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MILITARY[MILITARY]서울 재탈환의 날


서울 재탈환의 날

3월 14일 점심으로 짱깨나 조져야겠다

by김현석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경상도 끝자락까지 몰렸던 대한민국은 유엔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다. 이후 기세를 몰아 평양을 넘어 중국 턱밑까지 북진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중공군 수만명이 취두부 냄새 풀풀 풍기며 며칠 동안 감지도 않은 대가리 들이밀며 오는 바람에 결국 1951년 1월 4일 다시 한강 이남으로 후퇴하고 만다. 전열을 가다듬은 한미 연합군은 다시 서울을 재탈환하기 위해 작전을 펼쳤다. 미 25사단과 미 3사단이 중공군의 포탄을 뚫고 한강을 건너 의정부와 포천 방면에서 서울 북쪽을 포위했다. 이후 국군 1사단과 유엔군의 함정들이 한강에서 양동작전을 펼치며 중공군을 압박했다. 결국 3월 14일 중공군은 서울에서 철수했고 국군 1사단이 한강을 건너 서울을 재탈환했다. 기쁨의 환호와 눈물이 서울시를 메웠고 태극기는 다시 한번 서울 상공에 펄럭이게 됐다. 1950년에 있었던 서울 수복 작전에 비해 덜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날의 재탈환 후 대한민국은 휴전까지 한번도 서울을 뺏기지 않았다. 북괴와 더러운 오랑캐들에게 두 번이나 짓밟혔던 서울을 온전히 차지한 역사적인 날인만큼 화이트 데이니, 뭐니 돈 쓸 궁리만 하지말고 그날의 영광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호국영령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도록 하자. 




한국전쟁 당시 중국인민지원군에 관한 이모저모

- 1950년 10월 25일 참전했고 이를 기념하고 있음

- 참전한 대부분은 육군

- 참전 인원은 약 60만 명

- 사망한 인원은 약 18만 3,000명(전사 외에도 유행성 출혈열로 병사한 경우가 많았다고.)

- 마오쩌둥의 맏아들이 참전했다가 1950년 11월 미공군의 폭격으로 사망

- 한국말과 중국말을 둘 다 할 줄아는 조선족들도 다수 소속

- 관충금이라는 관우의 67대손도 참전

- 현재 중국에서는 정의와 평화를 위한 참전이였다고 딸딸이 치고 있는 중

- 같은 중국인이지만 국군 쪽에 참전한 사람들도 있었음(주로 대만출신 화교들)


불쏘시개로 써도 모자를 역겨운 중공군 찬양 영화들

<1953 금성 대전투>(2020)

감독: 짱꼴라 등

배우: 떼놈, 짱깨 등

상영시간: 알 필요 없음


미군과 중공군이 한국전쟁당시 벌였던 금성대전투를 바탕으로 한 더러운 중공군 미화 역사 왜곡물이다. 미국과 중국의 외교 분쟁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제작한 프로파간다 영화로 중공군 참전일인 10월 25일 쯤 자국에서 개봉했다. 놀랍게도 포스터에서부터 취두부 냄새가 풍겨오는 쓰레기 영화를 국내에서 정식으로 개봉할 뻔했다. 물론 정부와 수입사는 개욕쳐먹고 개봉을 취소하긴했다. 



*크레이지 자이언트 22년 3월호에 실린 기사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