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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피—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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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IANT 작성일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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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피마르그리트 뒤라스『연인』



나에게는 모든 것이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눈에 띄는 얼굴초조한 표정눈자위에 거무스레한 무리가 진 조숙한 눈 때문에 경험은 시작되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연인』에서.


여자는 어리다여자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미성숙하다차라리 소녀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릴 것 같은 열다섯 살의 어린 몸어린 여자는 메콩 강을 건너는 나룻배 위에 홀로 서 있다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예쁘다고 표현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보다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아름다움그래서 종국에는 자신을 해치는 방향으로 이끌어질 수 있는 종류의 것그런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해도 괜찮을까그녀가 쓰고 있는 남성용 모자와 어울리지 않는 반짝이는 하이힐은 모두 반액 세일’ 상품이다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녀에게 시선을 주는 중국인 남자그가 입고 있는 것들은 그의 재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그는 백인 소녀에게 담배를 권한다그녀는 짧은 순간에 남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다그리고 종국에는 그들이 파멸하게 될 것을 짐작한다.

첫 경험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되살릴 수 있다많은 사람들은 처음이라는 명사에서 설렘과 두려움을 어렵지 않게 꺼낼 수 있다내가 경험한 종류의 첫 섹스는 의무감에 의한 것에 가까웠다욕구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열망을 어떤 식으로 해소해야 할지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로 어렸다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아주 많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밖으로 말하기 어려운 정도의 관계였고그 일 때문에 나는 줄곧 또래의 어린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존재했으며 배척당했다비록 어렸다고는 하지만아주 어리지는 않았고또 내가 아주 원하지 않았던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에 변명을 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고 싶지는 않다그러나 나는 섹스와 쾌락을 연결 짓는 것보다 섹스와 의무감을 연결 짓는 것이 쉬웠다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그것을 그럴듯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모른 채 단순히 상대방이 원하기 때문에 나도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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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어리지 않은 여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관능” 때문에 모든 것이 시작하였다고 고백한다많은 사람들은 깨끗한 아름다움을 동경하고청초하고 순수한 것들에 쉽게 찬사를 보낸다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것들깨끗하고 맑은 것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둡고 탁한 것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젠체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육체와 정신의 영역을 구분해 왔다플라토닉 러브고대 그리스에서 남성들간의 사랑은 정신적인 것이었고 고귀했다남녀의 사랑은 육체적인 것으로 단순히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다왜 이다지도 육체적인 쾌락을 멸시하고 그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섹스와 사랑을 구별하고연애 상대와 섹스 상대심지어는 결혼 상대까지도 구별한다상수도가 있으면 하수도가 존재하는 것이 단순한 이치인 것처럼 말한다막장 드라마에서 아내에게 내연녀의 존재를 들킨 남편은 쉽게 이야기한다. “단순히 몸을 준 것뿐이었어마음을 주지는 않았어.” 그러나 마음보다 진실한 것은 몸이고배신하지 않는 것은 섹스뿐이다.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더 좋겠어요날 사랑한다 해도당신이 습관적으로 다른 여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대해 주세요.”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그리고 묻는다. “그것이 당신이 원하는 거야?” 그녀는 그렇다고 말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연인』에서.


어린 여자는 사랑을 단지 육욕에 관한 것으로 돌림으로써 간단하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사랑을 하고하지 않고의 문제는 독립 변수가 될 수 없었다누구나 빤하게 볼 수 있는 결말이 존재하고 있었다남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어낸 부()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하게 누려온 것들을 버릴 수 없었고동시에 자신이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여자를처음으로 황금을 이용해 사지 않은 것을 잊을 자신이 없었다어린 여자는 알고 있었다자신을 손가락질할 가족들이 결국은 자신을 이용할 것이라는 것을 아니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라는 것은 좋은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어린 여자는 남자가 다른 애인들에게 해왔던 것처럼 돈을 주고 사랑을 하기를 원했다그 말이 남자를 슬프게 하고더 나아가서는 분노에 차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더더욱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사랑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상처받을 것을현실을헤어져야 한다는 사실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까?

불가능에 대한 직감은 서로에 대한 애착을 가증시킨다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남들이 손가락질하는 것들을 감내하면서 유지하고 있는 감정을 당사자들은 사랑이라고 믿는다그러나 대부분의 것들은 착각에 불과하다사람은 상황에 굴복한다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인간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에 기대어서 살아간다그래서 소녀는 예상할 수 있었다. ‘사랑’ 같은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이는 단순한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사랑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남자는 황금 앞에현실 앞에운명 앞에 굴복할 것이다아니굴복이 아니다그것은 당위이다어린 여자도 마찬가지이다그녀는 무력한 어머니로 대변되는 집을 버리고 나올 수 없다그녀는 어머니와 오빠들을 증오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랑한다남자와 여자는 그들 앞에 존재하는 당위를 잠시 외면하고 서로에게 기댄다도피처는 종착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콜랑의 그 연인은 사춘기의 이 백인 소녀에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몰두했다매일 밤 그녀와 함께 추구하는 희열이 그의 모든 시간을그의 인생을 구속했다이제 그가 그녀에게 말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사실 그것은 그 자신도 아직 잘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그는 그 사랑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어쩌면 그는 그들이 지금껏 단 한 번도 서로 대화를 나누어 본 적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일지도 모른다그들이 나눈 말이라고는 밤마다 침실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서로의 이름을 부른 것밖에는 없었으니까그렇다나는 그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믿고 있고그는 자신이 미처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연인』에서.


너무 많은 대화를 나누면 가볍게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 어렵다설령 대화를 나누더라도 그것은 겉도는 이야기들이어야만 한다자신을 포함하고 있는 대화는 어떤 식으로든지 마음을 피력하게 된다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알아달라는 표시이다나를 알아주고내 마음을 헤아려주고생활을 공유해달라는 것이다이국에서 이국의 사람과 나누는 섹스는 편안하다그 나라의 언어를 너무 능숙하게 할 줄 아는 것은 좋지 않다신음 소리를 나누는 정도의 사이가 가벼움을 유지하기에는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다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유혹을 떨쳐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곧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자연스러운 이별을 선사한다중국인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앞으로 자신의 일생에 찾아오지 않을 사랑에 대하여 피력한다남자보다 늙은 남자는 냉정하다그는 보이지 않으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보이지 않더라도 살아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죽을 만큼의 슬픔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먼 훗날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여자는 그녀보다 늙은 남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그는 그 사랑을 멈출 수 없고앞으로도 계속 그녀를 사랑할 것이라고 고백한다그들은 한 번도 그들의 생활에 존재한 적 없다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삶에서 생활을 분리할 수 있을까생활을 뺀 삶에만 감정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어떤 종류의 비극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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