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있어
최고의 발명품
CNN선정 세상에서 여덟 번째로 맛있는 음식
BY 야신

라멘의 절대강자 일본
라멘의 유래
일본에서 라면을 의미하는 라멘은 수타를 의미하는 중국어 발음 ‘라몐’에서 유래되었다. 한국에서 대중화된 중화요리라고 하면 보통 짜장면을 생각하는 것처럼 일본에서 중화요리를 뽑으라면 대다수가 라멘을 고른다. 다만 시대가 지나면서 젊은 세대들은 라멘을 중화요리가 아닌 일본요리로 여기기 시작했고 현재는 중식집보다 일식집에서 라멘을 찾기 더 쉬워졌다. 19세기 후반 요코하마에 개항장이 생기면서 중국인들이 수타를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본 각지에 퍼져나간 라멘, 후쿠오카 지역에서 일본인의 입맛에 맞춰 돼지육수를 이용해 만든 ‘돈코츠 라멘’이 생겨나고 본격적으로 일본의 대중음식이 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일본식으로 변해가는 라멘에 거부감이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2000년대 중후반에는 기름기가 적고 살코기를 사용하는 중화식 라멘이 다시 인기를 끌게 된다. 지금은 라멘이라는 음식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라멘의 위상
일본 현지에서는 라멘 전문점이 3만 여개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많고 요리사에 따라 맛과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한국이 짜장면을 다른 중화요리와 같이 파는 것과 달리 일본의 라멘 전문점들은 다른 중화요리는 팔지 않고 오로지 라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라멘과 라멘 장인들이 존재한다. 하카타 지역은 맛이 담백하고 기름진 돈코츠 라멘이 인기있으며 삿포로 지역은 맵고 짠맛이 특징인 미소라멘, 후쿠시마는 산뜻한 맛이 특징인 키타카타라멘이 인기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나 붕어빵을 먹듯이 일본은 포장마차에서 라멘을 간단히 먹는다. 특이한 점은 그릇을 한 손에 들고 먹는 일본의 식사법과 달리 라멘은 식탁에 라멘을 두고 그대로 먹으며 음식을 먹을 때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되는 한국과 서양의 식사예절과는 다르게 라멘을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으면 요리사에게 ‘맛이 없다’라고 모욕한다 여겨 일부러 소리를 내어 라멘을 먹는다고 한다.
라멘의 정의
라멘 자체의 범위가 워낙 넓다보니 면으로 만들고 가게 주인이 라멘이라고 주장하면 어떤 음식이든 라멘이라고 불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라멘에 쓰는 면은 가느다란 세면, 오동통통하고 굵은 우동면, 넓적한 면도 있다. 국물을 우려낼 때 쓰는 재료도 간장, 소금, 돼지고기, 닭고기 등으로 세기 힘들며 심지어 고기가 아예 들어가지 않은 채식 라멘까지 나왔다. 넓게 보면 진하고 찐득찐득한 소스에 면을 찍어먹는 츠케멘부터 국물없이 먹는 아부라소바까지 라멘으로 분류한다. 특히 일본의 라멘은 점도가 낮은 반죽을 사용하기 때문에 중국은 수타와는 달리 손으로 면을 뽑아내는 것이 어렵다. 때문에 특수한 기계를 사용해서 면을 뽑아내고 국물에 우려 맛을 내는데 이 면의 통통한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기의 비결
라멘이 유난히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라멘 특유의 진한 국물 때문이다. 라멘이 있기 전부터 일본은 가쓰오부시나 다시마로 우려낸 장국을 가정식으로 주로 먹는데 단일한 재료로 국물을 우려내기 때문에 맛이 심심하고 간이 약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에 반해 라멘은 고기, 조미료, 채소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푹 우려내기 때문에 간이 약한 장국을 주로 먹는 일본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간이 강한 음식이다. 게다가 다른 반찬 없이 그릇 하나를 두고 먹는다는 점에서 개인주의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이렇게 좋은 간편식이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돼지고기 누린내에 별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춰 만든 음식이다 보니 한국인들은 라멘을 꺼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일본인들이 잘 먹지 않는 마늘이 들어가 있지 않은 데다가 혀가 얼얼해질 정도의 짠맛 때문에 일본식 라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인스턴트 라면의 시작
대만 출신의 안도 모모후쿠, 일본의 대학에서 경제과를 졸업 후 면 가게를 차렸으나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망 후라서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속되는 재정난과 쌓여가는 빚 때문에 골머리를 썩던 안도, 그러다 우연히 아내가 덴푸라를 만드는 것을 보고 한가지 아이디어를 내게 된다. 채소를 튀기면 채소의 수분이 모두 날아간다. 만약 면을 튀긴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밀가루 면을 기름에 튀겨보았고 튀긴 면은 수분이 다 날아가 오래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 튀긴 면을 개별 포장한 뒤 ‘치킨라멘’이라는 상표명으로 팔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물에 넣고 끓여먹기만 하면 되는 쉽고 맛있는 음식에 환호했고 그렇게 시작된 ‘닛산식품’은 겨우 1년만에 큰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승승장구할 것만 같은 라면이었지만 얼마 못 가 여러 업체에서 치킨라멘의 복제품을 출시하면서 닛산식품의 인기가 주춤하게 된다. 안도는 이를 상쇄하기 위해 최초의 컵라면인 ‘컵누들’을 발명하고 이 또한 82억개가 팔리면서 성공하게 된다.
