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AZY GIANT · CINEMA FILE
좀비에게 와이파이를 물린 남자,
연상호는 '영화계 보부상'을 선언했다
500만 스코어를 돌파하며 극장가를 점령 중인 <군체>. 짐승처럼 기던 감염자들이 어느 순간 일제히 하늘을 향해 고개를 꺾는다 — 이 기괴한 '접속'의 이미지는 어디서 왔을까. 연출자 본인의 입을 통해 그 설계도를 열어봤다.
EDIT CRAZY GIANT STILLS © 쇼박스
| BOX OFFICE500만+ | 2026 랭킹흥행 2위 |
| 제작비약 200억 | 월드 프리미어칸 79회 |
시작은 좀비가 아니었다. 넷플릭스 <지옥>(2021)부터 극영화 <계시록>(2025)까지 호흡을 맞춰온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 두 사람이 다음 프로젝트를 놓고 대화를 굴리던 자리에서 튀어나온 키워드는 AI, 그리고 집단지성이었다. 다수의 흐름에 깔려 소수의 목소리가 지워지고, 결국 개인이 무기력해지는 구조 — <군체>의 설계도 맨 첫 장에 적힌 문제의식은 바로 이것이었다.
완성된 영화의 무대는 서울 한복판의 초고층 빌딩.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염 사태 속에서 버티는 생존자들의 사투가 골격이다. 네 발로 기어다니던 감염체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점점 위협적인 존재로 진화한다는 설정은, <부산행>(2016)과 <반도>(2020)를 거친 연상호식 좀비 문법의 새 버전으로 읽힌다. 하지만 지난 6일 마포구 사무실에서 마주한 감독의 회고는 순서가 달랐다. 사이비 교주를 그린 <지옥>을 끝내고 마음에 남아 있던 숙제를 붙들고 있다 보니 이 이야기가 나왔고, '이거 좀비물로도 굴러가겠다'는 판단은 그다음이었다는 것.
관객은 그 의도를 정확히 낚아챈 모양새다. 5월 21일 개봉한 <군체>는 6월 13일 기준 500만 관객을 넘기며 롱런 중이고, 올해 흥행 순위에서 <왕과 사는 남자> 바로 다음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개봉 전인 5월 16일(현지시각) 제79회 칸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베일을 벗었을 당시, 극장을 나선 현지 관객들이 극 중 좀비의 시그니처 동작을 흉내 내며 놀았다는 후문도 있다. 감독은 이 풍경을 두고, <부산행>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자신이 만드는 좀비 자체가 해외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는 소회를 내놨다.
SIGNAL 01 · 記者의 장면
고개를 꺾고, 접속한다 — 좀비에게 이식된 AI

영화 <군체> 촬영 현장. © 쇼박스
<지옥>을 끝낸 직후 감독의 머릿속을 점령한 건 '집단성'이라는 개념이었다. 그것이 왜 이렇게 불편한가, 우리를 실제로 위협하는 정체는 무엇인가. <군체>는 그 찜찜함을 장르의 문법으로 번역해 관객이 몸으로 느끼게 만든 결과물이라는 게 그의 정리다.
초반부에 그 테마가 응축된 장면이 등장한다. 집단지성을 매개하는 물질 기술을 강탈당한 서영철(구교환)이 분노 끝에 해당 바이오 기업이 입주한 빌딩에 생화학 테러를 일으키는 순간. 사람들이 하나둘 감염체로 돌변하는 아수라장 속에서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과 생존자들은 건물 내 쇼핑몰 구역 매장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격한다 — 자신들을 물어뜯으려던 좀비 떼가 돌연 움직임을 멈추고, 일제히 고개를 하늘로 쳐든 채 온몸을 진동시키는 광경을. 사냥 과정에서 긁어모은 정보를 무리 전체에 동기화하는, 일종의 '업데이트' 타임이다.
레퍼런스는 1978년작이었다. 필립 카우프먼의 <우주의 침입자> 마지막 장면 — 외계 존재들이 인간을 발견하면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지목하는 그 동작. 거기에도 의식을 공유하는 무리라는 설정이 깔려 있었다.
