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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서 연인, 연인에서 다시 친구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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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IANT 작성일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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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우리는 섹스를 한 사이도 아니다
친구에서 연인, 연인에서 다시 친구가 된다는 것..>>

심지어 우리는 섹스를 한 사이도 아니다, 내가 아는 한 그와 나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가장 간결한 문장이다. 그는 나보다 두 살가량 많고, 의도하지 않게 소수 정예가 되어버린 남사친들 가운데 가장 깊은 친밀감을 느끼는 존재이다. 그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며,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연락을 하고 있는 전 남자친구이기도 하다.

, 그는 나의 현재 남자친구도 아니고, 과거에 이미 헤어진 사이인데, (심지어, 우리는 섹스를 한 사이도 아니다) 내가 그에게 느끼는 애정은 다른 누군가에게 느끼는 애정보다 훨씬 더 깊고 애틋하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는 에로스적인 사랑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물론, 그에게 느끼는 애정이 연애감정과 아주 별개의 문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의식하지 않고 있을 때 스미듯이 올라오는 성적인 긴장감을 밀쳐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문제는 그에게 느끼는 이 특별한 종류의 애틋함과 편안하고 따뜻하고 지속성 있으며 묘한 육체적 긴장감을 그와 사귈 때는 거의 느끼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와 다시 사귈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물론 그와 사귀었던 시기가 지금까지의 삶 중에서 가장 바쁘고 불안하던 시간들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솔직하지 못하였다. 그를 좋아해서 사귀었다기보다는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작했던 관계이고, 그때는 그러한 사실들이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나에게는 그와의 관계가 별로 진지한 것이 아니었다. 저울이 너무 기울어져 있었다. 가장 진솔하게 대해야 할 사람 앞에서 가식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멀어졌다. 나는 단순히 애인으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해냈을 뿐이고,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드러내면서 그 역할을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매 순간 사소한 거짓말들이 튀어나왔다. 누군가에게 나의 모든 것을 백 퍼센트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관계에 대하여 무모한 선망을 느끼고 있었고, 말하지 않은 것들은 그대로 벽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단지 나의 생활이 힘들다는 이유 하나로 이별을 선포했다. 나는 나의 우울함을 숨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기로써 사용하였다. 그는 그것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신경 쓸 정도로 착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곧 나도 아는 여자를 만났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질투를 느끼지도 못하였다. 다만,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만이 슬펐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친구에서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도덕적 결함이 없는 관계 중에서 최악의 경우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가장 친한 친구와 연인이 되는 것은 겉보기에는 로맨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강하다. 그러나 어차피 피차 서로 좋아하는 거, 결국 눌러두면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친구라면, 계속 지속적으로 만날 사이인데 얼마나 더 참을 수 있을까? 그럴 바에는 어느 한 쪽이 결혼을 해버린 후에 일이 벌어져서 도덕적으로 어긋난가장 최악의 경우 중 하나가 되기 전에 일이 벌어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러나 그와 내가 원래 친구 관계이었기 때문인지, 그의 성격이 좋았던 탓인지, 어떤 큰 싸움이 계기가 되어 헤어진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와 나의 관계는 그가 다른 사람을 만난 뒤에도,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난 뒤에도 이어졌다. 나는 오히려 그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더 큰 애정을 느꼈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만 좋아하는 것은 내 전문인 것 같다) 나는 심지어 그가 최근까지 사귄 여자친구와 어떤 문제로 갈등을 빚었는지, 그들이 어떤 종류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그와 내가 공유하고 있는 친구들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여자친구가 있음에 불구하고 전 여자친구에 불과한 나를 지속적으로 만나왔던 그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시킬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인아는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부른다. 또박또박 주문을 마치고 생긋 웃는다. 눈언저리에 장난기가 느껴지는 웃음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향해 웃을 때 내가 약간의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그 누군가가 남자건 여자건, 얼마나 가까운 사람이건 상관없다. 고통과 거리를 두려고 나는 잠깐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한강,<에우로파>에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제는 그와 내가 공유하고 있는 관계가 정말 완벽하게 성별만 다른 친구 관계가 아니라는 것에서 기인한다. 나는 그와 술을 마시는 것이 두렵다. 술을 매개로 드러나는 감정들은 어느 정도의 치욕을 준다. 그에게 다른 동성 친구들만큼의 친근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애인에 못지않을 헌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부탁이라면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그 또한 나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나를 만나기 위하여 거짓말도 하였다. 그런 것들이 옳은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미몽(迷夢)에서 깨어나는 것은 한순간이다. 어느 한 소설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때로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어리석은 꿈에서 깨어나게 할 가장 강력한 주문이 된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빈틈이 가득하였다. 함께 했던 시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제외하고 말하려니 둘 다 침묵하게 되는 순간이 존재하였다. 우리는 아직 그런 것들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만큼 하지는 못한가 보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피해간 말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가 갑자기 손을 내밀었을 때 그의 손을 잡고 흘렀던 잠시간의 정적. 손을 빼는 순간은 잡는 순간보다 훨씬 어색하다. 그가 손에 아주 약간의 힘을 주고 손을 풀었을 때 느껴지던 이질감. 이런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나의 섹스라이프를 그에게 밝히는 법이 결코 없다. 누군가와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할 때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거나 표정이 어두워지는 그의 모습이 과연 다른 동성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의 것들과 같은 종류의 것일까? 그의 여자친구에 대하여 질투를 느끼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그녀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것을 달가워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기분이 나쁘거나 기분이 나쁘지 않거나 하는 문제와는 다른 것이었다. 분명히 나에게로 향하였던 애정이 다른 사람을 향하는 것은 생경한 기분을 선사한다.

아무런 사이도 아닌, 아니 심지어는 낯선 사람보다도 못하다고 할 수 있는 옛 애인과의 육체적인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어떤 잣대에서는 상당히 부적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는 그와 정식으로 교제를 할 때조차도 섹스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들이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것은 모종의 거북함을 준다. 특히나 나는 그와 다시 사귈 마음이 없다. 그것과는 별개로 그와 섹스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아니 심지어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은 에로스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친밀감의 연장선이다.

그런데, 그는 내가 그와 단순히 자고 싶다고 하면 결코 그것을 허락할 것 같지가 않다. 그는 나와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오염시키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술을 마시면, 아니 술을 마시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나오는 자연스러운 스킨십들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다. 그에게는 내가 친구라는 영역 밖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내가 그렇게 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혹은 잘못된 확신으로 영영 보기 어려워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모두 덮어두고 있을 뿐이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명백한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물론 말을 함으로써 해소되는 것들이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어떤 말들은 결과가 어떻든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거 같다. 그런데, . 네가 만약 이 글을 읽는다면 나에게 배신감을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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