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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카산드라』—삶과 죽음의 한 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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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IANT 작성일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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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카산드라』삶과 죽음의 한 가운데에서


만약 죽음이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삶과 죽음의 한 가운데라는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너무 긴 한 쪽 극단과 너무 짧은 나머지 한 쪽. 어느 소설가가 말하였던 것처럼 사람은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무한정으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공평한 명제이다. 죽음은 공정하다. 누구에게나 닥쳐올 순간이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하여 죽음은 어떠하다는 식의 확실한 증언을 제공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단어가 선사할 수 있는 두려움은 단순히 이라는 지점에 대한 공포가 가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모순적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절대적인 종결부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는 동시에 그 이후에 무엇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만약 그 둘 사이에 한복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질 때인 것 같다일종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 사후에 대한 두려움은 대체적으로 삶에 대한 불확실성과 비례한다. 종교나 미신 따위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였지만, 그런 것들에 기댈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사정은 강자와 약자의 논리 밖에 존재한다. 성경은 영문학의 초석이다. 신화 또한 문학의 기반이 된다. 우리는 언제나 구체적이고 확실한 것들보다 추상적인 것들에 열광해왔다. 그것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것들이 인류에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신화에는 사람들이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특히 그것이 남성성에게 어필하는 바는 여성에 대한 그것보다 더 크고 확실한 것 같다. 메밀꽃의 저자 김유정조차 알지 못하거나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들어본 적 조차 없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리스 신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좀처럼 보지 못하였다. 물론 신화의 명성에는 지금의 이십 대가 유년 시절에 유행하였던 만화책에 대한 지분도 클 것이다. 그러나 만화 속에 등장하던 아름다운 여신이나, 님프, 그리고 인간여자들의 모습을 차치하고서라도 신화의 서사는 매력적인 요소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전쟁과 사랑, 그리고 그들의 본질적인 어리석음, 절대적이거나 기형적인 존재들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내가 어릴 적에 읽었던 그리스 신화는 대부분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승리자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한국의 어린아이들에게 읽히는 대부분의 책이 그러하듯이 아름다움에 핀트를 맞추고 있었다. 아름다운 묘사를 위해서는 생략이 요구된다. 아름다운 헬레네는(그녀는 무서운 여자이다.그녀는 트로이 전쟁의 표면적인 원인이다.) 전쟁의 클라이맥스에서 남편 메넬라오스에게 전쟁의 원인인 자신을 찌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는 그녀의 아름다운 육신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물론 전쟁의 시발점이 된 것은 헬레네의 과도한아름다움이지만 실제로 트로이 전쟁은 전쟁을 위한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들은 무려 십 년의 세월 동안 전쟁을 지속하였다. 십 년은 원래의 목적을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판본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크리스타 볼프의 『카산드라』는 전쟁의 원인으로써 권력자들의 허영심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다. 그들은 멍청이가 아니다. 차악과 최악 중 차악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악을 선택할 만큼 어리석었다.

아버지, 허깨비 때문에 하는 전쟁은 질 수밖에 없어요.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말했다. 그에게 다시는 그런 심정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왜지? 왕이 심각하게 물었다. 왜지? 우리가 할 일은 병사들이 계속 허깨비를 믿게 만드는 거야. 게다가 어째서 전쟁이냐? 넌 늘 그런 엄천난 말을 하는구나. 난 우리가 공격 당하고 방어를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스인들은 혼쭐이 나고 바로 돌아갈 거야. 제아무리 미인이라도 여자 때문에 피를 흘리고 싶진 않을 테니까. 난 그 여자가 그렇게 대단한 미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크리스타 볼프, 『카산드라』 에서.