연상호 감독의 설명을 재구성
물론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는 노릇. 스태프 회의에서 감독이 툭 던진 아이디어가 '고개를 확 쳐드는 좀비'였다. 와이파이에 붙어 데이터를 내려받는 감각 — 그 직관 하나로 동작의 방향이 잡혔고, 디테일은 안무팀이 배우들과 부딪히며 완성해 갔다. 감독은 자신보다 그쪽이 전문가라며 일일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연출자가 스태프와 배우의 영역을 지나치게 파고들면 서로 지치기만 하고 답은 오히려 멀어진다는 게 그의 오랜 경험칙이다.
칸의 관객들이 그 동작을 따라 하며 즐긴 현상에 대해서도 그는 명쾌했다. 코미디언의 대사가 유행어로 번지듯, 관객이 몸짓을 복제한다는 건 이 영화의 핵심을 제대로 씹어 삼켰다는 증거라는 해석이다.
SIGNAL 02 · AI論
"AI가 무섭다? 그건 인간이 무섭다는 말이다"
좀비에게 AI적 특성을 심어 공포를 뽑아낸 감독. 정작 본인은 AI가 두렵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AI를 무서워한다는 건 결국 인간이라는 종의 특질을 무서워한다는 뜻이라, 기술 그 자체를 공포의 대상으로 보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AI는 보편적 사고의 총합 위에서 굴러가는데, 사실 예술 — 특히 영화 같은 대중예술 — 에도 그 보편의 토대가 필요하다는 것. 마르셀 뒤샹이 기성품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새로운 개념을 얹었을 때 예술사가 뒤집혔고, 그 지반 위에서 앤디 워홀 같은 후발 주자들이 태어났다. 같은 원리가 영화 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개인의 독창성을 스크린에 구현하려면 결국 돈이 드는데, AI 기술의 진화가 그 비용 구조 자체를 흔들어 놓으리라는 전망.
특히 아시아 영화인에게는 거대한 기회의 창이 열린다고 봤다. 과거 아시아 감독이 할리우드행을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 자국 시장의 예산으로는 불가능한 상상을 그곳에선 찍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장벽 자체가 허물어지는 국면이라는 것. 현재 할리우드가 AI 사용을 극도로 엄격하게 통제하고 일부는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것 역시, 수십 년 쌓아 올린 기득권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직감의 발로라고 그는 진단했다.
SIGNAL 03 · 監督의 장면
앤트밀 — 죽음의 소용돌이에 담은 맹목의 초상


영화 <군체> 촬영 현장. © 쇼박스
감독이 직접 회심의 장면으로 지목한 건 후반부의 '앤트밀(Antmill)' 시퀀스다. 개미 무리가 서로를 따라 원을 그리다 집단 폐사에 이르는 실제 자연현상에서 따온 이름. 화장실 픽토그램 하나로 남녀 공간을 구분하듯, 영화 전체의 주제가 단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되는 순간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이 장면이었다는 설명이다.
맥락은 이렇다. 서영철의 계략으로 빌딩에 봉인돼 있던 좀비들이 기어이 바깥으로 쏟아지고, 인근 시민들이 무더기로 감염되며 도심은 지옥도가 된다. 이들이 체액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간파한 권세정은 그 체액을 전신에 바르고 군체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목표는 최초 감염원, 즉 알파 좀비의 제거. 그런데 오염된 정보가 무리에 퍼지자 좀비들은 혼란에 빠져 세정을 공격하는 대신 그를 축으로 거대한 원을 그리며 무한 회전하다가, 어느 순간 일제히 무너져 내린다. 서영철이 무리 전체를 리셋(reset)하기 위해 택한 방식이며, 이 공백이 세정에게 사태를 끝낼 단 한 번의 기회를 열어준다.
흥미로운 건 이 장면이 초기 기획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촬영 직전 투자배급사 쇼박스에서 건너온 제안이었다. <부산행>의 명장면 — 기차에 좀비들이 매달려 끌려가는 그림 역시 촬영 도중 우연히 태어난 것이었다고.
