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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 실사 영화, 그 기묘한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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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IANT 작성일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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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일본 만화 실사 영화, 그 기묘한 잔혹사

팬들의 인내심과 주머니 사정이 한계에 다다랐다.

by 제로

 

지난해 잘 안 풀린 대표적인 국산 영화로 <인랑>이 있다. 충무로의 흥행사 김지운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까지 쟁쟁한 주연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그 결과는 제작비 절반도 못 건지는 참패. 흥행의 첫 고지인 100만 관객조차 들이지 못하며 200억 가까운 거금을 허공에 뿌리고야 말았다. 배우들의 면면은 나쁘지 않았으나 세계대전 직후의 일본 배경을 오늘날 한국으로 옮겨오는데 적잖은 무리가 따랐고, 원작 팬덤과 신규 관객 가운데 어느 쪽도 납득하기 힘든 어중간한 각색으로 완성도를 떨어뜨렸다는 평가다. 특히 인간의 탈을 쓴 늑대라는 제목에 담긴 주제의식이 그저 강동원의 무미건조한 액션 일변도로 치환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전설적인 원작자 오시이 마모루는 김지운 감독의 <인랑>을 보고 일본에서는 나오지 못할 영화라 극찬했다. 물론 입장이 입장이니만큼 마음에도 없는 말치레일 수도 있지만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거기다 이 아저씨, 몇 년 전에 마찬가지로 본인 원작이자 평단으로부터 혹평을 받은 헐리우드 <공각기동대>에 대해서도 최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엄지를 추켜세운 바 있다. 이 영화는 스칼렛 요한슨이 잔뜩 나온다는 것 외에는 <인랑>보다도 총체적 난국인데, 이쯤 되면 자신의 작품이 스크린에서 능욕당하는 것을 즐기는 변태이거나 영화를 보는 기준이 심각하게 뒤틀렸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부디 전자는 아니길 바란다.

 

사실 오시이 마모루가 이렇게 된 데는 일본 영화 산업의 퇴행적인 구조가 큰 영향을 끼쳤다. 한때 <라쇼몽><7인의 사무라이>, <동경이야기>로 세계를 울고 웃기던 일본 영화는 간데없고, 작금의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인기 만화에 편승한 어설픈 졸작들뿐이다. 근래 일본에서 개봉한 만화 실사 영화는 셀 수 없이 많으며 이 가운데 <블리치>, <강철의 연금술사>, <진격의 거인>, 등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 대다수는 투자자의 입맛에 맞춘 스타 마케팅과 원작을 대충 답습한 시나리오, 그리고 예산 부족으로 인한 졸속 촬영의 결과물이라는 것. 이러니 원작자도 <인랑>이나 <공각기동대> 정도면 감지덕지일 수밖에.

 

만찢 남녀에만 집착하는 주연 캐스팅

 

어쩌다 일본 영화계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세상에 구태여 돈 버려가며 망작을 찍으려는 감독이나 자기 커리어에 먹칠하고픈 배우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강철의 연금술사><진격의 거인> 같은 산업 폐기물이 자꾸 나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주연 캐스팅의 기준이 지나치게 외모에 편중됐다. 물론 주연을 고를 때 얼굴을 보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잘생기고 예쁜 배우를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는 상업 영화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영화인 이상 최소한의 연기력은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것도 안 되면 대사 한 줄 없는 조연으로 돌려서 병풍 노릇이나 시켜야 할 테니까.

 

그런데 일본 만화 실사 영화는 연기력 검증도 안된 신예에게 떡하니 주연 자리를 내준다. <강철의 연금술사> 주인공 에드워드 엘릭을 연기한 야마다 료스케는 애초에 배우조차 아니다. 인기 보이그룹 소속의 아이돌로 춤과 노래는 뛰어날지언정 연기력은 논할 가치조차 없다. 그가 에드워드 엘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만화 주인공만큼이나 얼굴이 잘 생겼다는 것뿐이다. 당연히 몸값도 상당하기 때문에 캐스팅만으로 제작비를 상당 부분 거덜내버린 것은 덤. 그 결과 싸구려로 마감된 의상과 CG가 안 그래도 수습 불가인 야마다 료스케의 어설픈 연기를 더욱 구려 보이게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전입가경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직업 배우라고 기용하더라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블리치> 주인공 쿠로사키 이치고로 분한 후쿠시 소타의 대표작은 <가면라이더 포제>. 가면라이더 같은 특촬물은 부족한 예산 탓에 얼굴만 반반하면 연기력은 따지지 않는 편인데 후쿠시 소타가 딱 그런 경우다. 일본 영화 제작사는 만화 팬들이 비주얼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에 원작과 닮은 배우 즉 만찢(만화를 찢고 나온) 남녀를 찾는데 혈안이 됐다. 만화 주인공이란 대체로 선남선녀이므로 결국 선택지는 아이돌 아니면 겉만 번지르르한 젊은 배우로 좁혀지기 마련. 이 와중에 연기력이라는 배우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소양은 정작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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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모발이 휘날리는 코스프레 쇼

 

가뜩이나 연기 못하는 주연을 뽑았으니 미장센이라도 살려야 할 텐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일본 만화 실사 영화가 안 되는 이유 두 번째무슨 코스프레 쇼마냥 촌티 날리는 분장이다앞머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삐쭉 쏟은 정도는 예사이고 인간의 DNA에서 나올 수 없는 형형색색 모발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그나마 현대가 배경이면 염색을 좀 과하게 했구나 넘어가겠지만 중세 판타지물의 모험가가 연두색 털이면 대체 어쩌자는 걸까신전의 사제 아가씨가 분홍빛 머리칼을 흩날리는 건 또 어떻고물론 원작 만화에 나와있는 머리색인 것은 알지만 그건 그거고 영화는 영화다설령 애니메이션에서 용인되는 설정이나 비주얼이라도 실사로 봤을 때 현실감이나 개연성이 떨어진다면 냉정하게 덜어내야 한다.

