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CULTURE]수능 시험의 역사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의 역사 

<대한민국 국민들의 첫 시련의 갈림길>

by  Francis

▲ 2차 수능 시험을 치르는 모습 (출처 : 경향신문)

평범한 인생에서 한국 사람은 태어나 죽기 전까지 네 번의 큰 갈림길을 만난다고 한다. 

두 번째 고난은 취업이다. 아르바이트도 많이 하겠지만, 본격적으로 부모님의 영향권에서 독립해 스스로 정기적인 수입을 얻게 되면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과 나아갈 방향 자체가 달라지니까. 

세 번째 고난은 결혼이다. 

네 번째는 출산. 아이가 있고 없고, 몇 명이고에 따라 생활이 큰 폭으로 바뀌지 않나. 

그런데, 왜 첫 번째를 빼먹고 이야기했냐고? 쪼는 맛이지. 바로 ‘수능’이다. 수능의 정식 명칭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이름 그대로, 대학에서 이 사람이 학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보는 어떤 자격시험이랄까? 먼저, ‘대학 안 간 사람은 그런거 없는거야?’ 신경이 쓰이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한 번 들어보자. 수능은 성별과 대학 진학 여부와 관계 없이, 대부분 그 시기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앞서 이야기한 결혼도 마찬가지. 결혼을 잘 하고 못 하고도 문제지만, 결혼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인생의 큰 방향을 좌지우지하니까. 수능 성적과 대학 진학 여부도 그렇지만, 수능을 치르지 않고 바로 직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 역시 수능으로 인한 영향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전에는 대학에 어떻게 진학했을까? 


한국 대학 입시의 시작

어떻게 보면 한국은 입시의 나라다.
1937~1956년생까지는 중학교까지 입시 체제를 겪었으며 그때도 무즙의 성분에 대한 오류로 문제가 생겨 학부모들에게 큰 문제를 일으켰으며 1968년 목판화에 대한 창칼 문제의 정답 문제로 한번 홍역을 치른 후 중학교 입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고등학교 입시는 여전히 남아있었으며 고등학교가 평준화된 뒤에도 지방에 비평준화 지역은 계속 고입 관련 재수생이 적게나마 꾸준히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고입 선발고사가 2018년 완전히 폐지되면서 고등학교 입시는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와 몇몇 특수목적 고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폐지되면서 한국에는 대학 입시만 남아있는 상태가 되었다. 

대학 입시는 1946년부터 1961년까지는 모든 대학의 대학별 고사로 진행되었다. 1954년도 한 해 대입 연합고사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대학별 고사와 병행되었고, 1958년부터 1961년까지는 무시험 내신 전형이 잠시 생기기는 했어도 그것은 정원의 10%만을 선출하는 형태였다. 

1962년과 1963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의가 또다시 국가 고사를 실시해 부정입학자와 무능력자의 입학을 막고자 했지만 비리는 근절되지 않았고, 대학 교수 및 각계 고위층의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1963년부터 대입 자격고사는 어떤 기본 커트라인 정도로만 사용되고 1964년부터 1968년까지는 또다시 대학별 고사 체제로 돌아오게 되었다.

▲ 1957년의 서울대 입시 발표 (출처 : 서울대 홈페이지)

예비고사의 시작

그러나 워낙 비리가 많았던지라 대학별 고사, 흔히 이야기하는 본고사 체제를 그만둘 수는 없었나보다. 1968년 말에는 급기야 ‘대학입학예비고사령’이라는 법이 공포되면서 1969년부터는 예체능을 제회한 모든 학생이 ‘예비고사’를 치러야 했다. 

예비고사는 선택형 필기고사로 거의 전과목에 걸쳐 출제되는 시험으로 통과하면 본고사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자격시험이었다. 그러나 1973학년도부터 예비고사 성적을 20% 이상, 체력검사 성적을 10% 이상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했으며 예체능 지원자까지도 예비고사 대상이 되면서 본고사보다 입시에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렇게 된데에서는 본고사보다 예비고사의 난이도가 훨씬 쉬웠기 때문이었다. 

예비고사가 도입되면서 명문대의 부정은 많이 수그러들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 지배층 비리는 근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예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명문대에 들어가던 행태는 어느 정도 막아냈다 할 수 있다. 5.17 내란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는 국민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7.30일 교육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그 조치는 본고사 폐지와 졸업 정원제. 예비고사 성적을 50% 이상, 고교 내신 성적을 20% 이상 반영하도록 하고, 예비고사 성적 공표 후 대학에 지원하는 선시험/후지원제와 전·후기 복수 지원제를 실시했다.