제작 비하인드
감독은 이 우연의 산물에서 AI와의 결정적 차이를 읽어냈다. AI가 이미 존재하는 정보들을 뒤섞은 평균값 위에서 작동한다면, 이 장면은 오히려 바깥에서 날아든 소수의견이 작품을 바꾼 사례라는 것. 집단화된 존재들이 드러내는 맹목의 위험, 그리고 그 시스템의 오류 — 그가 이 소용돌이 하나에 눌러 담고 싶었던 메시지다.
현장은 만만치 않았다. 콘셉트 자체는 현대무용 군무에서 신호와 함께 무용수들이 일제히 쓰러지는 설정을 빌려왔지만, 좀비 분장을 한 채 전력 질주하다 넘어지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위험이었다. 원형 주로의 속도는 빨랐고 시야는 좁았다. 안무팀은 물론, 국내에서 소집 가능한 스턴트 배우를 사실상 총동원했다 — 약 40명 규모. 실촬영은 이들이 쓰러지는 순간만 담았고 나머지 물량은 CG가 받쳤다.
PRODUCTION FACT — 실제로 찍었다
— 권세정이 차량으로 좀비들을 들이받는 장면은 대부분 실촬영. <반도>에서 CG로 처리했던 카체이싱과의 결정적 차별점.
— 전지현이 운전석에, 실제 조종은 옆자리 스턴트 배우가 — 우측에도 핸들을 단 특수 제작 차량을 투입했다. <계시록>에서 처음 시도한 방식으로, 우측 핸들은 후반 CG로 지운다.
— CG 단독 처리와 실연기 결합의 현실감 차이는 압도적이었지만 사고 위험도 컸다. 촬영 직전 반나절을 통째로 배우들 간 합 맞추기에 쏟았다.
감독은 이 시퀀스의 지분을 두 사람에게 돌렸다. <부산행>과 드라마 <킹덤>의 좀비 무브먼트를 설계한 전영 안무감독, 그리고 국내에서 사실상 유일한 여성 무술감독인 유미진 감독. 고성이 오가기 일쑤인 액션 현장을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장악하는 인물로, 고난도 촬영의 연속이었던 <군체> 현장에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는 기록이 그 증거다.
SIGNAL 04 · 生存論
200억과 2억 사이 — 보부상의 생존 전략

영화 <군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 쇼박스
총제작비 200억 원대의 <군체>는 해외 선판매와 국내 스코어를 합쳐 이미 손익분기점을 통과했다. 거의 해마다 신작을 내놓는 그를 두고 다작 감독이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데, 그 페이스가 가능한 데에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블록버스터와 넷플릭스 시리즈를 굴리는 와중에도 그는 저예산 영화와 독립 애니메이션을 병행 기획·제작해 왔다. 지난해 개봉한 <얼굴>은 단 2억 원으로 완성한 장편이고, 개봉을 앞둔 <실낙원>은 5억 미만의 초저예산 프로젝트다. '연상호니까 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기성 감독이 이 정도 진폭으로 예산의 양극단을 오가는 사례는 국내에서 찾기 어렵다.
그의 상황 인식은 냉정하다. 지난 20년을 CJ·롯데·쇼박스·NEW, 이른바 4대 배급사 체제의 시대라 부르는데, 그 문을 연 세대가 김지운·박찬욱·봉준호였고 자신도 <부산행>으로 상업영화에 진입했으니 그 체제의 끝자락에 걸쳐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가 통과한 10년은 격변 그 자체였고, 이제 시스템의 교체 주기는 5년 단위로 짧아졌다고 본다. 안주하고 싶어도 안주할 수 없는 이유. 그래서 그가 택한 포지션이 바로 '영화계 보부상'이다 — 몸을 계속 가볍게 유지하며 시장을 떠도는 상인.
여기서 '몸'이란 곧 프로덕션이다. 제작 규모와 방식을 유연하게 다이어트하지 못하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 미국만 봐도 대형 스튜디오들이 줄줄이 흔들리고, 이제는 제작사들이 각자의 브랜드를 벼리는 시대로 넘어갔다. 본인 역시 기성세대로서 편안함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무언가를 계속 시도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할 뿐이라고 했다. 이제 막 영화를 시작하는 세대가 이 사실을 하루라도 빨리 체감하길 바란다는 당부와 함께.
