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천재를 넘어 신으로, 우상을 넘어 상징으로 Jimi Hendrix

2022-06-07

천재를 넘어 신으로,

우상을 넘어 상징으로

Jimi Hendrix

한 명의 록 뮤지션이기보다, 
록 그 자체가 되어버린 지미 헨드릭스에 관한 키워드들

by.김현석

#왼손잡이

사실 그는 양손으로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 당시 사회적으로 왼손잡이는 악마의 표상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가 계속해서 오른손잡이로 교육시킨 덕분이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따위 엿 먹으라는 듯 무대에서 그는 왼손으로 피크를 잡았고, 기타를 뒤집어 버렸다. 뒤집어진 그의 기타와 함께 음악의 역사도 뒤집혔다.


시대를 풍미한 왼손잡이 록 뮤지션들

키트 코베인(Kurt Cobain)

너바나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그는 간단한 리프와 울분에 찬 샤우팅만으로 메탈의 시대를 끝내버렸다. 공교롭게도 27살의 나이에 사망했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비틀즈의 베이시스트이자 위대한 작곡가. 베이스뿐만 아니라 기타, 피아노, 드럼, 색소폰 등 약 50~60개 악기를 다룰 수 있으며 훌륭한 보컬이기도 하다.

토니 아이오미(Tony Iommi)

블랙사바스의 기타리스트. 헤비메탈 리프를 완성한 기타리스트로 평가 받는다. 어릴적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오른손 손가락 일부를 잃었지만 장애를 극복해내고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비틀즈의 베이시스트이자 위대한 작곡가. 베이스뿐만 아니라 기타, 피아노, 드럼, 색소폰 등 약 50~60개 악기를 다룰 수 있으며 훌륭한 보컬이기도 하다.



#노력파

엄마 뱃속에서부터 탯줄을 튕기며 음악을 연주했을 것 같지만, 10대 초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악기를 연주했다. 그마저도 쓰레기통에서 주운 한 줄짜리 우쿨렐레였다. 이후 아버지에게 선물로 받은 낡은 통기타와 싸구려 일렉트릭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기타리스트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나갈 때도 휴식시간이나 이동 간에 쉬지 않고 기타를 연습했다. 극장에 갈 때도, 잠을 잘 때도 기타와 붙어 있었다. 다른 기타리스트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그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사실 그는 양손으로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 당시 사회적으로 왼손잡이는 악마의 표상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가 계속해서 오른손잡이로 교육시킨 덕분이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따위 엿 먹으라는 듯 무대에서 그는 왼손으로 피크를 잡았고, 기타를 뒤집어 버렸다. 뒤집어진 그의 기타와 함께 음악의 역사도 뒤집혔다.


#패션

세상에는 두 부류의 남자가 있다. 옷 잘입는 놈과 그렇지 않은 놈. 지미는 전자다. 히피를 상징하는 판타롱 팬츠를 기본으로 실크 블라우스, 프린지 자켓, 벨벳 블레이저, 그의 시그니쳐가 된 밀리터리 버튼자켓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히피 문화의 절정답게 파격적이고 화려한 패턴과 색상의 믹스 앤 매치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헤어밴드와 페도라는 그의 이름을 들을 때 떠올리는 자연스러운 이미지가 됐다.

#퍼포먼스

기타의 신(神)답게 무대 위에서 지미는 기타와 혼연일체가 된다. 남녀가 서로를 탐닉하듯 기타와 전위를 이어나간다. 자위를 하듯 기타의 암(Arm)을 흔들고, 혀로 기타줄을 핥는가 하면, 기타를 사타구니 사이에 끼우고 피스톤 운동을 하기도 한다. 기타를 머리 뒤로 넘겨서 연주하거나, 기타줄을 이로 물어 뜯는 등의 퍼포먼스는 지금도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보여주는 스킬이다.

#불

1967년 최초의 록 페스티벌로 불리는 몬터레이 페스티벌에서 마지막 곡 ‘Wild Thing’을 연주하던 지미는 기타에 라이터 기름을 뿌리고 마지막 작별 키스를 건넨 뒤 불을 붙여 버렸다. 이후 불타는 기타를 무대 위로 내동댕이 쳐 작살내버리기 까지한다. 이는 연주와 관계된 쇼맨십이 아니었으며 1960년대 젊은세대들의 분노를, 그리고 록이 담고 있는 저항의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준 행위이자 의식이었다.

#국가

2년 후 열린 우드스탁에서 지미 헨드릭스는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지미는 위풍당당히 무대에 올라 미국 국가인 ‘The Star Spangled Banner’를 연주했다. 물론 경건하지 않았다. 이펙터를 사용해 공격적인 파열음을 끊임없이 섞어 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만들어내는 총격과 포화 소리를 풍자한 것이다. 기성 세대에 대한 반항, 반전과 평화를 갈구하는 젊음의 목소리를 기타로 대변해냈다. 이념을 담은 음악, 진정한 록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톤

지미의 손에서 기타는 사람처럼 포효하거나, 흐느끼거나, 때로는 이야기를 건네왔다. 이는 이펙터의 역할이 컸다. 퍼즈, 와우와우, 유니바이브 등의 이펙터를 조합해 공격적인 거친질감부터 몽환적인 사운드까지 표현해내며 일렉트릭 기타를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 록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지미 헨드릭스 이후 기타리스트들은 좋은 기타, 훌륭한 스킬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기타 톤을 만들기 위해 지갑을 열어야 했다.

#요절

1979년 9월 18일 영국 런던 스마르칸트 호텔 지하에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27살의 지미는 그렇게 록의 신이 됐다. 1966년 영국에서 데뷔해 3년 정도 활동했을 뿐이다. 생전 3장의 정규앨범과 1장의 라이브앨범을 발표했다. 그가 불태워버린 기타처럼 짧지만 뜨겁고 강렬했던 인생이었다.



지미 헨드릭스에 관한 키워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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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8월호 #안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