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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헛간은 무엇인가요—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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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IANT 작성일20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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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헛간은 무엇인가요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

지난 여름 꽤나 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남녀간 로맨틱한 분위기에서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나를 영화관으로 데려간 것은 K였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K는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막 오래 사귀던 연인과 헤어진 시점이었고 상대가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게 빠르게 연애를 재개하고 싶지는 않았다. K가 영화를 보자는 말에 응했던 것은 단순히 거절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그가 나에게 마음이 있더라도 그것은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아무튼 그에게는 그게 꽤 중요한 사실이었고, 나와 《버닝》의 서사를 공유하고 싶었던 것 같다. 《버닝》의 원작 소설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를 펼치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 되었다. 내 주변에는 어쩐지 하루키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유독 많았고사실 약간의 문학적 감수성만 있어도 하루키는 미워하기 힘든 작가이다시기적으로 하루키의 소설에 지칠만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하루키를 좋아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하루키를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호의는 하루키에 대한 호의로 쉽게 전이되었다.

「헛간을 태우다」는 두 시간을 훌쩍 넘는 영화의 원작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짧고 간결한 소설이다. 영화 속 혜미에 해당하는 그녀는 스무 살이고 영화 속 종수에 상응하는 인물인 는 서른 한 살의 작가이다. ‘그녀는 아는 사람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만나 친해진다. 그녀는 처음부터 나이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또한 기혼이지만 그것 또한 상관이 없다. 이 둘의 관계설명은 딱 여기까지가 끝이다. 그 둘이 말 그대로 정말 친구에 불과했는지, 육체적 관계를 나누었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는 를 깊게 신뢰한다. 그것은 그녀가 주변 사람들과 가지는 관계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아마 그녀가 만나는 남자친구과 그녀는 쉽게 육체적 관계를 가졌을 것이다. 그녀에게 그런 것들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하루키가 설정하는 여성인물들은 같은 여자인 내가 보아도 몹시 매력적이다. 단순히 매력적이라는 말로는 형용하기가 어렵고, 아마 조금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섹시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헛간을 태우다」에서 설정한 인물인 그녀도 마찬가지이다. 언제인가 어떤 일본 작가의 소설 속에서 덧없어 보이는 타입의 여자라는 어구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확실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그녀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정확하게 그 말에 들어맞는 인물이다. ‘덧없다는 말에는 보람이나 가치가 없다는 뜻도 있지만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뜻도 있다. 만약 이 말을 그녀에게 선사한다면 나는 후자의 의미를 더 강하게 부여하고 싶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인물. 단순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정보 자체가 많지 않고, 그래서 더더욱 종잡을 수 없는 신비주의. 책 속 그녀나 영화 속 혜미에게는 확실히 어울리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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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재능이 있어 보이는걸.”

어머, 간단한 거예요, 재능이고 뭐고 할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요, 거기에 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귤이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되는 거예요. 그뿐이에요.”

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 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을 잊는 것은 그보다 쉬운 일이다. 예를 들어, 행복한 감정을 가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당신을 괴롭게 만드는 것을 잊는 것은 차라리 쉽다. 그래서 우리는 힘든 일 앞에서 쉽게 워커홀릭이나 알코올중독자가 된다. 무엇인가를 잊기 위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그 둘은 차이가 없다. 작중 그녀의 취미는 팬터마임이다. 그녀는 팬터마임을 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를 잊는다고 말한다. 마이너스-마이너스가 플러스가 되는 순간이다. 그녀가 삶에서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것을 손에 쥐어온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예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을 것들이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내려놓는 것이 쉬웠을 것이다. 관계도, 돈도, 자기 자신의 존재마저도.

세상에는 헛간이 얼마든지 있고, 그것들은 모두 내가 태워주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변에 우뚝 서 있는 헛간도 그렇고, 논밭 한 가운데 서 있는 헛간도 그렇고…… 어쨌든 여러 헛간들이 말입니다. 십오 분이면 깨끗하게 태워버릴 수 있지요. 마치 처음부터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요. 아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저사라질 뿐이죠. 깨끗이요.”

 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 에서.

그녀는 혼자 홀연히 북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고, 석 달 뒤 그곳에서 만난 그녀의 애인과 함께 돌아온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은 많은 수수께끼의 청년, ‘는 그녀의 애인을 보며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린다. 물론 그녀의 애인은 개츠비가 될 수 없는 남자이다. 그는 유희로써 헛간을 태운다고 고백한다. 사실 그것은 유희인 동시에 하나의 의식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헛간은 다만 태워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헛간을 태우고 나면 그것은 마치 존재한 적도 없다는 듯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는 헛간을 태우는 행위를 도덕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라고 말한다. 여기에서의 도덕은 윤리적인 의미보다는 행위 준칙의 성격이 강하다. 그녀의 애인이 태우는 헛간은 부질없는 것이고, 덧없는 것이고, 쓸모 없는 것이다. 그런 것들의 존재는 말살한다기 보다는 은폐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더 낫다. 세상에는 헛간이 얼마든지 있다. 나에게는 나의 헛간이 있고 당신에게는 당신의 헛간이 있다. 그리고 그 헛간은 태워져야만 하는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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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존재들을 위해 희생되어야 할 무용한 존재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당신도 이미 짐작하고 있듯이 그녀의 애인이 말하는 헛간은 그녀와 같은 여자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영화 《버닝》에서는 종수에게 소중한 존재인 혜미를 벤에게 있어서는 아주 하찮은 존재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허무함을 극대화시켰다. 그러나 결국 종수나 혜미, 벤은 모두 길 잃은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종국에 혜미는 자신이 죽을 것임을 예감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렇게 되는 것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벤이 자신을 이용하거나 마약을 하는 거 따위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목적 자체가 결여된 삶이니 어떻게 되어도 좋은 것이다. 삶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무상함을 말로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다만 소설을 읽고, 영화를 봄으로써 그러한 추상적인 개념들을 어렴풋이 구체화할 뿐이다.

저도 잘 모르지만, 그녀는 정말 한 푼도 없습니다. 친구도 없어요. 주소록은 빼곡하게 차 있지만 그건 그냥 이름일 뿐입니다. 그녀에게는 기댈 만한 친구가 없습니다. 아니, 그렇지만 당신만은 정말 신뢰하더군요. 빈말이 아니라. 당신은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였다고 봅니다. 저도 조금 질투했을 정도니까요. 정말입니다. 저는 지금껏 질투란 걸 거의 해본 적 없는 인간이지만요.”

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 에서.

헛간을 태우다는 조금은 섬뜩한 이야기가 분명하다. 헛간은 분명히 그녀를 지칭하고 있는 것 같고, 혈혈단신의 빈곤한 여성이 죽는다고 해서 경찰들이 열성적으로 움직일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남자의 말대로 헛간을 태우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의 도덕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의 목적 없고 단조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한 아주 작은 유희. 소각의 행위에는 보통 정화의 의미가 함께 한다. 누군가는 《버닝》의 키워드를 분노로 잡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 갈 길을 잃은 공허함은 누구에게나 있고, 다만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을 수 있는 벤은 자신보다 하찮은 존재를 몰락시킴으로써 분노를 정화시키고, 종수의 그것은 현실에서 풀어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는 소설을 쓸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프로타고니스트는 단지 운명일 뿐이고, 어쩌다 그 삶에 속해 있는 우리들은 속수무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헛간, 당신은 헛간 앞에서 신이 된다고 착각한다. 당신은 다만 살아가기 위해서 헛간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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