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어른의 시각으로 다시 보는 <겨울왕국 2>

어른의 시각으로
다시 보는
<겨울왕국 2>


소수민족과 환경 문제, 거짓 역사와 갈등을 넘어

by 제로




아아~ 아아♪ 아직도 엘사의 청아한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전작으로부터 6년만에 돌아온 <겨울왕국 2(Frozen II)>가 다시금 겨울 극장가를 매료했다. 

불과 보름 사이 1000만 관객을 넘기며 국내 상영 애니메이션 역대 1위를 갈아치웠고(직전 1위는 물론 <겨울왕국>이다), 이 기록은 아직도 계속 경신 중이다. 

전작의 Let It Go만큼 국민적인 OST가 나오진 않았으나 대신 이야기의 풍성함과 짜임새는 한층 발전했다는 평이다. 

이미 흠잡을 데 없던 3D 기술력도 더욱 물이 올라 손등에 자그마한 솜털까지 세심히 구현해 놓았다. 

엘사가 지닌 마력의 정체와 안나를 향한 크리스토프의 사랑 등 전작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매듭 지으면서, 앞으로의 가능성 또한 열어둔 여러모로 모범적인 속편. 

혹시 여태껏 관람하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얼른 극장으로 달려가시라. 

큰 화면으로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니.


단순한 공주 이야기 그 이상을 살피다

살짝 화두를 돌려보자. <겨울왕국 2>가 개봉하고 으레 따르는 언론의 관객 인터뷰 와중에 퍽 귀여운 장면이 포착됐다. 

자신을 여덟 살이라 밝힌 소녀가 “1편도 좋았는데 2편은 완전 재미있어요!”라고 답한 것이다. 

이 장면은 곧장 ‘반평생 <겨울왕국 2>를 기다린 관객’이란 부제가 붙어 인터넷으로 퍼져 나갔다. 

진지하게 따지자면 두세 살 때 극장에 갔을 리 없으니 더 커서 VOD로 봤겠지만 뭐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소녀의 인터뷰를 보며 6년의 세월이 갑작스레 와닿아 묘한 감상에 젖었다. 

어느 추운 날 <겨울왕국>을 보고는 친구와 마주앉아 요즘은 어딜 가나 Let It Go밖에 안 들린다고 투덜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돌아보면 그사이 필자는 직장을 두 번 옮겼고 여러 인연과 만나고 헤어졌으며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스스로 어른인지 분간도 못하던 청년이 그 누구도 부정 못할 숫제 아저씨가 되어버릴 만큼의 시간이다.


이처럼 나이가 먹으니 자연스레 작품을 보는 시각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야 엘사가 정말 예쁘다든가 안나가 진심 귀엽다든가 하는 흑심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들을 둘러싼 아렌델 왕국의 환경이나 여러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달까. 

디즈니는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도 작품이 갖는 사회적 메시지나 해당 문화권에 대한 고증을 매우 중시한다. 

필자처럼 어른 관객이 적잖은 까닭도 있겠지만 뭣보다 아이들은 만화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1950년 세상에 나온 백설공주는 차밍 왕자를 만나는 즉시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의탁하지만, 

2013년의 엘사와 안나는 첫눈에 반하는 건 말도 안된다며 자매가 함께 한스 왕자의 음모를 파헤친다. 

이러니 <겨울왕국> 보고 자란 요즘 아이들이 과거 백설공주 세대와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소수민족의 비극적 역사를 담은 노덜드라

그러면 본격적으로 어른의 시각으로 <겨울왕국 2>를 살펴보자.

전작이 디즈니 프린세스의 클리셰를 파괴하는 도발적인 작품이었다면 <겨울왕국 2>는 아예 공주 이야기에서 완전히 탈선한다. 

한동안 아렌델의 왕비로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엘사에게 갑자기 묘한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왕국에 여러 이변이 발생함에 따라 두 자매는 문제의 근원을 쫓는다. 

이제 모험의 무대는 아렌델을 넘어 주변 평야와 마법의 숲까지 확장된다. 

이곳에서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원주민 노덜드라는 한때 아렌델과 친밀한 관계였으나 오래 전 어떠한 사건으로 원수지간이 되었다. 

