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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를 풍미하고 다시 돌아왔다,메가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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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IANT 작성일20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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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를 풍미하고 다시 돌아왔다,메가드라이브




한때 국내 회사에서도 가정용 게임기를 판매하던 적이 있었다.삼성,현대, 대우 등이 게임사업부를 운영하고,경쟁적으로 외국의 유명한 콘솔을 수입하거나 라이선스 생산을 한 시절이 있었다.동네에 하나쯤은게임 카트리지를 대여하거나 판매하는 게임샵이 있었고,게임기가 집에 없는 아이들은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부모를 조르기도 하였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그 시절 게임기 중 하나인 ‘메가드라이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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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봐도 디자인 참 깔끔하게 잘 뽑았다)시대도 환경도 운도 따라줬다

메가드라이브가 처음 발매된 것은 1988년,당시 8비트 게임기가 주류이던 상황에 세가가 마스터시스템의후속 기체로 야심차게16비트 cpu를 얹어 발매한 제품이었다.당시 가격이 21000엔으로,현재 물가를 감안하면 3~40만원 가량의 결코 저렴하지는 않은 상급기였다.사실 이 가격도 굉장히 깎아낸 가격인데,초기 설계 과정에서 완벽한 하위기종 호환을 목표로 개발했기에 가격이 꽤나갈수밖에 없었다.마크3자체로도 어느정도 완성된 기체였기에,호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게임기 한대 값이 통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세가 개발부에서는 대안책으로 국내산 중저가형cpu와 오디오칩셋을 사용하고 회로의 집적도를 높임과 동시에 가능한한 간결화를 꾀하여 가격절감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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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비트라는 걸 내세워서 닌텐도를 디스하던 북미 광고.깨알 같은 Nintendon’t)
이 선택이 의외의 결과를 낳는데,제한된 하드웨어 성능 속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뽑아내려 노력한 결과 그래픽의 화려함보다스피디함에 초점이 맞춰지고,당시 라이벌이었던 패미컴이 화려한 그래픽을 기반으로 하는 RPG에 중점을 둔 라인업으로 가는 동안 메가드라이브는 속도감이 중점이 되는 액션 및 슈팅을 중점적으로 발매하게 된다.결과적으로 후발주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는 경쟁구도를 서로 다른 장르에서 이분하는 구도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시장에 침투하고,충성도가 높은 매니아층이 많은 액션 및 슈팅 장르를 공략함으로서 확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또한,중저가의 오디오칩을 선택한 탓에 음역이 낮아지고 노이즈가 섞이는 문제가 있었는데,게임 BGM을 헤비메탈이나 하드락 등으로 구성하여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하는 모습을 보였고,오히려 낮은 음역대 덕분에 당시 FM음원으로 구사할 수 있는 최대 한도의 ‘묵직한 사운드’를 구현한 탓에 아직까지도 그 사운드칩의 팬이 많다.
위의 특징을 가장 잘 살렸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소닉 시리즈로,화면에 표시할 수 있는 그래픽을 최대한 간략화하고 화면이 캐릭터를 따라가지 못하는 카메라연출로 스피디함을 살려내어 역대 세가 발매 타이틀중 최다 판매량을 기록하고 아직까지도 시리즈가 이어질 수 있을 정도의 대 흥행을 거두었다.그 외에도 대마계촌,선더포스,수왕기,골든액스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시대의 게임’을 줄줄이 발매하여 기반을 튼튼히 다질 수 있었다.아케이드 게임의 이식 역시 액션 및 슈팅 장르에 몰려있는데다 리스크가 적고 어느정도 판매량이 보장된 터라 적극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고,하위호환을 선택한 것이 폭넓은 기기대응이라는 결과를 낳아 끝도 없는 상승효과를 낳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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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봐도 라인업이 대단하다)
CPU를 두 개 탑재한 하위호환은 북미시장에 특히 주효하였는데,당시 북미시장을 쥐고 있었던 NEC가 이러한 하위기종 호환을 도입하기까지에 10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고,그 탓에 시장의 절대적 강자의 위치를 세가에게 너무나도 손쉽게 내어주게 된다.물론 파격적인 가격 할인과 함께 소닉 등의 대형 타이틀을 패키지로 판매하는 등의 ‘물들어올 때 노 젓는’마케팅도 적확했고,당시를 되돌아보면 ‘어쩌다 상황이 착착 들어맞아서 대박난’기기였다.
새로운 기술을 시험하는데에 큰 거리낌이 없는 ‘도전자’의 입장이었기에상상을 초월하는 기술도 종종 선보였다.그중 유명한 것이 ‘소닉3’였는데,게임 개발 당시 도저히 16M 카트리지 하나에 담아낼 수 있는 볼륨이 아니어서 카트리지를 나누어 판매하고,카트리지 위에 카트리지를 삽입하여 완전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크로스 카트리지’ 개념을 처음 선보였다.
 