그가 근거로 꺼낸 건 만화판의 역사다. <챔프>, <아이큐점프> 같은 만화잡지가 사라지고 강풀을 위시한 웹툰 1세대가 등장했을 때, 업계의 지배적 반응은 '저걸 만화라고 부를 수 있나'였다. 그러나 웹툰은 무서운 속도로 판을 접수했고, 변화를 먼저 읽고 산업화에 올라탄 이들이 시장을 선점했다. 물론 지금은 그 웹툰마저 흔들리는 국면 — 새 시스템에 적응하고 판을 재정립하는 사이클 자체가 극도로 빨라졌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게 보부상의 결론이다.
EDITOR'S NOTE — 스틸컷 저작권은 ©쇼박스에 있습니다.
CRAZY GIANT MAGAZINE · CINEMA FILE
연상호는 '영화계 보부상'을 선언했다
시작은 좀비가 아니었다. 넷플릭스 <지옥>(2021)부터 극영화 <계시록>(2025)까지 호흡을 맞춰온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 두 사람이 다음 프로젝트를 놓고 대화를 굴리던 자리에서 튀어나온 키워드는 AI, 그리고 집단지성이었다. 다수의 흐름에 깔려 소수의 목소리가 지워지고, 결국 개인이 무기력해지는 구조 — <군체>의 설계도 맨 첫 장에 적힌 문제의식은 바로 이것이었다.
완성된 영화의 무대는 서울 한복판의 초고층 빌딩.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염 사태 속에서 버티는 생존자들의 사투가 골격이다. 네 발로 기어다니던 감염체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점점 위협적인 존재로 진화한다는 설정은, <부산행>(2016)과 <반도>(2020)를 거친 연상호식 좀비 문법의 새 버전으로 읽힌다. 하지만 지난 6일 마포구 사무실에서 마주한 감독의 회고는 순서가 달랐다. 사이비 교주를 그린 <지옥>을 끝내고 마음에 남아 있던 숙제를 붙들고 있다 보니 이 이야기가 나왔고, '이거 좀비물로도 굴러가겠다'는 판단은 그다음이었다는 것.
관객은 그 의도를 정확히 낚아챈 모양새다. 5월 21일 개봉한 <군체>는 6월 13일 기준 500만 관객을 넘기며 롱런 중이고, 올해 흥행 순위에서 <왕과 사는 남자> 바로 다음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개봉 전인 5월 16일(현지시각) 제79회 칸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베일을 벗었을 당시, 극장을 나선 현지 관객들이 극 중 좀비의 시그니처 동작을 흉내 내며 놀았다는 후문도 있다. 감독은 이 풍경을 두고, <부산행>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자신이 만드는 좀비 자체가 해외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는 소회를 내놨다.
<지옥>을 끝낸 직후 감독의 머릿속을 점령한 건 '집단성'이라는 개념이었다. 그것이 왜 이렇게 불편한가, 우리를 실제로 위협하는 정체는 무엇인가. <군체>는 그 찜찜함을 장르의 문법으로 번역해 관객이 몸으로 느끼게 만든 결과물이라는 게 그의 정리다.
초반부에 그 테마가 응축된 장면이 등장한다. 집단지성을 매개하는 물질 기술을 강탈당한 서영철(구교환)이 분노 끝에 해당 바이오 기업이 입주한 빌딩에 생화학 테러를 일으키는 순간. 사람들이 하나둘 감염체로 돌변하는 아수라장 속에서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과 생존자들은 건물 내 쇼핑몰 구역 매장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격한다 — 자신들을 물어뜯으려던 좀비 떼가 돌연 움직임을 멈추고, 일제히 고개를 하늘로 쳐든 채 온몸을 진동시키는 광경을. 사냥 과정에서 긁어모은 정보를 무리 전체에 동기화하는, 일종의 '업데이트' 타임이다.
레퍼런스는 1978년작이었다. 필립 카우프먼의 <우주의 침입자> 마지막 장면 — 외계 존재들이 인간을 발견하면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지목하는 그 동작. 거기에도 의식을 공유하는 무리라는 설정이 깔려 있었다.