 이때 예비교사는 ‘대학입학 학력고사’로 바뀌게 되고 교수들의 자녀 특례입학 등 아직도 부정이 남아있게 되자 1986~1987년도에는 학력고사와 내신, 대입 논술고사를 함께 보는 체제를 실시하게 된다.  처음 실시한 논술고사는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86, 87학년도 서울대 논술고사 문제는 ‘현대인과 일의 보람’,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이었고 다른 학교들도 대동소이했다. 또한 채점의 객관성에도 의문이 제기되어 결국 2년만에 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 예비고사 50% 반영을 알리는 조선일보 기사

대입수학능력시험의 시작

이후 대입은 학력고사와 내신을 반영한 점수로만 실시하게 되고 선시험/후지원 제도가 심한 눈치작전을 유발한다 하여 선지원/후시험 제도로 바뀌고 1988년 대입시험 4개월 전에 주관식 문제 출제가 확정되면서 수험생들은 큰 혼란을 겪게 된다. 그때 나타난 것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대입수학능력시험은 학력고사가 단순한 암기 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 아래 기획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내신의 비율이 40% 이상으로 상승되면서 그 비율은 대학 자율에 맡기고 대학별 고사가 부활하면서 학교/학과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입시 과정이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원래 1994년에는 수학능력시험이 여름과 겨울에 나눠 연 2회를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두 시험의 난이도 조정이 문제였고 통계적으로 이를 보정하는 방법이 마땅치 않아 결국은 학력고사와 마찬가지로 연 1회로 다시 돌아오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수시 모집’의 폭이 늘어나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향력은 다소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말그대로 ‘공부’만으로 신분 상승을 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에 가깝다. 물론 ‘다양한 상황의 학생에게 문을 열어준다’는 취지의 수시입학 제도가 실시되면서 보다 다양한 상황의 학생들이 자신의 특성에 맞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수시는 정반대로 오히려 소위 ‘넉넉한 집’ 사람들에게 유리한 경향이 늘어났고, 아직 말그대로 맨땅의 헤딩으로 대학 입시에 도전할 수 있는 제도는 오직 대학수학능력시험 뿐이다. 


아직은 방법이 없다. 그냥 공부들 하자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핀란드의 학생 하나하나를 생각하는 ‘핀란드식 입시’와 프랑스의 ‘바깔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등 다양한 제도와 비교되며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비판받고 있는 실정.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게 어디 있겠나. 핀란드와 프랑스, 독일도 다들 각각이 안고 있는 문제가 있고 다른나라 역시 그 나라만의 장단점이 모두 존재는 법. 한국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제대로 바뀌려면, 결국 국민과 사회의 인식이 크게 바뀐 다음에야 가능할 일. 일단은 현재 있는 것을 조금씩 고쳐가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202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1월 17일에 열린다. 고3 학생들은 크레이지 자이언트를 볼 수 없겠지만, 크레이지 자이언트를 보고 짬짬히 자신을 위로하는 학생들이 있겠지? 우리가 잘 보라고 해서 잘보면 좋겠지만 세상은 늘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거 여러분도 잘 알잖아? 부디 여러분이 시간 투자하신 성과가 그대로 나면 조금 서운하니, 한 10% 정도만 잘 보시라. 시험 끝나고 작살나게들 노시라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사건 사고  


1994년부터 28년. 사람으로 치면 아이도 하나 생겼을 나이다. 
이렇게 긴 시간 유지되어 왔던 시험에 문제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잖아?
 대학수학능력시험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수능이라고 컨닝이 없겠나?

뭐 솔직히 조선시대 과거도 부정행위를 했다고 하니 수능이라고 없었겠나.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좀 규모가 크다. 2004년 9월, 중학교 동창 사이 친구들은 갑자기 부족한 성적을 어떻게 올릴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생각 끝에 이들은 지인들의 몸에 구형 휴대전화를 몸에 붙이고 고사장에 입실시켜 문제별로 정답만큼 두들기게 해 지인들의 답안을 전송받았다. 예를들어, 정답이 3번이면 휴대폰을 3번 두들기는 방식. 밖에서 대기하던 후배들은 이를 전송받아 가장 다수의 답안을 문자로 전송받아 부정행위를 했다고 한다. 

