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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또한” 동등하게 사랑해—폴리아모리(polya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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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IANT 작성일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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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동등하게 사랑해폴리아모리(polyamory)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아닌 건 아닌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에게는 미안하게도 나는 폴리아모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그편에 서고 있는 것 같다.

폴리아모리. 직역하자면 다자간사랑, 혹은 다자간연애. 그러나 단순히 여러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로는 폴리아모리를 정의하기가 곤란하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다자간의 사랑에는 비독점적이라는 키워드가 빠질 수 없다. 다자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비독점적이라는 특성은 그들의 신념이고,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폴리아모리는 난교나 바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독차지하는, 심지어는 소유하려고 드는 너무도 자본주의적인 사랑의 의미에서 벗어나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모두 존중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폴리아모리는 사실상 여러 사람을 사랑한다는 의미보다는 여러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뜻에 가깝다.

언어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선행하는지 사고방식이 언어에 선행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잠깐 차치하고서라도, 언어는 사람들의 인지적 도식(schema)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언어로 정립하기 전에는 확실하지 않았던 생각들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찾는 순간 더 공고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마치 생각만 하고 있을 때는 잘 모르던 것들이 글로 적거나, 말로 풀어내고 나면 명시화되는 것과도 비슷하다. 모노가미에 익숙한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일 뿐인 대다수의 사람들이 폴리아모리라는 말을 접하기 전까지 자신들이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비슷한 생각들을 정립할 길이 있었을까? 이는 단순히 반사회적이고 발칙한 상상임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입 밖에 내면 다른 사람들의 지탄을 받을 것이 뻔한 이야기들. 그러나 폴리아모리라는 단어는, 그리고 그 단어가 정립하는 정의는 적어도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고 있어라는 말보다 훨씬 상냥하다.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일부일처제가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은 것임은 분명하다. 일부일처제는 사실 근대사회의 산물, 약간의 비약을 더 하자면 자본주의의 기획상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대의 사랑이 가지는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을 뽑으라고 하면,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소유권을 말하고 싶다. 근대 이후 일부일처제는 남녀가 만나 배타적인 정식적, 육체적 관계를 둘만이 공유하는 폐쇄적 형태로 자리 잡는다. 일부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성을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상속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모노가미가 등장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로 모노가미가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인류의 본성을 거스르는 제도라고 할지라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폴리아모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친구들만 해도 다자연애라는 말에 생소함을 느끼고, 혹은 실제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가치관과는 아주 다른 것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십 대 젊은 남녀들의 여론이 이러한데, 기성세대의 입장은 불 보듯 뻔하다. 두 명을 동시에 동등하게 사랑한다는 식의 논리보다는 외도가 오히려 빈번하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것이어서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모노가미의 체제에 사회화되어버린 이들이 떠올리기에는 너무도 급진적인 생각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폴리아모리를 말하는 쪽에서 이야기하는 논리는 아주 친절하고, 부드럽다. 상대방을 독점하지 않는 것, 그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나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서로가 서로를 옭아매지 않는 것, 집착 없이 존중하는 관계. 그런데 무엇이 이렇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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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쓴맛단맛을 다 겪은 연애 끝에 얻게 된 교훈 중 하나는’ 나 혼자 착한 척하다가 혼자 X 되기 딱 좋다는 것이다내가 인간으로서(?) 갖춘 최소한의 예우를 상대방은 너무도 쉽게 짓밟는 경우가 많아졌다그렇다면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과 느슨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 나쁜 것인가정말로 비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여기에서 느슨하다는 것은 단지 쾌락만을 위한 교제를 한다는 뜻이 아니다물론 성적인 긴장감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설령 섹스 파트너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 사람 아닌가그러한 미묘한 감정의 변화 없이정서적인 태도의 반영 없이 오랜 시간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가능한가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느슨하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는 헌신을 하지도헌신을 요구하지도 않는 것에 가깝다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질투라는 감정이 두렵다질투는 늘 이성을 잃게 하였고내가 알고 있는나에게 익숙한지극히 평범하고 적당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나의 모습을 잃게 하였다잘못한 것은 상대방인 것 같은데 도리어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치졸하고 옹졸한 사람이 되는 기분은 불안정한 자아에 있어서 충분히 위협적이다튼튼한 자아를 가진 성인남녀가 얼마나 될 것인가? ‘질투라는 감정을 억제하는 것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발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때로 사랑이라는 건 그 자체로 의미를 품고 있지 않은그저 질량이 있고 푹신거리는 단어일 뿐이라고 느끼곤 했다나와 연경이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순간을 세어 보면 얼마나 될까우리는 서로가 그 말을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지 못할 때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을 때조차 마치 우리 사리의 빈 공간을 메우려는 것처럼 그 말을 쏟아냈다.

정영수, <우리들>에서.

누군가를 온전하게 사랑하고정말로 좋아한다면 상대방의 어떤 점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폴리아모리의 기본적인 전제는 달콤하다그러나 모든 그럴듯한’ 논리가 그러하듯이실제로 실현되었을 때 그 이상적인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폴리아모리의 논리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상대방이 여전히 나를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만 평화로울 수 있을 것이다다자에 대한 관계가 모두 비슷하게 동등한 애정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하물며 강아지를 키워도 예쁜 강아지와 덜 예쁜 강아지그리고 좀 미운 강아지가 나뉘는데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서 동등해질 수 있을 것인가어느 한쪽에 대한 관계가 좀 더 현실적인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남은 상대방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그리고 그것을 또 어떻게 변별해낸다는 말인가?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지는 추상성과 모호함은 때때로 어떠한 경계를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이 경계를 윤리적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를 그 낱말이 갖는 푹신푹신한 느낌만으로 충분히 흐려놓는다고 생각한다너무 쉽게 분별력을 잃는다는 뜻이다.

폴리아모리에서는 사랑을 한 개인에게 유일무이한 단일 개체라고 보지 않는다여러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하나뿐인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하나씩 주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정말 그 말이 사실일까폴리아모리의 논리에 완전히 함께할 수는 없지만 그 말이 사실이면 좋겠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다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동등하게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느끼는 책임감이나 죄책감도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 같다그러나 어느 한쪽이 분명한 내 욕심으로 잡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지금너무나 포용적인 그들의 논리를 살짝 빌려온다는 것은 확실한 위선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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