라면의 신흥강자 : 한국
한국 인스턴트 라면의 시초
1950년대 말, 보험회사를 운영하던 기업가 전중윤 회장, 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국민들에게 간단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다가 일본에서 경영연수를 했을 때 먹었던 인스턴트 라면이 떠올린다. 앞서 말한 안도 모모후쿠와 그의 자회사 닛산식품을 찾아가 인스턴트 라면 제작을 전수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안도 모모후쿠는 자신의 발명품인 치킨라멘이 복제품으로 인기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우려해 전중윤의 부탁을 끝내 거절한다. 결국 정중윤은 닛산식품의 라이벌 회사인 묘죠식품과 사장인 오쿠이 기요스미가 한국의 전쟁과 경제난을 안쓰럽게 여겨 전중윤에게 면 요리 제작법을 알려준다. 다만 임원들의 반대로 스프 제작법은 알려주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전중윤에게 오쿠이 기요스미가 접근해 스프 제작법이 적힌 수첩을 몰래 손에 쥐어준다. 이 일화가 바로 한국 인스턴트 라면의 시초, 삼양식품의 시작이다.
라면, 한국에 퍼져나가다.
어렵사리 인스턴트 라면을 생산한 삼양식품이었지만 일본의 치킨라멘을 그대로 베껴 만든 식품이었다. 때문에 한국인들은 닭고기 육수 특유의 느끼한 맛을 꺼려했고 그리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삼양식품은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회사에 스프 연구실을 설치하는가 하면 종로에 시식행사를 벌이기도 하고 심지어 박정희에게 라면을 대접하기까지 했다. 라면을 먹은 박정희는 한국인 입맛에 맞추려면 고추가루를 더 넣어야할거라는 말을 남긴다. 이후 박정희가 주도한 포만감 위주의 식사를 하는 ‘혼분식 운동’과 맞아떨어져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아간다. 다만 밀가루가 부족하고 공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1960년대, 라면은 10원으로 당시 짜장면이 20원, 백반 정식이 30원이었던 시절 현재 가치로 2000원 정도였다. 그렇게 까지 비싼 음식은 아니었지만 원체 경기가 좋지 않았던 터라 라면은 집에 손님이 왔을 때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라면 전쟁
그 후 라면은 고급 음식으로 여겨지고 어쩌다 먹는 특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후 라면의 역사를 강타한 농심 최대의 베스트셀러가 탄생하는데 그것이 바로 ‘신라면’이다. 당시에는 매운 라면이 없었던 시절이라. 라면의 매운맛이라고 하면 조금 넣은 고추가루가 전부였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개최와 함께 한국 음식의 특징인 ‘매운맛’을 내세워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고 전국 각지는 물론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과거 승승장구할 거 같은 삼양이었지만 동물성 기름 제조에 비리가 밝혀진 ‘우지 파동’에 타격을 입은 삼양은 농심에게 자리를 뺏기게 되고 현재는 농심마저 식품계를 꿰뚫은 최고의 기업 ‘오뚜기’의 등장으로 신라면의 1위 자리를 뺏기게 된다. 오뚜기의 ‘진라면’은 다른 라면에 비해 상당히 많은 양과 기본적이면서도 농후하고 진한 맛으로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한국에서 라면의 위상
가장 라면을 많이 소비한 국가라고 하면 인구수가 많은 중국과 인도네시아지만 한국은 1인 기준으로 라면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다. 평균적으로 한 명이 1년에 70 정도의 라면을 먹는다. 1980년대 한국의 공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라면은 흔하고 저렴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코카콜라 한 캔을 구매하려면 1400원 정도를 지불해야하지만 한끼를 때울 수 있는 라면은 기껏해야 1100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는 대표적인 비상식량으로 여겨지는데 물과 냄비가 필요하다는 점과 나트륨이 많다는 점 때문에 비상식량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도 있다.