 

의상이나 소품도 마찬가지다기본적으로 만화라는 매체는 사물의 질감을 그리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는다지금 저 캐릭터가 입고 있는 옷이 천인지 가죽인지가죽이라면 소가죽인지 말가죽인지 악어가죽인지옷자락에 반짝이는 것은 보석인지 자수인지 결정해야 한다작은 장식이나 무늬는 곧잘 데포르메(대상을 축소 및 생략하는 미술 기법)되기 때문에 실사화 과정에서 디테일을 더할 필요도 있다심지어 이런저런 요소를 전부 고려해서 의상을 만들어도 막상 스크린에서는 바보 같아 보이기 일쑤인데아무래도 배우의 신체 비율이 원작에 못 미치는 탓이다얼굴은 어떻게 선남선녀 배우로 대체하더라도 비현실적으로 쭉 뻗고 단련된 신체까지 재현할 수는 없으니까쉽게 말해서 만화에서 보던 특유의 핏이 살질 않는다.

 

요즘 한창 잘 나가는 마블과 DC 코믹스 영화의 원작을 되짚어 보자슈퍼맨은 바지 위에 팬티를 입는 데다 안경만 쓰면 아무도 못 알아본다는 황당한 설정을 지녔다캡틴 아메리카는 1940년대에 만든 촌스러운 의상을 고수하고 있으며 울버린은 노란 쫄쫄이에 갈퀴를 달고 다닌다그 뿐인가여성 히어로들은 죄다 비키니나 다름없는 민망한 복장 일색이지 않는가영화 디자인팀의 뼈를 깎는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헨리 카빌과 크리스 에반스휴 잭맨의 모습은 적잖이 달랐을 터이다일본 만화의 실사화 역시도 원작 감성은 살리면서 시류에 걸맞은 세련된 재해석이 절실하다하다못해 <공각기동대>와 <인랑>도 이 점은 제대로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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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압축한다고 영화가 되진 않는다

 

끝으로 일본 만화 실사 영화를 망치는 세 번째이자 가장 치명적인 원인은 시나리오다영화계에는 좋은 시나리오는 못난 감독을 만나도 빛을 발하지만 형편없는 시나리오는 제아무리 명감독이 와도 소용이 없다는 금언이 있다그만큼 영화 완성도에 있어서 시나리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것연출이 암만 신출귀몰한들 뼈대가 되는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그저 시간 낭비일 뿐이고반대로 이야기만 재미있다면 감독 없이 삼발이에 카메라만 놓고 찍어도 볼만한 작품이 나오기 마련이다그러니까 얼굴밖에 믿을 게 없는 아이돌 배우가 싸구려 가발과 부직포 의상을 입고 나오더라도 시나리오만 괜찮다면 영화를 살릴 가망이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 만화 실사 영화는 일견 유리해 보이기도 한다이미 서사적인 매력이 검증된 원작을 적절히 각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가령 <강철의 연금술사>는 현자의 돌을 쫓는 형제 연금술사의 모험담이며 <블리치>는 우연한 사고로 사신이 되어버린 소년의 악령 퇴치라는 핵심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여기에 연성진이나 참백도 같은 흥미로운 설정과 방대한 세계관각양각색 등장인물도 영화 시나리오를 풍성하게 해줄 훌륭한 재료들이다물론 이 가운데 무엇을 취하고 버려야 좋을지제한된 시간 동안 어떤 방식으로 핵심 줄거리를 풀어갈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그래봐야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하지만 만화 캐릭터랑 닮은 사람 찾는다고 연기력은 뒷전이고 형형색색 모발까지 그대로 재현하는 영화 제작사가 내용 각색이라고 제대로 할리 있나작금의 일본 영화는 수십 권짜리 만화책을 어떻게든 추려볼 생각은 안 하고 기계적으로 앞쪽부터 따라 읊는 게 고작이다일단 1~5권쯤 내용을 엮어 영화를 찍어보고 결과가 좋으면 속편으로 이어간다는 안일한 생각뿐그러다 영화가 망하기라도 하면 남은 내용은 그대로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거고영화 <블리치>는 원작 6권까지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총 74권 구성이므로 이 속도라면 11편을 더 찍어야 스크린에서 완결을 볼 수 있다유감스럽게도 첫 편이 제작비 절반도 회수 못하고 고꾸라졌으니 정작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지는 7권 이후는 영원히 실사화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

 

마블과 DC 코믹스 영화는 절대 특정 만화책을 그대로 영상화하지 않는다여러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얻긴 하지만 영화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고유한 이야기다당장 국내만 해도 웹툰 원작인 <신과 함께>가 성공적인 각색을 보여주며 누적 관객 2,500만을 넘어서지 않았던가수십 권에 걸쳐 진행되는 만화와 2시간 내외로 기승전결이 정돈되어야 하는 영화의 문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이를 무시하고 만화를 따라하는데 급급하다간 일반 관객에게 외면받는 것은 물론이고결국은 원작 팬덤조차도 극장으로의 발길을 끊고 말 것이다.



[이 게시물은 GIANT님에 의해 2019-11-14 16:44:10 ENTERTAINMENT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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