물론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는 노릇. 스태프 회의에서 감독이 툭 던진 아이디어가 '고개를 확 쳐드는 좀비'였다. 와이파이에 붙어 데이터를 내려받는 감각 — 그 직관 하나로 동작의 방향이 잡혔고, 디테일은 안무팀이 배우들과 부딪히며 완성해 갔다. 감독은 자신보다 그쪽이 전문가라며 일일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연출자가 스태프와 배우의 영역을 지나치게 파고들면 서로 지치기만 하고 답은 오히려 멀어진다는 게 그의 오랜 경험칙이다.
칸의 관객들이 그 동작을 따라 하며 즐긴 현상에 대해서도 그는 명쾌했다. 코미디언의 대사가 유행어로 번지듯, 관객이 몸짓을 복제한다는 건 이 영화의 핵심을 제대로 씹어 삼켰다는 증거라는 해석이다.
좀비에게 AI적 특성을 심어 공포를 뽑아낸 감독. 정작 본인은 AI가 두렵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AI를 무서워한다는 건 결국 인간이라는 종의 특질을 무서워한다는 뜻이라, 기술 그 자체를 공포의 대상으로 보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AI는 보편적 사고의 총합 위에서 굴러가는데, 사실 예술 — 특히 영화 같은 대중예술 — 에도 그 보편의 토대가 필요하다는 것. 마르셀 뒤샹이 기성품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새로운 개념을 얹었을 때 예술사가 뒤집혔고, 그 지반 위에서 앤디 워홀 같은 후발 주자들이 태어났다. 같은 원리가 영화 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개인의 독창성을 스크린에 구현하려면 결국 돈이 드는데, AI 기술의 진화가 그 비용 구조 자체를 흔들어 놓으리라는 전망.
특히 아시아 영화인에게는 거대한 기회의 창이 열린다고 봤다. 과거 아시아 감독이 할리우드행을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 자국 시장의 예산으로는 불가능한 상상을 그곳에선 찍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장벽 자체가 허물어지는 국면이라는 것. 현재 할리우드가 AI 사용을 극도로 엄격하게 통제하고 일부는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것 역시, 수십 년 쌓아 올린 기득권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직감의 발로라고 그는 진단했다.
감독이 직접 회심의 장면으로 지목한 건 후반부의 '앤트밀(Antmill)' 시퀀스다. 개미 무리가 서로를 따라 원을 그리다 집단 폐사에 이르는 실제 자연현상에서 따온 이름. 화장실 픽토그램 하나로 남녀 공간을 구분하듯, 영화 전체의 주제가 단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되는 순간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이 장면이었다는 설명이다.
맥락은 이렇다. 서영철의 계략으로 빌딩에 봉인돼 있던 좀비들이 기어이 바깥으로 쏟아지고, 인근 시민들이 무더기로 감염되며 도심은 지옥도가 된다. 이들이 체액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간파한 권세정은 그 체액을 전신에 바르고 군체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목표는 최초 감염원, 즉 알파 좀비의 제거. 그런데 오염된 정보가 무리에 퍼지자 좀비들은 혼란에 빠져 세정을 공격하는 대신 그를 축으로 거대한 원을 그리며 무한 회전하다가, 어느 순간 일제히 무너져 내린다. 서영철이 무리 전체를 리셋(reset)하기 위해 택한 방식이며, 이 공백이 세정에게 사태를 끝낼 단 한 번의 기회를 열어준다.
흥미로운 건 이 장면이 초기 기획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촬영 직전 투자배급사 쇼박스에서 건너온 제안이었다. <부산행>의 명장면 — 기차에 좀비들이 매달려 끌려가는 그림 역시 촬영 도중 우연히 태어난 것이었다고.
감독은 이 우연의 산물에서 AI와의 결정적 차이를 읽어냈다. AI가 이미 존재하는 정보들을 뒤섞은 평균값 위에서 작동한다면, 이 장면은 오히려 바깥에서 날아든 소수의견이 작품을 바꾼 사례라는 것. 집단화된 존재들이 드러내는 맹목의 위험, 그리고 그 시스템의 오류 — 그가 이 소용돌이 하나에 눌러 담고 싶었던 메시지다.