해외에서 라면의 위상
한류가 큰 인기몰이를 하면서 한국의 라면도 덩달아 인기가 상승 중이다. 특히 대만과 동남아 등지에서는 한국에 가거나 한국 제품 판매점에서 꼭 사야하는 물건으로 손꼽히는데 라면이 보편화 되지 않은 동남아 등지에서는 라면은 주식이라기 보다는 반찬이라는 개념이 강했다. 그런데 한국의 라면을 접하면서 특유의 매운맛과 주식으로 먹을 수 있는 든든함이 인기몰이를 한다. 동남아인들은 한국라면을 사먹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한국 음식은 맵다라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극악의 매운 맛을 자랑하는 ‘불닭볶음면’은 매운맛에 도전하는 해외 유튜버들에게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라면을 정착화한 중국
수타란?
앞서 말한 것처럼 라면의 어원은 수타를 의미하는 라몐에서 유래되었다. 수타의 한자를 풀이해보면 손으로 친다가 되는데 큰 반죽을 쳐서 길게 편 다음 그것을 접고 다시 치고 그것을 계속 반복해서 면을 만든다. 수타를 치면 글루텐이 생성되는데 이 때문에 기계로 뽑아낸 면에 비해 훨씬 쫄깃하다. 다만 이것은 엄청난 수준의 장인이었을 때 얘기고 대부분의 수타면은 기계로 뽑아내는 것이 쫄깃하다. 사람 손으로 수준급의 쫄깃함을 만드려면 손으로 이리저리 쳐대고 발로 밟고 별의별 기술을 동원해야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수타는 식당에서 대접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양의 음식을 뽑아내려면 기계를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 기계가 보편화된 현재, 직접 손으로 수타를 해주는 식당은 그리 많지 않다. 수타는 국물에 넣어먹거나 소스에 비벼먹는데 국물에 넣어먹으면 탕면, 소스에 비벼먹으면 반면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면요리
기후 상 밀 재배가 쉽지 않았던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는 달리 땅덩어리가 넓은 중국에는 밀을 재배하기 쉬운 지역이 분명 있었다. 때문에 한중일 중에서 가장 면요리가 발달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가장 면요리를 먼저 받아들였다고 여겨지는 송나라에서부터 고려와 일본 단지로 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은 넓은 땅만큼 여러 재료들로 면이 발달했는데 무를 갈아서 맛을 내거나 콩을 우려내고 참깨를 찧어서 조미료를 만들기도 한다. 다만 산업혁명 당시 무리하게 도시화를 추진하던 중국에서는 비위생적인 식당이 즐비했고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중국은 음식을 뜨겁게 해서 먹어야한다는 인식이 있다. 참고로 중국은 콜라도 따뜻하게 해서 마신다…
라몐
중국에서 라몐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란저우 일대에서 즐겨먹는 란저우 라몐이다. 란저우 라몐은 중국의 면요리와 역사를 같이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란저우 라몐은 우육, 즉 젖소고기로 만들었고 겉모습은 우리가 먼저 생각해내는 일반적인 라면과는 사뭇다르다. 뜨거운 국물에 담겨있다는 것은 맞는데 그 위에 고수나 소고기 등이 둥둥 떠있다. 고기와 무로 육수를 내기 때문에 한국인의 입맛에는 약간 싱거울 수 있다. 다만 고추기름을 넣어먹으면 다소 매울 수 있다. 그것만 먹는 것이 아니라 썬 채소 등을 곁들여먹는다. 란저우 라몐을 파는 직원들은 대부분 후이족, 이슬람의 후계자들인데 그들이 우육을 주된 재료로 쓰는 건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슬람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어 보인다. 싱겁긴 하지만 중국 향신료가 가득 들어있기 때문에 맵고 칼칼한 맛은 분명 있다.
