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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포스의 쓰린 첫 경험 ‘독수리 발톱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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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IANT 작성일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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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작전

 

델타포스의 쓰린 첫 경험 독수리 발톱 작전

 

지미 카터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

, 이제 이란으로 가서 그들을 모두 데려오시오.”

198042409시 이집트 와디 카나 공군 기지. 델타포스를 태운 C-141 수송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독수리 발톱 작전(Operation Eagle Claw)’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오만 연안의 마시라 섬에서 MC-130 특수전 수송기로 갈아탄 후 데저트 1’으로 향했다. 그날 오후 1905분 이란에서 60마일 떨어진 바다에 자리 잡고 있던 항공모함에서 RH-53D 헬기 8대도 데저트 1을 향해 이륙했다. 이들은 데저트 1에서 합류한 후 이란 혁명과 함께 볼모가 된 63명의 미국 국민을 구출해올 참이었다.

1921년부터 이란은 팔레비 왕조가 집권하고 있었다. 그들은 노골적인 친미·친영 노선을 표방했다. 무하마드 리자 팔레비 국왕은 중동의 경찰이란 미명 아래 미제 무기를 수입하면서 군비를 강화했다. 또한, 비밀경찰을 동원해 반대파를 숙청하고 국민을 탄압하는 독재 정치를 했다. 미국 정유사들과 유착해 국왕 개인의 부를 축적했지만, 국가는 피폐해졌다. ‘미국의 경비견노릇을 자처하는 팔레비 왕조에 대한 불신감이 커져만 갔으며 급기야 1978년 이슬람 혁명이 불붙기 시작했다. 팔레비 국왕은 이듬해 1월 이란을 떠났고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란으로 돌아오면서 왕정이 종식되고 공화정이 성립되었다.

팔레비 국왕이 암 수술을 위해 미국에 입국하자 이란 혁명정부는 국왕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미국 정부는 그 요구를 거절했고, 그 결과 1979114일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과격파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63명의 미국인을 인질로 잡았다. 미국은 협상을 시도했지만, 이란의 강경파들은 이를 거부했다.

재선을 앞둔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인질 사태를 해결하려 했고 델타포스에 그

임무를 맡겼다. 델타포스는 이란인들 모르게 이란에 잠입해 인질들을 구해올 터였다. 그의 선택은 옳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기대를 배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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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실패델타포스는 몰살 위기 가까스로 모면

 

데저트 1’은 인질구출 작전에 나선 델타포스의 최초 집결지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270마일쯤 떨어져 있었다. CIA 사전 조사 결과 이란 혁명군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안전한 곳이었다고도 3,000피트 정도로 비행해도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하지만 헬기 조종사들은 실제 작전 시 더욱 확실한 안전 확보를 위해 200피트 이하로 날도록 명령을 받았다그게 문제가 됐다너무 낮게 비행한 탓에 하붑(Haboob)’이라 불리는 모래바람에 휘말린 것이다조종사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계기의 정보에 의존해 날던 8대의 헬기 중 2대가 엉뚱한 곳에 착륙해버렸다한 대는 엔진에 모래 먼지가 잔뜩 들어가 불시착했다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편대의 움직임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도착시간도 예정보다 20분이상 늦어졌다그 사이 델타포스를 태운 수송기와 급유기들이 먼저 데저트 1에 도착했다.

데저트 1에 도착한 델타포스 대원들은 집결지 안에 차단선을 만들었다혹시 모를 이란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때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이 지역을 오가는 민간 버스가 이들을 발견한 것이다사막 한복판에서 이란인 버스 승객들과 미국 특공대가 멀뚱멀뚱 마주 보고 있는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 같은 광경델타포스는 버스를 세우고 44명의 민간인을 인질로 잡았다헬기는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인질만 잡게 된 것이었다.

최초의 헬기 편대는 작전 시간보다 1시간 늦게나머지 편대는 그보다도 15분 더 늦게 데저트 1에 도착했다도착 헬기는 계획과는 달리 6대뿐이었다두 대는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 오지 못했다.