아렌델과 노덜드라의 반목에는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흑막이 숨어있었고 이는 곧 두 자매의 가족사와도 연결된다. 

즉 엘사의 목적은 좁게는 전작부터 이어지는 자아 찾기의 일환이며, 넓게는 선대의 잘못을 바로잡아 두 민족을 화해시키는 것이다.


그간 아렌델이 보여준 유럽적인 모습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노덜드라의 등장이 다소 뜻밖이었으리라. 

사실 이는 실제 북유럽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역사를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겨울왕국>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지형과 문화, 특히 1830년대 노르웨이에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자연히 가상의 국가인 아렌델도 당시 노르웨이 건축 양식과 복식 등을 적극 차용했다. 

덕분에 디즈니는 북유럽 특유의 드넓은 풍광과 신비로운 문화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어두운 일면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할 책임감을 느낀 듯하다. 

19세기 중반, 노르웨이 정부는 근대화를 명분 삼아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순록 유목을 하며 살아가던 소수민족 사미(Saami)를 극악하게 탄압했다. 

열등한 종족이란 이유로 강제로 불임수술을 행하거나 인간 동물원에 가두어 전시하기까지 했다니 노르웨이에 대한 환상이 산산조각날 지경이다.

노르웨이 정부의 패악질은 1970년, 사미족 거주지 한복판인 알타강 댐 건설을 추진하며 극에 달하였다. 

댐은 하천 수위를 조절하여 도시민에게는 용수와 발전의 혜택을 주지만 인근 일대가 침수되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이에 사미족은 서로의 팔을 사슬처럼 엮어 건설 장비의 진입을 막는가 하면 의회 앞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며 끊임없이 저항했다. 

그러나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이들을 진압하였고, 세계 각지 환경단체의 우려와 유감 표명에도 불구하고 알타 댐은 1987년 완공되었다. 

그렇다. 노덜드라가 바로 사미족이다. 

아렌델이 숲의 마법을 약화시키고자 선물로 속여 건설한 댐, 그것은 사미족의 터전을 앗아간 알타 댐과 다름아니다. 

심지어 아렌델 왕가는 이러한 진실을 숨기고 노덜드라가 먼저 공격해왔다는 거짓 역사를 전승하였는데, 이러한 일이 사미족에게도 벌어지는 중이다.



더 많은 문화권을 끌어안으려는 디즈니

엘사와 안나는 온갖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좇는다. 

그 결과 거짓 역사에 가려졌던 선대의 악행을 드러내고 늦게나마 댐을 파괴하여 자연의 질서를 회복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두 자매의 어머니는 노덜드라 출신이었으며 이후 안나는 두 민족을, 엘사는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메신저가 되기로 한다.

 즉 <겨울왕국 2>는 우리에게 소수민족과 환경 문제를 환기시키며 거짓이 아닌 진실을, 갈등이 아닌 화해를 종용하고 있다. 

비록 현실의 알타 댐은 아직 견고하지만 적어도 이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이가 문제의식을 갖고 바라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영향은 <겨울왕국 2>와 함께 성장한 우리 아이들이 그 대오에 합류하리란 점. 

당장은 노르웨이와 사미족의 복잡한 사정은 몰라도 괜찮다. 

핵심은 작품이 시사하는 메시지이니까. 

훗날 알타 댐에 관하여 배울 때 불현듯 떠오른다면 족하다.


어느덧 디즈니는 공주 이야기를 가지고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경지에 이르렀다. 

겉으로는 고전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며 실은 사회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프랜차이즈답다. 

<알라딘> 실사 영화에서 자스민을 술탄으로 바꾸고 새로운 <인어공주>로 흑인 배우를 물색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올해 말 개봉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인도네시아계 디즈니 프린세스를 선보인다는 모양이고. 

폴리네시아 신화에 기반한 <모아나>가 그러했듯 디즈니는 계속해서 새로운 문화권으로 진출을 꾀하는 중이다. 

설령 그 기저에 다분히 자본의 논리가 깔려 있다해도, 새로운 비(非)백인 공주가 등장할 때마다 그 지역 아이들에게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엄청나다. 

대중문화란 대중과 상호 작용하기에 대중문화라 하는 것이다. 만화를 그저 만화로 즐겨도 되지만 가끔은 이런 어른의 시각도 흥미롭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