짝퉁의 나라 중국
2022년 1월 조사결과 한국의 라면 수출액은 6억 790만 달러에 이르렀다. 작년에 비해 10%가 늘었다. 한국산 라면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역시 짝퉁의 나라 중국은 한국산 라면들을 베끼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짝퉁 라면은 해외 유튜버들에게 큰 인기를 끈 ‘불닭볶음면’. 불닭볶음면의 디자인, 캐릭터 심지어 한글까지 똑같이 베껴 가짜 불닭볶음면을 만들어 팔고 있다. 기자들이 직접 사먹어봤는데 맵기만 하고 감칠맛도 없고 영 별로라고 한다. 저렴한 짝퉁 라면들이 유통되면서 수출로 재미를 보았던 한국 식품업계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짝퉁업체들이 짝퉁 신라면을 러시아로 수출하려다가 중국 공안에 검거되는 사건도 있었다. 짝퉁라면은 맛과 포장이 다르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이런 짝퉁라면으로 인해 한국 라면 업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
중국의 라면
중국의 인스턴트 라면의 특징은 끓이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것이다. 끓여먹을 수도 있는데 굳이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다도가 발달한 중국에서는 뜨거운 물을 옆에 두고 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식으로 만들 수 있는 라면의 질이 좋지 않다. 때문에 한국 라면이 처음 수입되었을 때 뜨거운 물을 부었는데도 라면이 불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중화권에서 가장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라면 업체는 대만계 업체인 딩신 홀딩스다. 캉스푸라는 라면 제품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하던 딩신 홀딩스는 우육면을 파는 프랜차이즈 음식점까지 세우면서 승승장구하지만 대만을 싫어하는 중국은 이를 가만히 놔둘리 없었고 짝퉁 제품을 연달아 출시하면서 어떻게든 딩신 홀딩스를 꺾으려고 노력중이다. 딩신 홀딩슨는 라면을 만드는 회사이지만 중화권에서는 50위 안에 드는 거대 기업이라고 한다.

*크레이지 자이언트 2022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인류에게 있어
최고의 발명품
CNN선정 세상에서 여덟 번째로 맛있는 음식
BY 야신
라멘의 유래
일본에서 라면을 의미하는 라멘은 수타를 의미하는 중국어 발음 ‘라몐’에서 유래되었다. 한국에서 대중화된 중화요리라고 하면 보통 짜장면을 생각하는 것처럼 일본에서 중화요리를 뽑으라면 대다수가 라멘을 고른다. 다만 시대가 지나면서 젊은 세대들은 라멘을 중화요리가 아닌 일본요리로 여기기 시작했고 현재는 중식집보다 일식집에서 라멘을 찾기 더 쉬워졌다. 19세기 후반 요코하마에 개항장이 생기면서 중국인들이 수타를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본 각지에 퍼져나간 라멘, 후쿠오카 지역에서 일본인의 입맛에 맞춰 돼지육수를 이용해 만든 ‘돈코츠 라멘’이 생겨나고 본격적으로 일본의 대중음식이 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일본식으로 변해가는 라멘에 거부감이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2000년대 중후반에는 기름기가 적고 살코기를 사용하는 중화식 라멘이 다시 인기를 끌게 된다. 지금은 라멘이라는 음식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라멘의 위상
일본 현지에서는 라멘 전문점이 3만 여개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많고 요리사에 따라 맛과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한국이 짜장면을 다른 중화요리와 같이 파는 것과 달리 일본의 라멘 전문점들은 다른 중화요리는 팔지 않고 오로지 라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라멘과 라멘 장인들이 존재한다. 하카타 지역은 맛이 담백하고 기름진 돈코츠 라멘이 인기있으며 삿포로 지역은 맵고 짠맛이 특징인 미소라멘, 후쿠시마는 산뜻한 맛이 특징인 키타카타라멘이 인기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나 붕어빵을 먹듯이 일본은 포장마차에서 라멘을 간단히 먹는다. 특이한 점은 그릇을 한 손에 들고 먹는 일본의 식사법과 달리 라멘은 식탁에 라멘을 두고 그대로 먹으며 음식을 먹을 때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되는 한국과 서양의 식사예절과는 다르게 라멘을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으면 요리사에게 ‘맛이 없다’라고 모욕한다 여겨 일부러 소리를 내어 라멘을 먹는다고 한다.