계획과는 다른 상황이지만 어쨌든 이제부터 본격적인 작전을 시작해야 했다부대는 밤이 되면 밴 트럭에 분승하여 인질구출 작전을 준비한다사전에 약속한 대로 테헤란 시내 전력이 차단되면 구출부대는 미국 대사관과 이란 외무부를 급습하여 인질을 구출한다이후 대사관 근처의 축구 경기장에 헬기가 날아오면 여기에 탑승한 후 퇴출한다.

인질을 구출하는 사이 레인저 100여 명이 MC-130 특수전 수송기 편대에 탑승한 후 낙하산을 타고 만자리예 공군 기지에 강하한다이들 레인저는 AC-130 건십의 엄호 아래 공항을 공격하여 적 병력을 소탕한 뒤 인질들을 후송시킬 C-141 수송기 2대를 착륙시키고 공항에서 수송기로 환승한 인질과 구출부대는 항공모함으로부터 발진한 해군 전투기의 호위 속에 안전히 귀환한다이것이 계획이었다.

 완벽한’ 시나리오는 그러나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헬기 중 한 대가 유압기 고장으로 최대 하중으로 날 수 없게 된 것결국헬기 5대만으로 인질구출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자 델타포스는 작전 포기를 결정했다독수리 발톱 작전은 발톱을 제대로 한 번 세워보지도 못한 채 이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더욱 결정적인 실패는 작전을 포기한 이후에 일어났다갑작스러운 모래바람 속에서 귀환을 위해 서두르던 해병대 헬기 1대가 서서히 이동 중이던 EC-130 급유기에 충돌한 것이 충돌로 두 기체에 화재가 발생했고, 5명의 수송기 승무원과 3명의 헬기 승무원이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그 정도가 다행이었다훨씬 더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날 뻔했다충돌한 급유기에 무려 40여 명의 델타포스 대원들이 탑승하고 있었다순식간에 수송기가 불길에 휩싸이자 대원들은 본능적으로 수송기에서 뛰어내렸다그 덕에 델타포스 대원 몰살은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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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억류 인질은 444일 만에 석방

 

수송기 폭발로 인해 5개월여 동안 준비했던 독수리 발톱 작전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미군 지휘부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헬기를 모두 파괴하고 전원 수송기로 즉시 탈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미군이 이란 영토에 무단으로 침입했었다는 흔적을 남겨두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하지만 혼란한 현장에서 이 명령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대원들은 흔적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현장에서 철수했다.

다음 날 이란 혁명군은 미군의 침공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이란군 당국의 조사 결과미국인 8명과 이란인 1 9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인질로 붙잡혀 있던 44명의 이란 민간인들로부터 증언도 녹취했다.

그런데 미군이 흔적을 모두 지우지 못했을뿐더러 작전 세부 계획 문서까지 남겨놓았던 게 문제였다이 문서에는 독수리 발톱 작전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작전 수립을 위해 이란에 잠입했던 비밀 요원들의 이름과 활동지역 등도 모두 노출됐다요원들은 가까스로 체포를 모면하고 탈출할 수 있었다.

델타포스가 철수한 다음 날 새벽 1시 백악관은 이란 인질구출 작전이 실패했음을 발표했다미국민들은 실망했고 언론은 정부를 비난했다이란 혁명정부는 또 다른 구출 작전을 막기 위해 인질들을 이란 전역으로 분산 수용했다미국은 크레더블 스포츠 작전이란 이름으로 제2의 구출 작전도 계획했지만실패를 우려해 실행하지는 않았다결국카터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던 1981 1 20일에야 이란에 억류됐던 미국인 인질들이 석방됐다무려 444일 만의 일이었다.

독수리 발톱 작전은 델타포스의 첫 임무였는데 현지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한 특수작전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 최악의 실패 사례가 됐다델타포스의 쓰린 첫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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