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MOVIE]THE FIRST SLAM DUNK


 THE FIRST 
 SLAM 
 DUNK 

<학창시절 남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던 만화 <슬램덩크>가,
 26년 만에 스크린을 통해 다시 한번 남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by 김현석




‘이노우에’의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만화를 열광하며 보던 사람들 중 대부분이 TV 애니메이션을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만화 속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농구 경기의 템포를 재현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만화 한 컷, 한 컷을 채색해서 비디오 효과만 좀 준 느낌이었달까? 채치수의 골대를 부실 것 같은 고릴라 덩크, 강백호의 열정적인 리바운드, 서태웅의 천재적인 플레이, 정대만의 폭발적인 3점 슛, 송태섭의 따라갈 수 없는 스피드를 관전할 수가 없었다.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정적이었고, 농구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1도 담지 못했다. 게다가 원작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다 보니 퀄리티가 들쑥날쑥했다. 연재 속도를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면서 루즈해지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원작자인 ‘다케히코 이노우에’도 실망감을 드러내며 두 번 다시 자신의 작품을 애니화하지 않겠다고 했겠는가. 

그래서 이노우에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자인 이노우에가 직접 연출, 각본을 맡았다. 덕분에 만화를 통해 그려냈던 의도가 고스란히 스크린 속에 옮겨졌다. 분명히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데 만화를 다시 보고 있는 느낌을 선사한다. TV 애니메이션, 혹은 이전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생각하고 극장에 간다면 어안이 벙벙해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D 만화를 3D로 재현했음에도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설프게 캐릭터들을 모델링 하지 않았다. 2D의 장점과 3D의 장점만 골라 담았다. 만화책에서 표현됐던 데생 느낌이 고스란히 옮겨졌음에도 3D처럼 공간감을 가진다. 슬램덩크 캐릭터들이 생긴 그대로 농구 코트를 활보하는 걸 지켜볼 수 있다. 이제서야 겨우 제대로 된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리지널’ 작품

만화 느낌 그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그뿐이라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그저 그런 기술 뽐내기용, 추억팔이용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노우에는 원작을 그대로 똑같이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슬램덩크를 새로운 관점에서 리메이크 한다는 심정으로 작업에 임했다. 

그래서 주인공은 강백호가 아닌 송태섭이다. 비중이 가장 적은 캐릭터였던 송태섭이 극의 중심에 놓인 것이다. 원작에서 북산 5인방 중 개인 서사가 가장 부족했던 캐릭터가 송태섭이고 단 한번도 게임에서 MVP급 활약을 한 적이 없다. 철저한 조연의 위치였다. 하지만 송태섭은 이노우에의 오너캐이기도 했다. 그런 송태섭의 유년 시절과 가족사를 중심으로 원작 중 최고의 에피소드였던 산왕공고와의 혈전이 진행된다. 

그렇다고 원작의 흐름과 서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에 땀을 쥐게 만들던 산왕공고와의 대결은 여전히 숨 막히게 진행된다. 원작에 나왔던 명대사와 명장면들도 몇 개를 제외하면 고스란히 등장한다. 

송태섭이 주인공이라고는 해도 버프를 받아 원작과 다르게 혼자 대활약 해버린다거나, 나머지 주인공들의 활약상이 부각되지 않거나 능력이 너프 되는 등의 불이익은 없다. 그저 중간, 중간 송태섭의 서사가 스며들며 숨 쉴 틈을 제공하고 원작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감성을 선사해 줄 뿐이다. 덕분에 너무나 훌륭하고 완벽한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임에도 원작과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TV 애니메이션의 색채를 빼기 위해, 아니 아예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TV 애니메이션을 떠올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성우진을 전면 교체해버린 것. 일본에서는 TV 애니메이션 팬들에 의해 큰 논란이 됐으며, 국내에서도 강백호 역의 강수진 성우를 제외하면 전면 교체됐다. 또한 주옥같았던 TV 애니메이션의 OST들도 모두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됐다. 결국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TV 애니메이션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될 수 있었다. 덕분에 슬램덩크를 접해보지 못한 어린이들이나 여성 관객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농구’ 100%

이노우에 그 자신이 농구부 출신이었고, 농구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그렸던 작품이 바로 슬램덩크였다. 만화나 TV 애니메이션에서 틈틈이 농구에 대한 상식을 강의 형식으로 그려 농구가 생소한 사람들도 농구를 이해할 수 있게끔 노력했었다. 슬램덩크는 강백호와 북산 멤버들의 성장기를 담은 ‘성장’ 만화이자 일본과 한국에서 늘 축구와 야구에 밀려 번외 취급받던 농구를 메인 스트림으로 끌어올린 ‘농구’ 만화다. 

트레이싱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NBA나 실제 농구에 대한 관심과 지식도 많은 이노우에다. 등장하는 팀과 캐릭터들은 모두 실존 인물과 팀을 모티브로 창작됐다. 그래서 등장하는 모든 팀과 모든 멤버들에게 사실적인 개성을 부여해 입체감을 주었고, 그들에 의해 벌어지는 농구 경기들은 모두 현실에 있을 법한 흐름으로 흘러간다. 그 생생함 덕분에 만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실제로 농구를 하는 것처럼, 혹은 실제 농구 경기를 보고 있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학창 시절 슬램덩크를 읽어 본 사람들 중 농구를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슬램덩크는 소년들의 손에 농구공을 쥐여줬고 그들을 농구장으로 향하게 만들었던 만화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지금껏 나왔던 그 어떤 농구 애니메이션이나 심지어 농구 영화와 견준다고 해도 최고 퀄리티로 농구라는 스포츠를 표현하고 있다. 이노우에는 선수 10명이 동시에 격렬하게 움직이는 농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CG를 활용했다. 2D로 그려진 만화와 TV 애니메이션이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두고두고 레전드로 회자되고 있는 상황에서 초강수를 둔 것이다. 