라멘의 정의
라멘 자체의 범위가 워낙 넓다보니 면으로 만들고 가게 주인이 라멘이라고 주장하면 어떤 음식이든 라멘이라고 불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라멘에 쓰는 면은 가느다란 세면, 오동통통하고 굵은 우동면, 넓적한 면도 있다. 국물을 우려낼 때 쓰는 재료도 간장, 소금, 돼지고기, 닭고기 등으로 세기 힘들며 심지어 고기가 아예 들어가지 않은 채식 라멘까지 나왔다. 넓게 보면 진하고 찐득찐득한 소스에 면을 찍어먹는 츠케멘부터 국물없이 먹는 아부라소바까지 라멘으로 분류한다. 특히 일본의 라멘은 점도가 낮은 반죽을 사용하기 때문에 중국은 수타와는 달리 손으로 면을 뽑아내는 것이 어렵다. 때문에 특수한 기계를 사용해서 면을 뽑아내고 국물에 우려 맛을 내는데 이 면의 통통한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기의 비결
라멘이 유난히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라멘 특유의 진한 국물 때문이다. 라멘이 있기 전부터 일본은 가쓰오부시나 다시마로 우려낸 장국을 가정식으로 주로 먹는데 단일한 재료로 국물을 우려내기 때문에 맛이 심심하고 간이 약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에 반해 라멘은 고기, 조미료, 채소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푹 우려내기 때문에 간이 약한 장국을 주로 먹는 일본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간이 강한 음식이다. 게다가 다른 반찬 없이 그릇 하나를 두고 먹는다는 점에서 개인주의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이렇게 좋은 간편식이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돼지고기 누린내에 별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춰 만든 음식이다 보니 한국인들은 라멘을 꺼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일본인들이 잘 먹지 않는 마늘이 들어가 있지 않은 데다가 혀가 얼얼해질 정도의 짠맛 때문에 일본식 라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인스턴트 라면의 시작
대만 출신의 안도 모모후쿠, 일본의 대학에서 경제과를 졸업 후 면 가게를 차렸으나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망 후라서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속되는 재정난과 쌓여가는 빚 때문에 골머리를 썩던 안도, 그러다 우연히 아내가 덴푸라를 만드는 것을 보고 한가지 아이디어를 내게 된다. 채소를 튀기면 채소의 수분이 모두 날아간다. 만약 면을 튀긴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밀가루 면을 기름에 튀겨보았고 튀긴 면은 수분이 다 날아가 오래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 튀긴 면을 개별 포장한 뒤 ‘치킨라멘’이라는 상표명으로 팔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물에 넣고 끓여먹기만 하면 되는 쉽고 맛있는 음식에 환호했고 그렇게 시작된 ‘닛산식품’은 겨우 1년만에 큰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승승장구할 것만 같은 라면이었지만 얼마 못 가 여러 업체에서 치킨라멘의 복제품을 출시하면서 닛산식품의 인기가 주춤하게 된다. 안도는 이를 상쇄하기 위해 최초의 컵라면인 ‘컵누들’을 발명하고 이 또한 82억개가 팔리면서 성공하게 된다.
한국 인스턴트 라면의 시초
1950년대 말, 보험회사를 운영하던 기업가 전중윤 회장, 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국민들에게 간단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다가 일본에서 경영연수를 했을 때 먹었던 인스턴트 라면이 떠올린다. 앞서 말한 안도 모모후쿠와 그의 자회사 닛산식품을 찾아가 인스턴트 라면 제작을 전수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안도 모모후쿠는 자신의 발명품인 치킨라멘이 복제품으로 인기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우려해 전중윤의 부탁을 끝내 거절한다. 결국 정중윤은 닛산식품의 라이벌 회사인 묘죠식품과 사장인 오쿠이 기요스미가 한국의 전쟁과 경제난을 안쓰럽게 여겨 전중윤에게 면 요리 제작법을 알려준다. 다만 임원들의 반대로 스프 제작법은 알려주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전중윤에게 오쿠이 기요스미가 접근해 스프 제작법이 적힌 수첩을 몰래 손에 쥐어준다. 이 일화가 바로 한국 인스턴트 라면의 시초, 삼양식품의 시작이다.
