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MILITARY신출귀몰한 하늘의 암살자, 드론 Drone

신출귀몰한 하늘의 암살자

드론 Drone


못 가는 곳 없고 못 죽이는 이 없는 무인기

by 제로


근 몇 년 사이 쇼핑몰 전자기기 코너 한 켠에 새로운 얼굴이 자리를 잡았다. 

바로 자그마한 로터와 프로펠러를 단 ‘드론’이 그 주인공이다. 

과거에는 방송 촬영장비나 소수 마니아의 장난감 취급이었지만 중국이 이쪽 시장에 투자하면서 가격이 많이 내렸다. 

덕분에 이제는 정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드론을 사서 날려볼 수 있는 시대다. 

드론(Drone)이란 영어로 꿀벌, 개미 등 벌목과 곤충의 수컷을 뜻하는데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꽤나 닮았다. 

벌목과 곤충 수컷이 대체로 평생 여왕을 위해 일만 하는 존재인 만큼, 드론 역시 각종 산업에서 훌륭한 일꾼 노릇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굴지의 인터넷쇼핑몰 아마존이 드론 택배업을 발표했으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선 1218개의 드론이 동시 비행으로 개회식을 장식하기도 했다.


세계대전으로 피 본 미국, 무인기를 구상하다

근현대에 발명된 여러 기술이 그렇듯 드론의 출발은 군사 병기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이 영국의 해상 봉쇄를 뚫고자 실시간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그때까지 참전에 소극적이던 미국을 자극했다. 

이즈음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독일은 협상국 방향으로 운행하는 모든 상선과 군함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격침시켰다. 

문제는 이 와중에 독일 유보트 U-20가 미국인 128명이 탑승한 여객선 RMS 루시타니아를 어뢰로 작살냈다는 것이다. 

이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미국이 두 팔 걷어붙이고 독일과 동맹국을 두들겨 팬 것은 당연지사. 

다만 옆에서 미국을 거들어줘야 할 협상국(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이 영 재구실을 못하면서 때리는 쪽도 생각보다 출혈이 커지고 말았다. 

만만히 보고 쥐어박았는데 팔목이 삔 격이다.


유럽 파병으로 20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미국 행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할 땐 하더라도 인명 피해는 최소화해야 했다. 

바야흐로 무인 병기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제1차 세계대전의 쓰라린 경험이 오늘날 첨단무기 덕후 미군을 만든 셈. 

공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리 아놀드 원수는 그 유명한 라이트 형제와 전기공학자 찰스 케터링, 그리고 제너럴 모터스의 지원을 받아 1918년 최초의 무인기 ‘케터링 버그(Kettering Bug)를 고안했다. 

말이 무인기지 작동 원리는 꽤나 간단했는데, 폭탄을 잔뜩 싣고서 목표 방향과 거리에 맞춰 프로펠러를 감은 뒤 이륙시키면 끝이었다. 

이래 봬도 동시대 그 어떤 야포보다도 먼 사거리를 날아가 180파운드 폭탄을 때려 박을 수 있는 차세대 병기였다.

물론 제아무리 치밀히 계산하여 프로펠러를 감았더라도 무인기가 적 기지로 직행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1918년에 제대로 된 항법장치가 있을 리 만무하니 기상 환경에 따라 엄한 곳으로 날아가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케터링 버그는 단 50여기만 생산된 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180파운드짜리 폭탄을 얻어맞은 불운한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훗날 로켓 기술 발전과 함께 전쟁의 주역으로 올라선 미사일이 이 케터링 버그의 먼 친적이라 하겠다. 

비록 케터링 버그는 이래저래 문제가 많은 과도기적 물건이었으나 미군에 큰 영감을 주기는 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미군은 수십년간 무인기 개발에 매달렸으며 90년대 중반 들어선 마침내 드론으로 군사 작전을 펼치는 단계에 이르렀다.


미사일을 단 무인기, 지옥불 내리는 포식자로

초창기 군사 드론은 어디까지나 정찰용이었다. 

유인기보다 작고 은밀한 드론을 띄워 고고도에서 넓은 지역을 순찰하고 적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다 2001년 시험적으로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한 MQ-1 프레데터가 아프가니스탄 영공을 날며 최초의 무인 공격기 실전 투입 기록을 세웠다. 

