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STYLE [LOVE&STYLE] 판도라의 상자는 열지 말아줘

2022-08-11

판도라의
상자는
열지 말아줘

연인 사이에서 꺼내지 말아야 할 이야기

BY이정미



수평선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수평선 너머를 볼 수 있는 이는 없으며, 
이는 지평선과 마찬가지로, 수평선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이므로, 
나는 바다 너머의 바다를 상상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쓸 수 없다고 쓰는 것은 가능하다.


한유주, 「도둑맞을 편지」에서.



누구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빈도가 많든 적든, 술 한잔에 속에 담아둔 것을 토해내고 싶은 순간이 있는 것이다. ‘연인’이라는 존재는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보통의 연애를 하는 보편적인 부류에게 있어서 그의 파트너는 그의 생활에 중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파트너가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포함한) 많은 부분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속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면 충격에 빠지기도 한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우리들 저마다는 타인과 엄연히 다른 존재이다. 결국 ‘역지사지’라는 말은 쓸모가 없어진다.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을 당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당신의 연인이 제아무리 개방적이고 바다처럼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1. 널 만나기 전까지 나는… 바람둥이의 고백 

많은 이성에게 호감을 사는 사람은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매력이 만들어낸 과오(?)를 당신의 현재 애인에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물론 정말로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방황했고, 지금은 아니다, 너를 이만큼이나 사랑한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의 입장은, 특히 그게 연애 초창기일 경우에는 탐탁치 않을 것이다. 사람은 쉽게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과거에 문어발식 관계로 연애를 했던 사람이 그 버릇을 쉽게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당신의 연인은 당신의 깊은 사랑을 느끼기보다는 필히 불안해할 것이다. 사랑을 전하고 싶다면 행동으로 보여줘라.


2. 너무 많은 가정사

현재의 모습은 지금껏 자라온 주변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 중 당신을 가장 많이 결정 지은 것은 아마도 가정환경일 것이다. 당신이 가난하게 자라거나, 외동으로 자라거나,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어떤 가혹한 환경에 처해있든지 이를 극복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잘 살고 있는 것은 분명히 격려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에 너무 많은 가정사를 털어놓는다면? 특히나 당신의 불운했던 일들에 대해서 계속 쏟아낸다면 상대방은 당신을 안타깝게 여기는 동시에 부담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물론, 오래 만나온 연인 사이에서 가정사에 대한 부분은 서로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지나치지 않고 꺼내는 화제이다. 그러나 당신이 무슨 잘못을 할 때마다, 혹은 당신의 콤플렉스에 대한 해명을 할 때마다 과거의 어두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변명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3. 흑역사는 제발 그냥 묻어둬라 

그 흑역사가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이는 가급적 묻어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우스갯소리 삼아서 꺼냈을 지 몰라도 듣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깬다’고 생각할 수 있다. 흑역사 또한 최소 어느 정도의 래포가 형성된 다음에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설령 오래된 연인이라고 해서 엽기적인 이야기를 막 꺼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연애가 항상 설렐 수 없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터놓고 편하게 지내는 것이 과연 ‘연인’ 사이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당신이 마음 편하게 한 이야기가 결국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편한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4. 이것 만은 제발. 전 여친 이야기 

전 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피해야 할 화제이다. (애초에 이런 이야기가 화제가 되는 게 불편한다.) 물론 과거는 과거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거가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먼저 우스갯소리처럼 꺼냈다고 해서(물론 이런 식으로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도 정상적인 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덥석 물어서 신나게 이야기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전 애인에 대한 험담도 금물이다. 그들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 또한 궁금하지도 않다. 만약 헤어지게 된다면 나도 저런 험담의 상대방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도 한 때 사랑했던 사이인데 어떤 방식으로든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자체가 모두에 대한 예의이다. 자매품으로 인스타 사진과 휴대폰 앨범 관리를 좀 잘하자. (솔직히 컵 두개가 있는 카페 테이블 사진만 봐도 신경이 쓰인다.)


5. 딴 년 이야기 

그게 누구인지는 크게 상관없다. 특히 다른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는 맥락으로 이야기하면 그게 제 아무리 칭찬이라도 애매한 입장이 된다. 예를 들어 외모를 칭찬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냥 예쁘다고 하면 될 것을 “OO 여친에 비하면 너는 훨씬 이쁘지,” 라든가 “내가 만났던 애들 중에 네가 제일 예뻐.”라는 말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얘는 얼굴만 보고 다니나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여자를 만나면 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너는 얼마나 잘났길래 비교를 해?) 비교를 하는 게 아니더라도 다른 이성의 상대방이 고민 상담을 한다는 둥 자기를 좋아하는 거 같다는 둥 사사로운 이야기를 해도 신경 쓰인다. 아니, 네가 잘못한 건 없는데 내 기분이 나쁜 걸 어떻게 하라고?


6. 과거를 들추는 이유가 뭔 데?

질문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러나 나의 과거사에 대해서 자꾸 캐묻는다면 곤란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당신은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은 간사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듣지 않았을 때는 괜찮을 거 같은데 막상 들으면 충격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현실은 항상 예상을 뛰어넘는 법이다. 당신이 모든 것을 감싸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상대방을 자꾸 들추지 말고, 정 궁금하다면 그녀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려라. 특히 그게 상대방의 아픈 부분일 경우에는 무조건 조심하는 것이 좋다. 마음의 문을 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서로가 다르다.


7. 정치 그리고 종교 이야기 

민감한 이야기의 끝판왕이다. 정치와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상대방과 내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확신이 없는 한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된다. 물론 당신에게 정치적·종교적 가치관이 일치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해서 꼭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지금껏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가 갑자기 꼭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 정치와 종교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히 당신이 정치에 대해서 ‘조금 더’ 안다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정말 최악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판도라의 상자인 것은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허물이나 과오를 숨기고 상대방을 만나라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분명히 꺼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몰라도 되는’ 것들을 억지로 들춰서 관계의 무엇인가를 깨트릴 필요는 없다. 어쩌면 위에서 제시한 케이스들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관계의 깊이에 따라서 적정한 순간에 꺼낼 수 있는 말들일지 모르겠다. 당신을 받아들여줄 사람이 없다고 너무 낙담하지 말고 과거의 실수는 깨끗이 만회하는 것으로 어떤 말들을 대신하자.





*크레이지 자이언트 2021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