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STYLE우리의 모습, 관계의 끝에선

2021-02-05

우리의 모습

관계의 에선


 우리는, 언제인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보다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나쁘다고. 

 우스갯소리에 불과했고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문장은 이별에 우유부단한 너를 겨냥한 말이었지만 나쁜 의도는 없는 술자리의 농담이었다. 

 너와 나는 각자 만나는 사람이 있었고, 우리가 서로에게 그 흔한 ‘여사친’ ‘남사친’이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이 뼈가 될 때가 있다. 

 너와 만나는 요즘의 나는 그때의 대화를 이따금씩 복기하고는 한다. 

 지금 우리 관계가 위기에 처한 건지 잘 모르겠다. 

 사실 위기라는 표현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결론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네가 애정을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한테 털어놓을 수도 있는 불평에 대한 인내를, 너의 사소한 행동에서 매 순간 드러나는 무언의 시위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네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순간을—특별한 사이가 아니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이지—기억한다. 

 나는 객관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표면적으로 정해지는 ‘나쁜 쪽’이 되고 싶지 않다. 

 정확히는 굳이 우리 관계에서 과실이 있는 사람을 자처해서 그로 인해 돌아올 화살들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

  너에게 이전과 같은 애정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도 명백하지만, 편하게, 편하게, 헤어지고 싶은 것이다. 

 이기적인 것이 맞다. 


 오래된 연인일수록, 이미 같은 이유로 헤어짐을 반복한 이들일수록 이별에 우유부단해진다. 

 이미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너무 익숙해졌고, 서로의 생활에 너무 깊이 들어왔다. 

 상대방이 나에게 헌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헌신에 대한 보답차원에서 좀 더 머뭇거림을 지속한다. 

 그리고 거짓 결백을 증명한다. 

 그럴듯한 핑계들을 늘어놓으면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당신의 말처럼 달라진 것은 당신의 상황뿐일 것이다. 

 마음은 바뀌지 않았어, 그대로야, 사랑해. 

 나는 네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전제들을, 네가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건드리지 않는 부분들을 이용한다. 

 그리고 어쩌면 너도 나와 같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상관 없다고 느낀다. 


이별의 징후

 굳이 ‘싸움’이라는 명백한 형태로 드러나지 않아도 정서적인 거리감을 느낄 여지는 충분하다. 

 사람의 직관은 꽤 잘 맞아떨어진다. 

 어쩌면 상대방은 이미 명백한 방식으로 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직관이라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갈등은 무관심해 비해 애정적인 양상이다. 

 갈등에는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존재할 수 있다. 

 무관심은 아니다. 

 회피는 단지 현재의 시간을 버티기 위함이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많은 감정을 소비하거나 해소한다. 

 감정이 대부분인 관계에 감정이 관여하지 않게 되는 것은 곧 종말을 의미한다. 

 전의를 상실한 채 내뱉는 미안하다는 말,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 더 잘해주는 것 등은 회피의 은유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단순히 나의 유희를 위해 네가 싫어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그것들을 죄책감 없이 숨긴다. 

 너와는 별개의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너 또한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너는 내가 먼저 전화 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너 또한 전화하지 않는다. 

 나는 너의 기분을 상하지 않기 위해 때때로 전화를 걸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너는 내가 네가 하는 것처럼 일거수일투족을 말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이제는 이틀 간의 대화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게 된다. 

 사실 필요 때문에 하게 되는 말은 없다. 

 네가 다른 친구들을 만났던 시간만큼 나도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별다른 생각 없이 다른 사람을 안는다. 

 그리고 네가 똑같이 한다 해도 크게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히려 다른 사람과 함께 길을 걷는 너를 만주하고 싶다. 

 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척 하고 싶다. 

 너에게 충분히 나쁜 역할을 전가하고 싶다. 

 아쉬움 없이도 끝나 버린 관계를 놓지 않고 있다. 


미련에 대하여

 ‘굳이’ 헤어지지 않는 것에는 여러 이유들이 얽혀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오랜 시간 만나온 연인들은 서로가 느끼는 애정과는 별개로 상대방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그와의 크고 작은 차이들이 불편한 삐걱거림을 야기하고, 이러한 만남은 더 이상 회복되지도 진척되지도 못한다는 것이 보일지라도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판단을 보류한다. 

 하루하루 보내는 시간들 자체는 그럭저럭 견딜 만 하다. 


 결정적으로 헤어질 계기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상대방의 어떤 측면들이 더 용인할 수 없을 만큼 지긋지긋하지만, 그런 것을 굳이 고치고자 하는 마음도 들지 않고, 고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회피하는 것이다. 

 그런 작은 결점을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일 뿐이다. 

 뜨거운 냄비를 잡고 있듯이 불안하다. 


 내가 너에게 느끼는 증오와 혐오감을 너 또한 느끼는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너 또한 나를 견디고 있을 터인데, 나라고 못 견딜 이유가 있겠는가? 

 결정적으로 나는 너를 먼저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네가 나에게 해준 것들을 무시하고 싶지 않다. 

 어줍잖은 선의이다. 

 그러나 우리 관계에서 내가 나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차라리 네가 나에게 질리길 바란다. 

 이러한 상황을 견딜 수 없게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 이 상황을 책임져야 한다면 네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너를 욕하고 원망하며 헤어질 마음이 없다. 

 그러나 너는 그렇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헤어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전문가들은 고전적인 방식의 이별이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메시지 하나 남기고 차단하는 것보다 ‘예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텍스트로 관계를 맺고 끊는 것은 당연히 얼굴을 마주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더 보지 않을 인연에 대해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날것의 감정—그것도 부정적인—을 마주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맞다. 

 사실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되 감정 자체에는 솔직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너를 위해’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헤어지는 것을 확실히 하되 굳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말자.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표현을 하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말을 하는 것이 어렵다면 당신의 애정이 식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방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 그가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주도록 하자.

 좋은 이별은 없다. 

 그러니 나쁘지 않은 이별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