라면, 한국에 퍼져나가다.
어렵사리 인스턴트 라면을 생산한 삼양식품이었지만 일본의 치킨라멘을 그대로 베껴 만든 식품이었다. 때문에 한국인들은 닭고기 육수 특유의 느끼한 맛을 꺼려했고 그리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삼양식품은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회사에 스프 연구실을 설치하는가 하면 종로에 시식행사를 벌이기도 하고 심지어 박정희에게 라면을 대접하기까지 했다. 라면을 먹은 박정희는 한국인 입맛에 맞추려면 고추가루를 더 넣어야할거라는 말을 남긴다. 이후 박정희가 주도한 포만감 위주의 식사를 하는 ‘혼분식 운동’과 맞아떨어져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아간다. 다만 밀가루가 부족하고 공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1960년대, 라면은 10원으로 당시 짜장면이 20원, 백반 정식이 30원이었던 시절 현재 가치로 2000원 정도였다. 그렇게 까지 비싼 음식은 아니었지만 원체 경기가 좋지 않았던 터라 라면은 집에 손님이 왔을 때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라면 전쟁
그 후 라면은 고급 음식으로 여겨지고 어쩌다 먹는 특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후 라면의 역사를 강타한 농심 최대의 베스트셀러가 탄생하는데 그것이 바로 ‘신라면’이다. 당시에는 매운 라면이 없었던 시절이라. 라면의 매운맛이라고 하면 조금 넣은 고추가루가 전부였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개최와 함께 한국 음식의 특징인 ‘매운맛’을 내세워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고 전국 각지는 물론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과거 승승장구할 거 같은 삼양이었지만 동물성 기름 제조에 비리가 밝혀진 ‘우지 파동’에 타격을 입은 삼양은 농심에게 자리를 뺏기게 되고 현재는 농심마저 식품계를 꿰뚫은 최고의 기업 ‘오뚜기’의 등장으로 신라면의 1위 자리를 뺏기게 된다. 오뚜기의 ‘진라면’은 다른 라면에 비해 상당히 많은 양과 기본적이면서도 농후하고 진한 맛으로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한국에서 라면의 위상
가장 라면을 많이 소비한 국가라고 하면 인구수가 많은 중국과 인도네시아지만 한국은 1인 기준으로 라면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다. 평균적으로 한 명이 1년에 70 정도의 라면을 먹는다. 1980년대 한국의 공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라면은 흔하고 저렴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코카콜라 한 캔을 구매하려면 1400원 정도를 지불해야하지만 한끼를 때울 수 있는 라면은 기껏해야 1100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는 대표적인 비상식량으로 여겨지는데 물과 냄비가 필요하다는 점과 나트륨이 많다는 점 때문에 비상식량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도 있다.
해외에서 라면의 위상
한류가 큰 인기몰이를 하면서 한국의 라면도 덩달아 인기가 상승 중이다. 특히 대만과 동남아 등지에서는 한국에 가거나 한국 제품 판매점에서 꼭 사야하는 물건으로 손꼽히는데 라면이 보편화 되지 않은 동남아 등지에서는 라면은 주식이라기 보다는 반찬이라는 개념이 강했다. 그런데 한국의 라면을 접하면서 특유의 매운맛과 주식으로 먹을 수 있는 든든함이 인기몰이를 한다. 동남아인들은 한국라면을 사먹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한국 음식은 맵다라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극악의 매운 맛을 자랑하는 ‘불닭볶음면’은 매운맛에 도전하는 해외 유튜버들에게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수타란?