여자인 내가 보기에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은 존경스러운 만큼 무모하다. 물론 여자들은 그것을 무모함이라고 정의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떠한 종류의 강력한 동기이고, 일종의 정언명령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볼프는 남성들의 명예욕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서 헬레네라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지운다. 헬레네로 인한 전쟁이 헬레네가 없는 전쟁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트로이를 멸망시킬 왕자 파리스는 헬레네를 납치해 오는 것에는 성공하지만 그녀를 타국의 왕에게 빼앗긴다. 그러나 전능한 프리아모스 왕의, 그리고 트로이의 명예를 위하여 모든 진실은 왕실을 숭배하는 방향으로 가려진다. 진실을 가리는 것은 결국 자신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프리아모스의 가장 총애 받는 딸이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아폴론 신의 사랑을 받아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예언 능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동시에 전능한 신을 거부한 대가로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옳다고 증명된 여자를 끝까지 믿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오직 그녀 만이 불바다가 된 트로이를 볼 수 있었다. 눈이 멀어버린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아니다. 사실 모두가 앞으로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왕실의 권위와 명예를 위하여 차라리 멸망하는 것을 택한다. 그것은 트로이인들이 살아가던 방식이 아니었다.

한쪽 접시에는 한때 우리 헥토르 오빠였던 고깃덩어리가 있고, 다른 쪽 접시에는 헥토르를 살해한 자에게 줄 우리의 모든 황금이 있었다. 그것은 전쟁의 가장 낮은 지점 혹은 가장 높은 지점이었다. 차가운 내 마음. 송장처럼 땅 위에 누워 있는 안드로마케. 폴릭세네의 얼굴에는 그 상황에 어울리는, 자기 파괴의 즐거움이 어려 있었다. 아직도 헥토르의 시체 무게에 조금 못 미치던 황금 산에 그녀가 어떻게 경멸하듯 팔찌와 목걸이를 던졌던가. 우리는 미친듯이 빨리 배웠다. 우리는 죽은 사람을 황금으로 살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하지만 죽은 남자를 산 여자와 바꾸는 다른 방법도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어이, 왕이여! 금은 그냥 두고 당신의 아름다운 딸 폴릭세네를 주시오.

크리스타 볼프, 『카산드라』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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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전쟁과 남성의 전쟁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느끼는 공포의 종류에서 비롯된다남자들이 느끼는 육체적인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여성들이 느끼는 치욕에 대한 두려움을 비교할 수 있을까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것이다두 가지 모두를 견딜 수 없는 수치심으로 묶어 낸 것은 아킬레우스가 한 일이었다작중 카산드라는 아킬레우스를 짐승이라고 칭한다그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예우가 남아 있지 않다그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의거하여 행동할 뿐이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분명히 행위자에게도 치욕을 가져올 행위들인간의 가장 일차적인 본능이 무엇인가그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욕구이다죽음에 대한 욕구는 공격성을 통하여 실현된다전시에는 단 두 가지 욕망밖에 남지 않는다나머지 것들은 부수적인 문제로 전락하다.

카산드라는 왕의 딸이지만 삽시간에 반역자가 되었다그녀는 남성들의 체제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배반자가 되었다가장 제정신인 그녀조차 눈이 멀어있기는 마찬가지였다그녀가 사랑했던 오빠들을 고백하는 순간들은 그들에 대한 고백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동정에 가깝게 묘사된다그들 모두는 결국 허깨비 때문에 파멸한다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외면한 진실그래서 더 만연하게 드러나는 사실헬레네가 없었기 때문에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우상(偶像)이 없었기 때문에결국 지켜내야 하거나 쟁취해야 할 대상이 실존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파멸한 후에야 대단원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볼프는 헬레네라는 존재를 허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가능한 종류의 모든 승리를 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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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날 오해하고 있어요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내가 남아야 하는 건 트로이 때문이 아니에요트로이는 내가 필요 없어요우리 때문이죠당신과 나 때문이에요.

크리스타 볼프『카산드라』 에서.

 

사실카산드라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그녀는 결국 무엇을 택하였던가프리아모스 왕의 가장 총애받는 딸은 트로이의 여자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전쟁을 묘사하는 가운데 그녀가 그녀의 오빠들에게 느꼈던 애정이나사제였던 판토오스에게 느꼈던 동질감그리고 아이네아이스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이 얼마나 쉽게 사라졌던가그녀에게 등장하는 모든 종류의 사랑은 백일몽에 불과하다그녀는 탁월한 예언가였고자신이 살해당해 죽게 됨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결국 신을 믿지 않게 되지만신을 거스르지는 않는다트로이가 멸망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택한 그녀의 형제들과 무엇이 그렇게 다르단 말인가결국 그들 모두는 불확실한 차악과 예견된 최악 중 명료한 것을 거스르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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