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MILITARY[SPORTS]씨름의 흥망성쇠

2022-09-07

씨름의 흥망성쇠

명절만 되면 흩날리는 모래알과 땀의 향연! 
씨름은 과연 다시 한번 샅바를 다잡을 수 있을까?

by 김현석


삼국시대부터 움켜잡았던
샅바


사내들끼리 힘을 겨뤄보는 것은 본능일까? 문화일까? 정확히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다양한 문화권에서 맨몸으로 힘을 겨루는 전통 투기 스포츠가 전해내려온다. 한반도의 씨름의 기원을 알 수는 없으나 4세기경으로 추측되는 고구려 고분인 각저총(角抵塚) 주실(主室) 석벽에 씨름을 하는 모습의 벽화가 있다. 이는 이미 삼국시대에 씨름이 대중적인 스포츠였음을 의미한다. 삼국시대의 인기 스포츠는 고려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고려사』에는 충숙왕이 씨름을 좋아했다거나, 충혜왕이 아랫사람들과 씨름을 즐겨 못마땅하거나, 공민왕이 국가 주관 씨름 대회를 열었다는 등 씨름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들이 남아있다. 왕실에서 직접 즐겼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김홍도의 그림과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에도 씨름이 국민 스포츠였음을 잘 보여준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단오와 설날 지역별로 씨름 경기가 열렸고 우승 상품인 황소를 타기 위해 전국 투어를 하는 전문 씨름꾼들도 등장했다. 워낙 인기가 많아지다 보니 결과를 놓고 도박이 벌어져 조정이 단속을 하기도 했다고. 어쨌든 씨름이야말로 한민족의 역사를 관통하는 대표 스포츠라 하겠다.


현대 스포츠로서 도약했던
일제강점기


전통 놀이 개념으로 국가나 마을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리던 씨름이 스포츠로 구색을 갖춘 것은 1927년 조선씨름협회가 창단하고서부터다. 일본에서 근대화된 체육교육을 받고 체육교사로 근무하던 강낙원, 서상천, 한진희, 강진구 등을 중심으로 씨름의 근대화 작업이 진행됐고 제자들을 통해 전국의 씨름 실태를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협회를 설립하고 씨름 규정 등을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제1회 전조선씨름대회를 열며 전국 규모의 현대 스포츠로서의 씨름 출범을 알렸다. 조선체육회가 개최하던 전조선종합경기대회에서도 제16회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하지만 3.1 운동을 겪었던 일제는 조선인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싫어했기 때문에 씨름협회와 조선체육회가 뜻대로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전국 씨름대회는 개최와 중단을 반복하며 어렵게 명맥을 유지해야 했다. 다행히 1946년 광복 이후 조선씨름협회는 대한씨름협회로 명칭을 바꾼 뒤 협회 규약 및 경기 심판 규정 등을 추가했다. 그리고 전국씨름선수권대회를 개최하고 체급제를 도입하는 등 현대 씨름의 기틀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국민 스포츠 반열에 오른 
최고 전성기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현대적인 스포츠로 도약에는 성공했지만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러 있던 씨름은 1980년대 들어 최고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1983년 4월 13일부터 4월 17일까지 5일간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열렸다. 장충체육관을 가득 매운 장사들의 기합소리와 관객들의 함성소리는 TV 전파를 타고 전국에 생생하게 컬러로 전달됐다. 특히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만기가 혜성같이 등장해 1회 대회를 섭렵하며 극적인 역전 드라마까지 연출해냈다. 덕분에 씨름은 국민 스포츠 반열에 올랐고 이만기는 운동선수를 넘어 연예인급의 명성과 인기를 얻었다. 같은 시기 활동한 이봉걸과 이준희 등의 씨름 선수들도 인기를 누리며 씨름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이후 발칙한 신예 강호동이 등장해 이만기라는 전설을 꺾으며 새로운 반전 드라마를 쓰기도 했다. 1990년대 초까지 씨름은 프로야구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스타들의 이탈과 씨름의
몰락


스포츠 종목의 인기를 위해서는 스타 선수가 필수적이다. 씨름 전성기의 포문을 연 이만기는 현란한 기술과 민첩성으로 자기보다 큰 선수들을 모래 판에 내다 꽂던 테크니션이었다. 게다가 근육질 몸매에 훤칠한 얼굴로 여심까지 사로잡은 존재였다. 뒤이어 나타난 강호동은 현재 국민 MC로 성공한 것에서 알 수 있듯 화려한 쇼맨십과 당돌함, 그리고 이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천재적인 씨름 기술로 씨름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만기는 왕좌의 자리를 강호동에게 물려주며 내심 씁쓸하면서도 새로운 슈퍼스타 강호동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고 말한다. 하지만 강호동은 최전성기 시절 갑작스레 은퇴를 하고 연예계로 떠나버렸다. 강호동이 떠난 1990년대 중반부터 김정필, 백승일, 이태현, 김영현, 최홍만 등이 씨름판에 등장해 나름 명성을 얻었지만 이만기와 강호동의 빈자리를 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화려한 기술이 두 눈을 사로잡던 80년대 씨름과 달리 90년대에 접어들며 거구의 비만형 선수들의 투박하고 지루한 씨름이 이어졌다. 여기에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손만 놓고 있던 연맹의 무능함과 더불어 IMF 외환 위기까지 겹쳐 스폰서와 프로팀들이 줄줄이 사라져버렸다. 결국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씨름의 명맥만 겨우 유지되는 수준이 되고 만다.


다시 조금씩 고개를 드는 
씨름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가고 있던 씨름은 2019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유튜브, SNS,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임태혁, 박정우, 노범수, 허선행 등 꽃미남 선수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왕년의 이만기가 그랬던 것처럼 근육질 몸매와 깔끔한 외모의 선수들은 여심을 공략하기 충분했다. 씨름 룰도 기술씨름의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훨씬 더 전략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씨름을 주제로 한 예능과 다큐멘터리 등이 제작되면서 씨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필 그 타이밍에 중국발 우한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기지개를 켜지 못한 점은 아쉬울 따름이다. 과연 조금 되살아난 불씨를 밑바탕으로 씨름계가 다시 한번 샅바를 다잡을 수 있을까? 일단 이번 추석 연휴 경상남도 고성에서 진행되는 <위더스제약 2022 추석장사씨름대회>부처 챙겨보도록 하자.


*크레이지 자이언트 22년 9월호에 실린 기사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