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국밥


추운 겨울, 한국인에게 뜨끈한 국물 이상은 없다!

by 박경진


 

우리나라 외식문화의 첫 메뉴는 뭘까? 

정답은 국밥이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선 상업을 별로 탐탁하지 않게 봤다. 

너도나도 이쪽 물건을 저쪽에 가져다가 팔아 이익을 본다면 농업이 위축되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조선은 상업을 억제했고, 허락 받지 않은 지역 간 이동도 제한했다. 

사람들이 동네를 떠나지 않으니 다른 동네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관에서 운영하는 객사는 비교적 큰 숙소로 관리가 잘 되었지만 곳곳에 있진 않았다. 

보부상 등 떠돌이들은 주막에서 끼니와 숙박을 함께 해결하곤 했다. 

손님이 많지 않으니 경쟁도 없었고 서비스도 발달하지 않았다. 

주막의 음식은 뻔했다. 

반찬은 없었고 뜨거운 국물에 식은 밥을 말아주는 국밥이 전부였다. 

비빔밥은 상업이 어느 정도 발달하면서 추가된 신메뉴다. 

국밥의 배리에이션도 있다. 주막에선 남이 먹다 남긴 밥이나 살짝 쉰밥을 말아주기도 했다. 

이건 그때도 기분 나쁜 행위였다. 

그래서 업그레이드 국밥으로 등장한 게 ‘따로국밥’이다.

 

우리는 국밥의 재료로 쇠고기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초기의 국밥에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았다. 

890년대 중국인이 대거 유입되면서 돼지고기도 흔해졌고, 1900년대부턴 돼지고기로 육수를 낸 국밥이 여기저기 등장했다. 

특히 중국과 가까운 이북에서 돼지고기가 인기를 끌었다. 

이때 나온 이북식 국밥이 돼지고기와 전, 나물을 함께 넣고 끓인 ‘온반’이다. 

이북만큼은 아니지만 부산, 인천, 대구, 밀양 등에서도 다양한 돼지고기 국밥이 등장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곡식과 채소가 풍부한 남쪽 지역에선 이북만큼 돼지고기 국밥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 못했다. 

남쪽의 돼지국밥은 한국전쟁으로 이북 피난민이 부산에 모여든 1950년대 이후에야 인기가 높아졌다. 

1900년대 들어서도 쇠고기는 돼지고기와 달리 계속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쇠고기를 활용한 국밥은 1920년대에야 유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조선시대부터 먹던 쇠고기 국으로는 설렁탕이 있다. 

풍요로운 농사를 기원하면서 선농제를 지낸 후 다함께 나눠먹었다는 선농단 유래 설은 너무나 유명하다. 

수원의 갈비탕도 그 유래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조는 하루라도 빨리 수원 화성으로 천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수원을 소 도축 특별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인부들에게 쇠고기를 먹도록 허락했다. 

그렇다고 그 귀한 소를 구워서 먹긴 힘들었고 탕으로 끓여 나눠먹는 게 일반적이었다.

 

조상님들은 고기보단 수산물, 그것도 바다보다 민물 재료에 익숙했다. 

강가에선 민물조개와 다슬기를 채취해서 삶거나 국을 끓여먹었다. 

다슬기국은 18세기 후반에 쓰인 <재물보>에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깊다. 

섬진강 유역에서도 ‘재치국’이라는 토속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재치국은 재첩국을 가리킨다.


세종 시대를 살았던 문인, 서거정은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복어의 맛이 먹고 죽을 가치가 있다고 칭찬했다. 

조선 후기의 농학자인 유중림은 복어에 독이 있으니 주의하라고 했다. 

조상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복어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배고픈 사람들은 손질하고 버린 복어 내장과 머리를 가져다가 먹고 목숨을 잃곤 했다. 

1923년 12월, 서울에서만 최소 12명이 복국과 목숨을 바꿨다. 

1960년대 성북동의 한 노인은 고깃국물을 먹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노래했다. 

그의 아내는 동네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복어 내장을 가져와 복국을 끓였고, 할아버지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다음날 이웃에 살던 목수 두 명이 할머니를 찾아왔다. 

없이 살아도 관에는 넣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장례를 도우려 한 거다. 

이웃이 너무 고마웠던 할머니는 남은 복국을 대접했고, 결국 관을 짤 사람도 사라졌다.


1960년대 이후 일본과 가까운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복국이 인기를 끌면서 복의 손질법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복국은 콩나물과 미나리를 넣기 때문에. 

무만 넣는 일본식 복국과 다소 차이가 있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던 국물 요리로는 대구탕이 있다. 

특히 가덕도의 대구는 일본과 중국에서도 탐내는 최상품으로 꼽힌다. 

모두 탐나는 국물 요리다. 추운 겨울엔 역시 뜨거운 국물에 차가운 소주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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