컴퓨터 CG를 선택한 모험은 결국 신의 한 수로 돌아왔다. 특정 캐릭터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순간에도, 다른 캐릭터들이 실시간으로 뛰어다니며 박진감과 현장감을 만들어 낸다. 공의 스피드, 공의 궤적까지도 실제 농구의 그것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이는 애니메이션 제작진들은 실제로 농구를 배우고, 플레이해가며 ‘농구다움’을 체화해 나가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농구 플레이 시 발을 옮기는 모션, 공을 받는 순간의 신체적 반응, 슛 동작의 타이밍 등 농구광인 이노우에가 원하는 디테일을 반영하는데 성공했다. 스크린에 애니메이션과 함께 진짜 농구가 펼쳐지는 이유다. 



‘최고’의 에피소드

약 2년 전, 유튜버 침착맨은 SBS 아나운서 배성재와 함께 ‘슬램덩크 최고의 명장면 월드컵’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학창 시절 슬램덩크에 열광했던 두 사람의 환상적인 토크 티키타카와 함께 슬램덩크 명장면들을 훑어볼 수 있었던 콘텐츠로 조회수 157만 회를 기록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었다. 워낙 명장면과 명에피소드들이 많은 슬램덩크이긴 하지만 그중 상위권에 랭크된 명장면들은 대부분 인터하이 32강전, 흔히 최종 보스로 알려진 산왕공고와의 에피소드에서 나온 장면들이었다. 슬램덩크 팬들 각자가 꼽는 최고의 에피소드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팬들은 산왕공고와의 경기가 최고의 에피소드라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지역 예선을 거쳐 더욱 단단해졌지만 그럼에도 약체로 평가받는 북산이 인터하이에서 최강 산왕공고를 만나 혈전 끝에 기적적으로 승리하는 이 에피소드는 이노우에가 북산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모습들을 그려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에피소드들은 산왕공고와의 경기를 위한 초석 다지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캐릭터 각각의 개성은 더욱 강해졌고, 더욱 강해진 캐릭터들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마침내 경기에서 승리하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엄청난 전율을 선사했고 길고 긴 여운을 남겼다.

TV 애니메이션에서는 원작 만화 연재 기간의 문제로 인해 지역 예선까지만 제작됐고 인터하이는 생략됐다. 산왕공고와의 일전은 이후 극장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지 않았다. 팬들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산왕공고전에 대한 미련과 갈증을 느끼며 지내야 했다. 그러한 갈증을 제대로 해소해 주는 작품이 바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다. 오히려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지 않았던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최고의 에피소드를, 최고의 퀄리티로 만들어내며 제대로 화룡점정을 찍어준다.



‘레전드’의 위엄

슬램덩크는 90년대에 소년기를 보냈던 남자들의 가슴 한편에 늘 자리 잡고 있던 만화다. 북산의 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우정을 나눈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화 속 인물들은 단순한 만화 캐릭터가 아니라 멋지고 친한 형이자, 친구이자, 동생이었다.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니 그 반가움이 오죽하랴. 코로나 이후 다소 침체된 영화관에 20~40대 남성들이 설레는 마음을 안고 발길을 옮기고 있다. 그 발걸음은 간만에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마치 동창회를 나서는 부푼 발걸음이다. 

일본 현지 개봉일인 지난 12월 3일,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일본 박스오피스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경신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개봉 첫날에만 무려 46만 명이 관람했다. 하루 지나서는 84만 관객을 달성했고 16일 만에 281만 관객을 동원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현재까지(2023년 1월 13일 기준) 6주 연속 박스 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며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물의 길>조차 감히 정상 탈환을 꿈꾸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한 달 늦은 지난 1월 4일 개봉했다. 먼저 선빵친 <아바타: 물의 길>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고, 개봉관이 많지 않았으며, 평일 개봉이었는데 첫날 6만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 오피스 2위로 등장했다. 첫 주말에는 24만 명이 관람하며 개봉 1주일 만에 누적 관객 50만 명을 돌파했다. <영웅>, <스위치>,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 등 쟁쟁한 영화들과 경쟁 중임에도 엄청난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자막과 더빙,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 회차 관람도 많아 당분간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열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덕분에 원작에 대한 관심도 다시 급증하고 있다. 개봉을 맞아 출판된 특별판 ‘슬램덩크 챔프’는 새해 첫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이노우에의 새로운 일러스트로 전권 커버를 교체한 ‘슬램덩크 신장패편판’ 시리즈가 인기를 얻고 있다. 슬램덩크 시리즈가 온라인 대형서점 판매 순위 20위권 내에 안착했고, 판매량 또한 개봉 전보다 약 15배 증가했다. 

앞으로 슬램덩크의 후속작, 혹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후속작을 만나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한 시점에서 향수 이상의 생생한 감동과 열정을 선사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덕분에 슬램덩크는 계속해서 청춘의 바이블로서, 소년을 품고 살고 있는 남성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고 있을 것이다.



*크레이지자이언트 23년 2월호에 실린 기사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