 쓴 극의 제목이 적혀 있다. 그는 그렇게 충동적으로 그 연극을 종종 보러 가게 된다. 사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꾸준히 사랑을 말하던,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그 말을 중단한 양희를 보면 사랑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5.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나의 실수는
사랑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동한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 클로이가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였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우리의 사랑 이야기의 발단을
운명론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은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증명해준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했다는 것."


몇 줄 평: 알랭 드 보통을 모른다고 해도 남녀가 미켈란젤로의 그림과 비슷한 자세로 손을 잡고 있는 홍당무색 책을 본 적은 있을 것이다. 항상 베스트셀러 코너, 또 스테디셀러 코너에 꽂혀 있는 바로 그 책 말이다. 호기심이 생길 법도 한데, 그 낯간지러운 제목에 꺼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으니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동시에 완벽에 가까운 러브 스토리를 그려내고 있다. 가벼운 문체와 잘 끊어진 구성 덕분에 읽기가 편안하기도 하다. 그와 동시에 니체, 칸트, 플라톤 등의 인용문을 사용하여 지적이기까지 하다. 베스트 셀러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화자는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경험을 위트 있는 동시에 굉장히 통찰적으로 성찰한다. 지적인 현대인이라면 단연 읽어볼 만한 러브스토리로 꼽고 싶다. 당신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 또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듯이 영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