포식자라는 그 이름처럼 MQ-1 프레데터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성과를 냈는데, 2006년 알 카에다의 악명 높은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를 제거했으며 2011년 리비아에서 무아마르 알카다피를 축출할 때도 그 역할을 다했다. 

록히드 마틴 방위산업체가 자랑하는 AGM-114 헬파이어는 본래 코브라나 아파치 헬기를 위해 개발한 고성능 대전차 미사일이다. 

이런 게 보이지도 않는 높이에서 날벼락 치듯 떨어지니 그야말로 아프가니스탄의 저승사자였던 셈.

간혹 드론이라니까 작고 귀여운 크기로 착각하는데 프레데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전장 8.53m, 전폭 17.06m, 전고 2.1m에 최대 중량 1,900kg으로 아담한 전투기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헬파이어 미사일 한 개의 발사 중량이 50kg나 돼서 소형 드론에는 장착도 못한다. 

따라서 절대 권장하진 않지만 필요하다면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이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실제로 세계 최초의 유인기 vs 무인기 공중전 기록도 프레데터가 챙겼는데, 이라크 공군 MiG-25를 포착하고 급한대로 스팅어 미사일을 갈겨버린 것이다. 

평범한 공중전이었다면 선빵필승의 법칙에 따라 프레데터가 승리했겠지만 드론은 어디까지나 드론일뿐. 

초고속 전투에 정평이 난 MiG-25답게 여유롭게 회피 후 프레데터를 격추시켰다고 한다. 

역시 공중전은 무리수였나 보다.

공격용 드론의 등장은 실로 획기적이었나 예상치 못한 논란도 잇따랐다. 

무인기가 인명을 살상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사람을 죽이는 행위 자체가 비윤리적이긴 하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병사가 발포하는 순간까지 직접 상황을 판단하는 여느 화기와 달리 드론을 통한 공격은 윤리적 고민의 여지가 적은 편이다. 

드론 조종사는 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황실에서 카메라가 보내오는 영상만 보며 목표를 사살하기 때문이다. 

장거리 미사일 공격도 이와 비슷한 논란이 있지만 그나마 폭격은 매우 드문 일인 반면 드론 출격은 굉장히 빈번하다. 

그러다 보니 중동에서는 프레데터에 의한 민간인 오폭 문제가 심각하여 미국 국정감사에 거론될 정도다.


대형부터 군집형까지, 드론 전쟁이 다가온다

미군은 2018년을 끝으로 MQ-1 프레데터를 퇴역시키고 후계기 MQ-9 리퍼로 갈아탔다. 

미국의 영원한 라이벌 러시아는 얼마전 스텔스 드론 S-70 오호트닉(Okhotnik, 사냥꾼) 시범 운행에 성공했고 중국 역시 초음속 드론 GJ-11 리젠(利劍, 예리한 검)을 한창 개발 중이다. 

이들은 모두 무인 전투기에 가까운 대형 드론으로 대당 가격이 50~100억 원가량이다. 

1,000억 원이 넘어가는 주력 전투기와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이지만 소모품처럼 다루기는 부담스러운 미묘한 가격대. 

이에 첨단 무기 분야에서는 저렴한 소형 드론을 수십에서 수백 대씩 뭉쳐서 보병 소탕에 활용하는 군집 드론(Drone Swarm)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드론이 떼지어 날아다니며 무엇이든 닥치는 데로 박살낸다고 상상해보라. 

죽음의 메뚜기떼가 따로 없다.


드론은 강화외골격(Exo Skeleton)과 함께 가장 먼저 현실화된 미래 병기다. 

아군 인명피해와 작전비용을 최소화하며 언제 어디서나 적을 정밀히 타격할 수 있는 하늘의 암살자. 

당장 지난 1월만해도 트럼프 대통령을 호기롭게 도발한 이슬람 혁명수비대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MQ-9 리퍼의 헬파이어 미사일 한 방에 비명횡사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가 탑승한 차량이 걸레짝이 된 탓에 조각난 손가락의 반지로 신원을 확인했다고 한다. 

미군이 외국 고위급 장성을 사살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려 77년만이다. 

이제 드론 앞에 그 누구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데도 국군은 여전히 군사 드론에 있어서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적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도 드론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