(이런 짓도 가능했다.큰 의미는 없지만 저러고도 게임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게 유머)
이러한 구성은 차후에 확장팩 단품으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스탠드얼론확장팩’개념으로 확립되어 수많은 게임개발자에게 많은 영감을 주게 된다.또한 당시 주류였던 사각형 게임패드 대신 처음으로 곡선형 게임패드를 도입하여 ‘패드의 그립감’이라는 개념을 만들었고,3버튼 8방향 컨트롤은 대전격투게임에 유리하다는 것이 서서히 알려지면서 5세대 게임 컨트롤러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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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봐도 게임패드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당시 대적점이 슈패미의 아령형 패드였던걸 생각하면…)

마침내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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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아층이많다보니, 97년에 세가에서 생산을 중단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재생산 및 복각을 기대하는 여론이 많았다.한 때는 수만엔의 프리미엄이 얹어질 정도로 충성도 높은 매니아가 많았고,이러다 보니 여러 회사에서 복각을 시도한 경우가 있었다.하지만 워낙에‘우연히’ 성공한 기체다 보니 그 특유의 맛을 제대로 살린 복각이 쉽지도 않았으며,퀄리티 낮은 이식과 함께 하드웨어의 자잘한 문제 등으로 기대 이하의 품질을 보여주며 연달아 실패하는 바람에 기다리던 팬들도 하나 둘씩고개를 돌리고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세가에서 ‘메가드라이브 미니’라는 이름의 축소복각판을 발매하기로 결정하여 전 세계 MD팬들이 전율과 환호성을 올렸다.사실상 가정용 게임하드웨어 사업을 접은 세가에서 이러한 서비스를 해 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다.오랜 시간이 지난터라 수많은 게임들이 라이선스 문제 등으로 수록이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사업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준 점과 함께 토아 사의 라이선스와 관련되어 시기적으로 너무나도 적절한 타이밍이었기에 40+2타이틀을 성공적으로 확보하게된다.거기다 비슷한 시기에 복각되었던 슈퍼패미컴 미니와 비교되는 ‘버튼 및 카트리지의 물리적 기믹 재현’역시 큰 점수를 받았고(비록 기능은 재현할수 없었지만)현재까지 복각판기기중 가장 만족스러운 품질을 보여주며 19년 9월 19일에 발매되었다.당일은 국내에서도 예약구매 및 현장구매가 힘들 정도로 순식간에 판매가 되었다.

세가의 하드웨어 사업이 부활할 수 있을까
당시의 플랫폼의 주류가 일본은 슈퍼패미컴,북미는 NEC였던 탓에 세간에서 마이너 플랫폼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많지만,세가의 부흥의 한 축을 담당하고서 차기 플랫폼인 세가 새턴,드림캐스트 등의 전설적인 기기와 게임에 수많은 아이디어와 함께 재정적 초석이 되어주었던 중요한 기기였다.메가드라이브 미니가 성공하여 차후에 다른 기기도 복각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되어 기대가 커지는 중이지만 세가에서 공식적으로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공언한 상태라 큰 기대는 할수 없지만, ‘그래도 혹시…’하는 마음에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세가에서 게임 사업을 완전히 접은 것이 아니기에,레트로게임의 역습을 틈타 또다시 그 시절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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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머리나쁜 짓을 할 수 있는 곳은 세가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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