현장은 만만치 않았다. 콘셉트 자체는 현대무용 군무에서 신호와 함께 무용수들이 일제히 쓰러지는 설정을 빌려왔지만, 좀비 분장을 한 채 전력 질주하다 넘어지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위험이었다. 원형 주로의 속도는 빨랐고 시야는 좁았다. 안무팀은 물론, 국내에서 소집 가능한 스턴트 배우를 사실상 총동원했다 — 약 40명 규모. 실촬영은 이들이 쓰러지는 순간만 담았고 나머지 물량은 CG가 받쳤다.
— 권세정이 차량으로 좀비들을 들이받는 장면은 대부분 실촬영. <반도>에서 CG로 처리했던 카체이싱과의 결정적 차별점.
— 전지현이 운전석에, 실제 조종은 옆자리 스턴트 배우가 — 우측에도 핸들을 단 특수 제작 차량을 투입했다. <계시록>에서 처음 시도한 방식으로, 우측 핸들은 후반 CG로 지운다.
— CG 단독 처리와 실연기 결합의 현실감 차이는 압도적이었지만 사고 위험도 컸다. 촬영 직전 반나절을 통째로 배우들 간 합 맞추기에 쏟았다.
감독은 이 시퀀스의 지분을 두 사람에게 돌렸다. <부산행>과 드라마 <킹덤>의 좀비 무브먼트를 설계한 전영 안무감독, 그리고 국내에서 사실상 유일한 여성 무술감독인 유미진 감독. 고성이 오가기 일쑤인 액션 현장을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장악하는 인물로, 고난도 촬영의 연속이었던 <군체> 현장에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는 기록이 그 증거다.
총제작비 200억 원대의 <군체>는 해외 선판매와 국내 스코어를 합쳐 이미 손익분기점을 통과했다. 거의 해마다 신작을 내놓는 그를 두고 다작 감독이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데, 그 페이스가 가능한 데에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블록버스터와 넷플릭스 시리즈를 굴리는 와중에도 그는 저예산 영화와 독립 애니메이션을 병행 기획·제작해 왔다. 지난해 개봉한 <얼굴>은 단 2억 원으로 완성한 장편이고, 개봉을 앞둔 <실낙원>은 5억 미만의 초저예산 프로젝트다. '연상호니까 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기성 감독이 이 정도 진폭으로 예산의 양극단을 오가는 사례는 국내에서 찾기 어렵다.
그의 상황 인식은 냉정하다. 지난 20년을 CJ·롯데·쇼박스·NEW, 이른바 4대 배급사 체제의 시대라 부르는데, 그 문을 연 세대가 김지운·박찬욱·봉준호였고 자신도 <부산행>으로 상업영화에 진입했으니 그 체제의 끝자락에 걸쳐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가 통과한 10년은 격변 그 자체였고, 이제 시스템의 교체 주기는 5년 단위로 짧아졌다고 본다. 안주하고 싶어도 안주할 수 없는 이유. 그래서 그가 택한 포지션이 바로 '영화계 보부상'이다 — 몸을 계속 가볍게 유지하며 시장을 떠도는 상인.
여기서 '몸'이란 곧 프로덕션이다. 제작 규모와 방식을 유연하게 다이어트하지 못하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 미국만 봐도 대형 스튜디오들이 줄줄이 흔들리고, 이제는 제작사들이 각자의 브랜드를 벼리는 시대로 넘어갔다. 본인 역시 기성세대로서 편안함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무언가를 계속 시도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할 뿐이라고 했다. 이제 막 영화를 시작하는 세대가 이 사실을 하루라도 빨리 체감하길 바란다는 당부와 함께.
그가 근거로 꺼낸 건 만화판의 역사다. <챔프>, <아이큐점프> 같은 만화잡지가 사라지고 강풀을 위시한 웹툰 1세대가 등장했을 때, 업계의 지배적 반응은 '저걸 만화라고 부를 수 있나'였다. 그러나 웹툰은 무서운 속도로 판을 접수했고, 변화를 먼저 읽고 산업화에 올라탄 이들이 시장을 선점했다. 물론 지금은 그 웹툰마저 흔들리는 국면 — 새 시스템에 적응하고 판을 재정립하는 사이클 자체가 극도로 빨라졌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게 보부상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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