앞서 말한 것처럼 라면의 어원은 수타를 의미하는 라몐에서 유래되었다. 수타의 한자를 풀이해보면 손으로 친다가 되는데 큰 반죽을 쳐서 길게 편 다음 그것을 접고 다시 치고 그것을 계속 반복해서 면을 만든다. 수타를 치면 글루텐이 생성되는데 이 때문에 기계로 뽑아낸 면에 비해 훨씬 쫄깃하다. 다만 이것은 엄청난 수준의 장인이었을 때 얘기고 대부분의 수타면은 기계로 뽑아내는 것이 쫄깃하다. 사람 손으로 수준급의 쫄깃함을 만드려면 손으로 이리저리 쳐대고 발로 밟고 별의별 기술을 동원해야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수타는 식당에서 대접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양의 음식을 뽑아내려면 기계를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 기계가 보편화된 현재, 직접 손으로 수타를 해주는 식당은 그리 많지 않다. 수타는 국물에 넣어먹거나 소스에 비벼먹는데 국물에 넣어먹으면 탕면, 소스에 비벼먹으면 반면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면요리
기후 상 밀 재배가 쉽지 않았던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는 달리 땅덩어리가 넓은 중국에는 밀을 재배하기 쉬운 지역이 분명 있었다. 때문에 한중일 중에서 가장 면요리가 발달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가장 면요리를 먼저 받아들였다고 여겨지는 송나라에서부터 고려와 일본 단지로 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은 넓은 땅만큼 여러 재료들로 면이 발달했는데 무를 갈아서 맛을 내거나 콩을 우려내고 참깨를 찧어서 조미료를 만들기도 한다. 다만 산업혁명 당시 무리하게 도시화를 추진하던 중국에서는 비위생적인 식당이 즐비했고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중국은 음식을 뜨겁게 해서 먹어야한다는 인식이 있다. 참고로 중국은 콜라도 따뜻하게 해서 마신다…
라몐
중국에서 라몐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란저우 일대에서 즐겨먹는 란저우 라몐이다. 란저우 라몐은 중국의 면요리와 역사를 같이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란저우 라몐은 우육, 즉 젖소고기로 만들었고 겉모습은 우리가 먼저 생각해내는 일반적인 라면과는 사뭇다르다. 뜨거운 국물에 담겨있다는 것은 맞는데 그 위에 고수나 소고기 등이 둥둥 떠있다. 고기와 무로 육수를 내기 때문에 한국인의 입맛에는 약간 싱거울 수 있다. 다만 고추기름을 넣어먹으면 다소 매울 수 있다. 그것만 먹는 것이 아니라 썬 채소 등을 곁들여먹는다. 란저우 라몐을 파는 직원들은 대부분 후이족, 이슬람의 후계자들인데 그들이 우육을 주된 재료로 쓰는 건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슬람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어 보인다. 싱겁긴 하지만 중국 향신료가 가득 들어있기 때문에 맵고 칼칼한 맛은 분명 있다.
짝퉁의 나라 중국
2022년 1월 조사결과 한국의 라면 수출액은 6억 790만 달러에 이르렀다. 작년에 비해 10%가 늘었다. 한국산 라면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역시 짝퉁의 나라 중국은 한국산 라면들을 베끼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짝퉁 라면은 해외 유튜버들에게 큰 인기를 끈 ‘불닭볶음면’. 불닭볶음면의 디자인, 캐릭터 심지어 한글까지 똑같이 베껴 가짜 불닭볶음면을 만들어 팔고 있다. 기자들이 직접 사먹어봤는데 맵기만 하고 감칠맛도 없고 영 별로라고 한다. 저렴한 짝퉁 라면들이 유통되면서 수출로 재미를 보았던 한국 식품업계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짝퉁업체들이 짝퉁 신라면을 러시아로 수출하려다가 중국 공안에 검거되는 사건도 있었다. 짝퉁라면은 맛과 포장이 다르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이런 짝퉁라면으로 인해 한국 라면 업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
중국의 라면
중국의 인스턴트 라면의 특징은 끓이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것이다. 끓여먹을 수도 있는데 굳이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다도가 발달한 중국에서는 뜨거운 물을 옆에 두고 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식으로 만들 수 있는 라면의 질이 좋지 않다. 때문에 한국 라면이 처음 수입되었을 때 뜨거운 물을 부었는데도 라면이 불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중화권에서 가장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라면 업체는 대만계 업체인 딩신 홀딩스다. 캉스푸라는 라면 제품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하던 딩신 홀딩스는 우육면을 파는 프랜차이즈 음식점까지 세우면서 승승장구하지만 대만을 싫어하는 중국은 이를 가만히 놔둘리 없었고 짝퉁 제품을 연달아 출시하면서 어떻게든 딩신 홀딩스를 꺾으려고 노력중이다. 딩신 홀딩슨는 라면을 만드는 회사이지만 중화권에서는 50위 안에 드는 거대 기업이라고 한다.
*크레이지 자이언트 2022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