이들은 시험 전날인 2004년 11월 16일, 여관에서 1:1로 짝을 이루어 예행연습까지 했을 정도로 치밀하게 행동했다. 이 사건은 광주석산고등학교에서 시작해 옆학교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까지 적발되면서 일이 커지게 되었고, 교육부는 2004년 12월 6일, 부정행위 유형별로 문자 송수신 195명, 휴대폰 소지 25명, 대리시험 6명 모두 성적을 무효처리하게 되었으며 12월 13일 추가 무효 처리자를 포함 총 314명으로 늘게 되었다. 사실 이 사건이 발각되기 전 이미 인터넷 사이트에서 ‘핸드폰 부정행위’ 관련 소문이 확산되고 있었고 경찰은 수사를 하려 했으나 시 교육청의 반대로 내사 수준에서 끝나게 된 것이 알려졌다. 또한 제보 글 200건을 광주 광역시 교육청이 모두 삭제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안이한 대응이 큰 비판을 받았다. 


사물함 알람시계 테러 사건

호박에다 말뚝 박고, 의원 보면 침 도적질, 양반 보며는 관을 찢고, 수절과부는 모함잡고, 우는 애기 발가락 빨리고, 똥 누는 놈 주저 앉히고, 제주병(祭酒甁)에 오줌싸고, 곱사동이는 되집아 놓고, 봉사는 똥칠허고, 애 밴 부인은 배를 차고, 비단전에다 물총 놓고… 흥부전에서 흥부의 형 놀부가 심술을 부리는 내용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세상 쓸데 없이 심술 부리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그런게 없겠나.  어떤 학생은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망치고 싶었나보다. 2008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 전날인 2007년 11월 14일, 그 학생은 1시 10분에 알람을 맞춘 알람시계를 시험장으로 쓰이는 교실 사물함 안에 넣어놓았다. 

수능 당일 이 알람은 정확히 듣기평가 하는 시간에 울리기 시작했고, 알람이 울려댔다. 이 사물함은 튼튼한 자물쇠로 잠궈 놓은 탓에 이것을 여는 것이 쉽지 않았고 그 알람은 10분간 울리면서 그 교실 안의 수험생들이 절반 정도 듣기평가 시험을 망치는 일이 일어났다. 사실 그 학생은 이미 수험생 커뮤니티에 이 테러를 예고했고, 사이트 회원들은 해킹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해당 학생의 신상을 밝혀냈지만 이 학생이 함구하는 상황에서 알람 시계를 숨겨놓은 장소를 알아낼 수는 없었고, 결국 이날 시험을 망친 학생들은 이 학생을 고소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날에는 미리 모든 사물함을 비우고 테이프를 둘러 막아놓도록 하는 규정이 생겼다.  결국 2021년 12월 9일 서울행정법원은 수험생 소송인단이 제기한 정답 결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역사상 처음으로 특정 과목 성적 통지가 보류되는 일이 일어났다.  본안 소송의 1심 선고는 2021년 12월 17일에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입시 일정을 고려해 12월 15일로 앞당겨졌으며, 결국 법원은 전원 정답으로 원고 승소 판결을 냈다. 


문제가 문제가 있어요!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생명과학II 과목은 뜨거운 감자였다. 당시 시험이 끝난 후 생명과학II 20번 문제에 대한 오류 의견이 나왔고, 주최측은 해당 문제에 오류가 없다는 발표를 하게 된다. 이 문제는 결국 행정 소송 절차를 받게 되고 오답을 받은 수험생들은 소송인단을 꾸려 해외 석학들에게 메일을 보내 문제를 검증받게 된다. 이 질문에 대해 스탠포드 대학교 조나단 프리차드(Jonathan Pritchard) 석좌교수는 수험생 소송인단에게 해당 문제는 오류가 명백하고 문항도 모순이 있다는 의견서와 함께 자신의 트위터에 이 내용을 공유하게 된다.

주최측이 평가를 의뢰한 한국유전학회 역시 ‘지문의 Ⅰ과 Ⅱ집단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주어진 조건의 활용 여부에 따라 해답을 구하는 데 심각한 오류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었지만 기존 정답 유지 처리와 전원 정답 처리 중 하나를 제시하지 않고, 모순적으로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는 최종의견을 내었다.

▲ 문제에 대한 오류를 증명해준 스탠포드 대학교 조나단 프리차드 교수 (출처 : 스탠포드 대학교 홈페이지)


*크레이지 자이언트 11월호에 실린 기사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